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세상 만물과 모든 현상이 단지 하나의 개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연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서부터이다. 

가야산 자락에 있는 화엄종 사찰 해인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 부처를 신으로 섬기는 일보다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기에 대장경판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를 택했었다. 새벽 세 시에 만물을 깨우고 해탈을 비는 예식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묵언 합장으로 범종루를 향해 걸었다. 목탁 소리가 낭낭하게 들린다. 법고 소리가 박진감있게 울리는 삶의 소리처럼 공기를 헤집고 마음으로 파고든다. 언제든지 엄습해 올 수 있는 불행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인 것 같기도 하고 비틀거리는 마음을 되잡고 수도에 집중하려는 승려의 번뇌 같이도 느껴졌다. 세상사의 욕망에 등을 돌린 채로 빠르게 느리게 크게 작게 두드리는 법고 장단에는 희열과 비애라든지 연민과 분노이거나 사랑과 증오처럼 증폭된 감정의 변화들이 배어 있었다. 이어서 범종의 은은하고 웅장한 소리가 마치도 격한 마음들을 어르고 달래려는 듯이 부드럽고 깊게 허공 속으로 퍼진다. 현란했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조용히 가라앉은 후에는 안개가 걷히는 소리인 듯도 하고 소슬한 바람소리인 듯도 한 작고 미묘한 소리들이 들렸다. 물이 바위 위로 떨어지는 소리랑 계곡을 빠르게 흐르는 소리도 들리고 산짐승 움직이는 소리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섞여서 마치도 자연의 교향곡처럼 들려왔다. 힘찬 법고의 울림은 세상의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아마도 새벽 법고는 이렇게 깨어남으로써 이웃의 소리를 주의 깊게 잘 들으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나 보다. 축생들과 풀포기까지 온 우주를 공명하며 퍼지는 산사의 소리를 듣는다.  

얼마 전 여행길에는 친구와 함께 팔공산 동화사를 찾았다. 다음 주말이 초파일이라 절 입구부터 연등이 가득 달려 있었다. 인간의 수없이 많고 다른 소망들이 색색의 등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뭇 중생들의 세상이 고통보다는 바램으로 가득찬 것 같았다. 몇 년 전 팔공산에 있는 갓 바위 여래상에 대한 특집 영상물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이었었다.  자연 암벽에 조각된 약사 여래불은 중생들의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 준다고 전해져 내려오면서 해마다 새해 아침이나 동짓날 그리고 입학 시험이 있는 날은 기도를 드리려고 오는 참배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그때에도 색색의 등에 불을 밝히며, 백 팔배를 올리면서 소원을 비는 모습들이 절절했었다. 

이번 동화사 방문길에는 때마침 보문암 지호 스님의 ‘글씨로 그린 사경 부처님’ 이라는 전시회를 관람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처럼 세밀하고 작은 글씨 경문과 부처의 이름들로 그림을 만들며 한 치의 실수도 없는지 경이로웠다. 글자 하나하나의 음영으로 부처 모습을 짓고 있는 스님은 잡념을 떨치고 수행과 참선에 몰두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없어야 부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는 그는 작품 속 부처와 너무도 닮았다. 매일 하루 종일 열 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해서 두 달에 걸려 완성했다는 칼라차크라 만다라 작품을 보았다. 칼라차크라란 티벳 고승들이 사용하는 초기 불교시대 부처의 또다른 명칭이고 만다라는 부처님의 법을 한장의 형상으로 표현한 완전한 세계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 세상 만물은 어느 하나도 무의미한 것이 없고 각기 고유의 존재 의미를 지니면서 상호 연관성을 갖는다는 세계관이 만다라의 몇 겹 둥근 원 안에 크기와 색갈이 다른 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삼원색과 흑백 그리고 녹색의 화려한 색깔들이 각각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면서 영원한 시간의 수레바퀴를 나타낸다고 한다. 십여 년 전에 타스마니아에서 티베트 승려들이 며칠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채색 모래를 한알 한알 뿌려서 바로 이 그림을 완성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림에 마지막 모래알이 채워지는 순간 두 손으로 흩트려서 완성된 그림을 다 지운 후, 비로 쓸어 담아 강물에 띄워 보내는 예식을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산사의 단청도 만다라 불화와 연등들도 모두 화려한 빛을 띠고 있지만 결국 끝에는 없음으로 돌아가는 색의 세계를 보여 준다고 한다. 형형 색색의 빛이 목탁과 법고 소리로 깨어날 때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산사의 빛과 소리에는 깨달음을 얻으려는 긴 기다림이 서려 있다. 

윤세순(호주문협 수필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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