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경, 저와 지인 셋이서 닭 한 마리를 삶아 먹고 바로 자리를 옮겨 생선 구이 집에 갔었습니다.
 
“오늘 저녁엔 육, 해, 공군이 다 나오려나 보네요. 일단 공군과 해군을 먹었으니 다음은 육군인가요?” 

‘신라 적 버전’도 못 되는 ‘썰렁한’ 우스개를 하는 제게 옆에 앉은 분이 “요즘 닭이 무슨 공군이에요? 육군이지.” 하는 말로 응수합니다. 

닭을 이미 먹었기에 망정이지 막 수저를 들 참이었다면 그 비참하고 잔인한 진실 앞에 입맛이 딱 떨어졌을지 모릅니다. 요즘 닭들이 어떻게 키워지는지, 공장의 물건이라 해도 닭보다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는 저로서는 공연히 육, 해, 공군 운운했다는 후회마저 들 정도로 잠시 울적해졌습니다. 

저는 사실 그래서 닭고기를 되도록이면 안 먹습니다. 하기야 소나 돼지라고 해서 공장식 사육법에서 예외가 아니기에 소고기, 돼지고기 등등 고기 자체를 잘 안 먹는 편입니다. 나 하나 안 먹어서 닭, 소, 돼지, 오리, 개들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는 그런 이유로 잘 안 먹습니다. 계란이나 우유도 아주 적게 먹는 편입니다. 양식장의 어패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연히 생명 가진 것들이 비 생명체 취급을 받을 때 오는 스트레스와, 그 결과 병이 들면 거기에 또 ‘들입다’ 투여되는 항생제 따위를 생각해 보면 그런 동물들을 사람이 먹었을 때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쌓일 것 같습니다. 여북하면 병들어 죽어가는 닭을 다른 닭들에게 던져주어 그 닭을 쪼아 죽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도록 하는 양계장도 있을까요. 생명에 대한 만행이라 할 끔찍한 일입니다.
 
일전에 통일 전망대를 방문하는 길의 고속도로 휴게소 한편에는 빛깔 고운 열댓 마리 닭을 놓아 기르고 있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병풍이나 풍속화에 그려진 닭들이 불현듯 살아 움직이듯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홰를 치고 모이를 쪼는 모습이 그렇게 정겹고 소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종종거리며 어미 닭의 뒤를 쫓는 보송보송한 병아리들과, 알을 품고 있는지 볏짚에 웅크리고 앉은 것들을 보면서 모처럼 한가롭고 포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명이 생명에게서 느끼는 따스한 교감이라 할까요? 모름지기 힐링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생명 존중이란 그런 것입니다. 태어난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살게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아예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환경에서 키우다가 잡아먹을 때가 되면 잡아먹자는 거지요. 소나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본성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다가 적당한 때에 식용으로 하면 됩니다. 말하자면 원래 ‘공군’에 속해 있던 닭을 ‘육군’에 편입시키지 말자는 겁니다. 

그러려면 고기를 덜 먹어야겠지요. 육류 소비가 줄면 자연히 그렇게 될 테니까요. 자연산일수록 고기도 더 맛있고, 고기를 덜 먹으면 그만큼 우리 몸도 건강해질 수 있으니 인간도 좋고 동물에게도 좋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지금부터 당장 조금씩만 덜 먹으면 좋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조동화 시인의 시 <나 하나 꽃 피어>의 첫 연,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를 이렇게 패러디해 봅니다. 

'나 하나 덜 먹어 축사가 달라지겠느냐 말하지 말아라. 네가 덜 먹고, 내도 덜 먹으면 결국 축사가 온통 생명의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어디 그뿐입니까. 모피 코트를 치렁치렁 걸치고 코트 깃에 덧댄 정도로는 모자라 죽은 여우를 통째로 목에 걸고 다니는 여자들, 솜옷보다 더 흔한 오리털, 거위털 점퍼, 각종 가죽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때 인간의 탐욕에 의해 죄 없이 죽어가는 동물들의 한을 어찌 다 풀어줄지 가슴 아픕니다. 저도 물론 오리털 점퍼가 있고, 칼라 위에 동물 털이 올려진 코트도 있고 가죽 구두, 가죽 가방이 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만.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