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오늘처럼 쌀쌀한 날씨에 몸을 녹이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럼주가 최고라며 한잔 따라 마시고 나서 키를 잡고 있는 버트 씨에게도 권했어요. 하지만 버트 씨는 음주운전은 절대 안된다며 거절하시네요. 홑이불 같은 안개가 스르르 걷히면서 이제 배는 맹그로브 숲을 헤치고 동백나무 가득한 밀슨 섬으로 다가가네요. 밀슨 섬에 배가 닿자 이번에는 꽁지머리 청년이 배에서 내려 부교를 건너 언덕을 향해 오릅니다. 동백나무 숲 사이로 파란 대문이 보이고 그 너머로 하얗게 칠을 한 집이 한 채 더 보이네요. 다른 곳에서는 섬 주민이 부두까지 나와 우편물을 받아갔지만 이곳에는 여든이 넘은 화가 할머니가 혼자 사시기 때문에 집까지 직접 갖다 줘야한다고 버트 씨는 말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루터 양지바른 곳에 나와서 그림을 그렸는데 영감님 돌아가시고 도통 문밖 출입을 안 하시는구나. 예전에는 두 분이 뗏목을 타고 헉스베리 강을 오르내리는 걸 쉽게 볼 수 있었지. 늘 술에 취한 채로 삿대를 잡은 남편 곁에서 부인은 붓을 들고 헉스베리를 그렸지 뭐냐. 라벤다와 오두막, 여인숙의 풍각쟁이, 물레방앗간의 연인들, 고기잡이 배, 술파는 아가씨, 레이디 맥콰리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지. 때문에 그 그림만 봐도 호주 역사를 대충은 알 수 있단다.”      

꽁지머리 청년이 건너간 부교 기둥에는 가마우지가 한 마리 앉아 있습니다. 가마우지는 다음 사냥을 위해 저렇게 햇빛에 나와 젖은 날개를 한동안 말려야 한다고 합니다. 진흙을 품고 질펀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속내를 보일 것 같지 않은 헉스베리. 그래서 몹시 의뭉스러워 보이는 헉스베리이지만 오늘은 버트 씨를 만나는 바람에 그동안 간직해왔던 비밀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고야 마네요. 

“이봐요, 워니 사장.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헉스베리 강에는 스무 개도 넘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다오. 흐르는 강물로 수차를 돌려 밀과 옥수수를 빻던 물레방앗간. 배를 타지 않으면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던 강 한복판에 참나무로 지어진 호젓한 물레방앗간 말이야. 콸콸대며 흘러내려오는 계곡물과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수차가 내는 소리는 얼마나 끈적거리며 관능적이었던지. 맞은편 계곡에서 라이버드와 노랑부리새가 지저귈 때 그 소리는 또 얼마나 감미롭고 꿈결 같았는지. 그 당시 헉스베리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건 흐드러진 치자 꽃잎 위로 달빛이 화사하게 내려앉는 밤이건 아니면 오늘처럼 천지가 물안개로 덮여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강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던 날이건 간에 연인들에게는 늘 매혹적인 장소였어. 작은 배들이 연신 철썩거리며 물레방앗간을 찾아 강을 오르내렸으니까.” 

그런데 백인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원래 <다러그>와 <쿠링가이>라는 원주민 부족이 여기서 살았대요. 그러니까 이 지방이 쿠링가이인 것은 여기 살았던 원주민 부족에서 따온 거네요. 부족의 남자들은 농사를 짓기보다는 카누를 타고 고기를 잡거나 부메랑을 던져 사냥을 했으며 여자들은 열매를 따거나 구근을 채취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그들은 차츰 자리를 내주고 쫓겨나야 했습니다. 아서 필립 선장이 헉스베리 강을 탐험한 후 백인들을 정착시키던 초기만 해도 원주민을 백인사회로 끌어들여 질병과 기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학자들은 아서 필립이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Noble Savage(고결한 야만인)' 풍조에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고갱처럼 타히티 같은 작은 섬이나 미개척 대륙으로 찾아가 원시인들과 함께 살고자 했던 유럽 지식인 중에 그가 다행히 끼여 있었기에 그나마 원주민들이 보호될 수 있었다는 거지요. 하지만 모를 일이에요. 이 또한 백인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거라 원주민 쪽에서 보면 진실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이야기일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모든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헉스베리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맹그로브 숲을 흐르고 있네요. 피셔맨스 포인트를 돌아 야자나무, 삼나무, 너도밤나무 등으로 우거진 <바 아일랜드>로 들어서니 배를 기다리던 동네사람 몇몇이 부두로 걸어왔어요. 꽁지머리가 우편물이 들어 있는 박스를 전해주자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열어젖히며 마냥 즐거워들 하네요. 우편선이 탐스러운 폭포수와 무지개 옆을 지날 때였어요. 제가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며 사진을 찍자 버트 씨가 한 마디 하시네요.

“청이야, 풍경을 그때그때 감상하면 되지 뭐하겠다고 그렇게 애써가며 사진을 찍어대냐. 요즘은 너나 없이 휴대폰들을 갖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난 그거 못 마땅해. 영상을 디지털 카메라에 저장하기 보다는 네 마음속에 담아 두거라. 대숲 속을 지나온 바람, 의뭉한 헉스베리의 물빛,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은행 빚이 산더미 같은 굴양식업자의 한숨소리, 장래가 불안한 우편선 보조기사와 그 할아버지의 고민, 느리게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소박한 심성을 기록하는 일은 디지털로는 할 수 없는 일이란다. 감성의 렌즈로 대상을 포착하기 바란다.”    

듣고 보니 버트 씨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 청이는 헉스베리를 딱딱한 사각의 프레임 속에 가두기보다는 부드럽고 둥그런 심장으로 느껴보기로 했어요. 헉스베리 강물은 정지된 화면보다는 자유롭게 흘러가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박일원(수필가)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