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탓도 있겠지만 부활절이 다가오면서 동네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떠난 쿠링가이는 한층 쓸쓸해졌네요. 그런데 이 부활절이 크리스마스나 양력설처럼 날짜가 고정된 것이 아니랍니다. 올 추석이 언제이지 알아보기 위해 달력을 들춰봐야 하듯이 부활절 역시 다소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거든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절은 ‘춘분 다음 보름달이 뜨고 그에 이어지는 첫 번째 일요일이 됩니다. 물론 계절이 거꾸로 흘러가는 호주에서는 추분과 보름이 지나고 첫 번째로 찾아오는 일요일이 되겠지요. 호주에서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큰 명절이랍니다. 금요일부터 시작해서 이스터 먼데이(Easter Monday)라고 부르는 월요일까지 휴일로 정해 직장도 쉬고 상가도 닫아가며 가족끼리 모여 식사도 하고 자동차에 이것저것 싣고 여행도 떠납니다.
비가 내렸던 작년하고는 다르게 올 부활절에는 날씨가 좋아 달빛이 쿠링가이를 가득 채우고 있네요. 치폴로니 셰프는 모처럼 휴가를 얻어 카타리나와 함께 처가가 있는 남부호주 아들레이드로 떠나고 카페에는 호주에 연고가 없는 저 청이와 양 마담 그리고 사장님만 남아 뒷마당 테라스에 앉아 맥주잔을 비우고 있네요. 양 마담이 주방에 가서 뭐 안주로 쓸 만한 음식이 남아 있는지 알아보라고 해서 막 일어설 때였어요. 사장님과는 고향친구며 동창인 배 사장님이 카페 앞에 와보니 가스등도 꺼지고 문도 닫혔다며 전화를 주셨어요. 저 청이 대나무 숲 사이를 돌아 나가 배 사장을 뒷마당으로 모셔왔어요. 배 사장님은 이스터 빵과 오븐에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칠면조와 펌킨 수프, 바로사밸리 와인과 시저 샐러드를 상 위에 풀어 놓으시며 우리끼리 파티를 하자며 너스레를 떠시네요.
술판이 무르익어가자 워니 사장님은 고향생각이 나시는지 당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옛날이야기 그러니까 사장님은 태어나기도 전이라 경험하지도 못했던, 하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집안에서 전해오던 할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시네요. 지독한 구두쇠이셨던 사장님 할아버지는 슬하에 여섯의 아들딸을 두셨다고 합니다. 식구들은 그 분의 지나친 노동 강요와 인색함을 질리도록 겪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귀한 밥알이 설거지물에 둥둥 떠있으면 그 다음 끼니는 굶어야 했어요. 할아버지는 대문을 나설 때도 반드시 한 손에 삽자루나 호밋자루를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들을 지나다 혹시 단비라도 만나면 논밭에 물꼬를 트고 간밤에 돋아난 잡초를 뽑기 위해서입니다. 걸어가면서도 눈과 손은 잠시도 쉬지 않았어요. 쓰러진 볏단을 일으켜 세우고 논둑에 떨어진 한 줄기 이삭이라도 주웠습니다. 벼 이삭뿐만이 아닙니다. 까치가 먹다 버린 감이나 녹슨 철사, 빈 농약병, 솔방울, 닳아 버린 고무신짝, 새끼줄, 약 먹고 죽은 쥐 하다못해 길바닥에 떨어진 쇠똥도 그에게는 함부로 버리는 물건이 아니었다네요. 들고 다니던 삽으로 바짝 말라 푸석푸석한 쇠똥을 퍼 담아 집으로 돌아와서는 거름통에 던져 넣어야 직성이 풀리셨다지요.
“당시 한국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가난했단다. 죽자사자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할아버지는 식구 중 누구도 낮잠을 자거나 가만히 앉아 있게 내버려두질 않았지. 주저앉을 듯한 토담 너머로 귀퉁이가 터지고 챙이 너덜너덜한 할아버지 밀짚모자가 보이면 마루에 잠시 모여 있던 식구들은 아연실색하며 광으로 부엌으로 뒤꼍으로 뿔뿔이 흩어져 장독을 돌보고 널어놓은 고추를 뒤적이고 소를 몰고 들로 나가야 했지. 당시로서는 시간은 돈이고 몸놀림은 금이었으니까. 그런 구두쇠 할아버지가 하루는 뭔 생각을 하셨는지 자손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서 삼촌들한테 대나무와 철사 등을 엮어서 굴렁쇠를 하나씩 만들어주셨다고 하더군. 모두 신이 났었겠지. 그렇잖아도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 심심했거든. 이제부터는 굴렁쇠를 굴리며 집으로 달려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좋았겠어. 그런데 말이다. 굴렁쇠를 만들어 준 우리 할아버지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는구나.”
자식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 한참 지나서야 당신들의 구두쇠 부친이 굴렁쇠를 하나씩 만들어준 진짜 이유를 비로소 알고 무척 억울해했다고 하네요. 계속 굴리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그래서 길에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굴려줘야 하는 굴렁쇠는 자식들로 하여금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의 도구였다고 합니다. 굴렁쇠는 학교가 파하면 한눈팔지 말고 곧 바로 달려와 집안일을 거들게 하려 했던 할아버지의 작품이었던 것이지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던 양 마담과 배 사장님은 할아버지의 속셈 아니 지혜에 감탄한 듯 입을 떡 벌리고 한참동안 다물 줄을 몰랐습니다. 두 분은 어쩌면 지혜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미덕이었던 절약과 근면에 대한 경이로움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있고요.
그러고 보니 쿠링가이 밤하늘 구름 위를 부지런히 굴러가는 보름달처럼 황톳길을 통통거리며 굴러갔던 굴렁쇠는 무척 아름다운 거네요. 저 청이, 배 사장님이 들고 오신 와인을 따기 위해 오프너를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섰어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히말라야 삼나무에서 시커먼 물체가 주방 쪽 지붕 위로 툭 떨어졌어요. 움찔하고 서 있는데 주머니 다람쥐 두 마리가 이쪽 지붕에서 저쪽 지붕으로 기왓장을 와장창 밟으며 달빛 속을 뛰어가는 게 보이네요.
박일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