크레이그 론디 의원 후원의 밤 행사

한인사회 안에서 심심치 않게 열리는 음악이나 다른 공연의 밤에 대한 관전평은 대성황, 흥분의 도가니, 온통 매료되다 등의 보도와 관객의 찬사가 보통이다. 열광이 아니라 차분한 이슈가 핵심이 되어야 할 정치 행사라면 이와 다르다.

지난 17일(금) 밤 리드콤 소재 르네상스 클럽에서 열린 리드(REID) 지역구의 자유당 소속 현역 크레이그 론디 연방하원의원을 후원하기 위한 한인들의 모임에 대한 보도나 평가 기준도 감성이 아니라 냉철한 이슈 지향이 되어야 할 정치 행사였다.
이 글도 그런 관점에서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 내 역할은 언론과 사회평론이다. 거의 700여명이 운집한 연회장에 프레스석은 따로 없었으나 한호일보가 마련한 테이블에 초청받아 앉았으니 밥값을 하겠다면 비용을 댄 사람보다도 커뮤니티의 이익을 위하여 써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모임은 론디 의원을 위한 단합 대회 성격이라고 보인다. 당연히 주인공의 인사와 정견 발표가 있었으나 공개 토론을 하거나 후원금을 모집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에 대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없다. 
그보다는 근년 작은 표밭으로 한인 커뮤니티가 일부 호주 정치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효과적으로 잘 활용해 왔는가를 한번 짚어보고 싶은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우리가 호주 정계와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필요는 이것’이라고 할 만한 합의된 우선권 있는 아젠다들을 갖고 그들에 접근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호주 정치나 선거를 대할 때는 자연히 두 갈래를 염두에 두게 된다. 하나는 호주 전체 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한인 커뮤니티의 구성원의 입장에서다. 전자의 입장에서라면 전체 사회의 쟁점들인데 그건 매일 호주의 대중매체를 통하여 충분히 표출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접어두자.

후자의 이슈와 아젠다라면 좁지만 우리의 직접 이해관계 사항이다. 그런데 그게 언제 들어도 똑같은 몇 가지 판박이로 한정되어있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우려다. 어디를 보나 녹녹지 못한 우리의 처지에서 먼저 내놓아야 할 이슈와 아젠다가 이것뿐인가 따져보자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없을까, 아니면 우리의 창의력 부족 때문인가.

나는 과거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은 호주 정치인이 참여하는 한인 행사에 가봤다. 연단에 서는 호주 쪽이나 우리 쪽 인사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식상할 정도로 거의 똑같다. 그 단골 메뉴들을 여기에 적어 보면 첫째, 호주와 한국은 3, 4대 교역국으로서 그 무역은 상호 보완적이며 6.25때 호주군의 참전으로 전통적 혈맹 관계다, 둘째, 양국은 국제무대에서 노선을  같이 하며 호주는 한국의 평화통일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로 요약된다.
결국 모든 분야에서 상호이익이 잘 맞아 떨어져 밀월여행을 하고 있다는 건데 고국과 함께 거주국을 섬겨야 하는 여기 한인들로서는 대단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정사실을 늘 되풀이만 하면서 살면 될까? 그건 크게는 한인커뮤니티가 아니라 국가 간 관계이고 거기에서 한인 커뮤니티가 덕을 본다면 반사이익일 뿐이다. 
커뮤니티 자체의 직접 이해관계 사항으로서 더 이야기할만한 건 없을까? 한인 자영업 밀집 지역인 스트라스필드와 이스트우드에서는 너무 빨리 오르는 가계 임대료 때문에 지속적인 영업이 어렵다고들 한다. 벌써 해묵은 이야기다. 최근 내가 아는 한 자영업자는 20%을 올려 달라는 건물주의 요구를 견딜 수 없어 문을 닫았다. 

론디 의원은 호텔업을 하는 중소기업 집안 출신으로 한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한다. 호주 정치인들에게 뭐든지 건의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닐 뿐 아니라 비즈니스는 정치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결정한다. 그러나 한인들의 고충에 대한 깊은 인식 (awareness)을 같이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보도된 것처럼 이번 선거에 앞서 제기된 커뮤니티 관련 이슈 하나는 자유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코리안가든 건설에 100만 불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이다. 이를 주선했다는 론디 의원이나 자유당은 이 프로젝트가 달링하버의 차이니스가든이나 오번의 재패니스가든과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맞는가?

한인 밀집 지역을 포괄하는 또 다른 현역 의원은 지난 임기 동안 쌓은 업적 중 다문화 민족  간 단합을 위하여 탁구대회를 유도한 사실을 꼽았는데 흥미롭다. 지역구의 이슈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한 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다.   

지면상 이런 사례를 더 들 수가 없겠다. 마지막으로 호주에서 오래 사는 동안 늘 걱정해오는 내 아젠다 하나를 말해 봐야겠다. 우리가 호주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살고 있으면 앞으로도 그럴 것인 가이다. 그렇지 못하는 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삶은 품위가 없어 행복할 수가 없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실제 경험한 일을 한두 가지만 말해봐야겠다. 불과 얼마 전 기차가 안 다니던 주말이었다. 30여 명의 아시아인(허름한 차림새의 영어를 못할 것 같은 중국계 중년 부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자기들 말로 크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버스가 제시간에 안 와 안절부절 기다리면서 이미 화가 나 있던 백인 신사(?)가 이들을 향하여 “샷 업!(Shut up!)”하고 고함을 치니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게 아시안들의 처지다. 나도 혼자 도맡아 싸울 수 없어 잠자코 있자니 씁쓸했다. 
또 하나는 불과 며칠 전 일이다. 러시아워 전동차 안 한 구석인데 인도와 중국계(아마도 한국계 몇 명 포함) 여학생들이 모여 재잘거리고 있었다. 4-50대의 백인 여성이 갑자기 눈을 흘기며 떠들지 말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이걸 보고 인종차별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는 노력이 중요한데 이민자들의 개인과 집단 차원에서의 방어 능력에 앞서 우리가 혐오 대상의 집단이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움직임이 어디 있는가? 그와 함께 이민자의 고충에 대하여 호주 대중을 이해시키는 운동도 필요하고 호주 매체와 정치인들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고충을 호주 정치인들에게 알리는 우리의 지도자가 있는가?  

요즘 호주에서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황인종 아시아인은 저들의 눈에 모두 중국인이다. 그만큼 중국인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이 점은 한인들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니며 두 집단 간 연대또한 필요하다.
지금까지 거론한 여러 정책적 가능성은 실현성, 타당성 모두 없는 나만의 독백일까. 다만 나는 호주의 정치과정에 참여하겠다며 출사표를 냈거나 이미 커뮤니티의 지도자 직함을 가진 인사들은 행사 때만 떠들썩하게 앞에 나설 게 아니라 평소 개인으로나 매체 지면을 활용, 각자의 소신을 활발하게 개진하고 구성원들의 의견도 경청해야 우리대로의 새로운 정치 이슈의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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