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옥 할머니와 잰 오헌 할머니의 딸 캐롤 부부

길원옥 할머니, 캐롤 오헌, 빌 크루즈 목사 등 참석
6일 시드니한인회관 성대한 제막 행사 

 
남반구 최초인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이 6일(토) 시드니한인회관(백승국 한인회장)에서 성대한 제막식을 가진 뒤 이날 오후 영구 안치 장소인 애쉬필드유나이팅교회(빌 크루즈 목사)로 안전하게 옮겨졌다. 소녀상은 당초 제막식 후 한인회관 안으로 옮겨진 뒤 몇 개월 후 교회로 이전될 계획이었지만 일본측의 반대와 훼손 가능성 등을 고려해 제막식 직후 보다 안전한 교회로 옮겨졌다. 조경 공사 후 대로 변에서 볼 수 있도록 리버풀로드 쪽 교회 정원에 안치될 계획이다.

6일 제막된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은 연말 한국과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지 않은채 일방적인 합의를 하자 올해 광복절을 한 주 앞두고 이 합의는 무효이며 세계 곳곳에 소녀상을 건립해 20세기 최대 인신매매 인권유린 사건인 위안부 문제를 재인식하자는 취지에서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이하 시소추, 공동대표 박은덕 강병조 신준식)’가 연초부터 추진했다. 경기도 성남시(이재명 시장)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 윤미향), 성남시 평화의 소녀상추진위원회(위원장 원복덕) 등의 후원으로 제작됐다. 또한 북미 세 곳(미국 2곳, 캐나다 1곳)에 이어 외국에는 처음이며 남반구 최초라는 의미도 있다. 

“살아 있을 때 일본 정부 용서를 바랐는데..”
“위안부 피해자 절대 잊혀지지 말아야 한다”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주관으로 한인회관 앞마당에서 열린 제막식은 시종 엄숙한 분위기에서 품위 있게 거행됐다. 교민들과 호주인, 중국, 중동 커뮤니티 관계자 등 약 3백명이 참석했고 백시현 시소추 대변인이 진행을 맡았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89) 할머니, 애들레이드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자 잰 러프 오헌(93) 할머니의 딸 캐롤 오헌, 빌 크루즈 목사, 백승국 시드니 한인회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작가, 린다 버니 연방의원(노동당, 바튼 지역구), 어니스트 웡 NSW 상원의원(노동당) 등이 참석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야할 정도로 기력이 약해졌고 기억력도 희미해졌지만 직접 쓴 글을 낭랑한 목소리로 낭독하며 일본의 사죄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면서 시드니에 소녀상이 세워진 것에 기쁘다고 말했다. 평북 출생으로 13살 때 평양에서 위안부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한 뒤 해방이 되면서 귀국한 길원옥 할머니는 “살아있을 때 일본 정부를 용서하기를 원했는데 잘못을 저지른 일본이 용서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질 않네요. 일본이 꼭 사죄할 날을,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서 제 부모님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던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여전히 꿈꾸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헌 할머니는 육성 녹음을 통해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의 잔인한 억압을 받은 모든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정신적 고통과 외상 그리고 인내를 상징합니다. 그 여성들은 아직도 그 기억에 평생 고통을 받으며 힘들어 합니다. 위안부 피해자는 절대로 잊혀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 소녀상은 그들의 역사입니다. 그 잔혹한 행위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소녀상을 교회에 안치하려는 뜻을 밝힌 뒤 일본측의 제소 위협 등 압력을 완강하게 거부하며 교회의 사회정의 역할을 강조해 주목을 받은 빌 크루즈 목사는 “이 동상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 유린을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되새기는 이정표라는 의미가 담겼다.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오헌 할머니의 딸 캐롤은 “앞으로 더 많은 소녀상이 공원이나 박물관 등 공공장소에 세워져 많은 시민들에게 그 의미를 알렸으면 좋겠다”라고 희망했다.  

축사에서 린다 버니 연방의원은 원주민 자녀를 국가와 교육, 종교 기관 등이 강제로 빼앗아 이산가족을 만든 ‘빼앗긴 세대(the Stolen Generations)’의 수난에 대해 호주 정부가 2008년( 케빈 러드 총리 시절)에서야 공식적인 정부의 사과를 했다는 점을 거론하고 “아무리 정부가 부인하고,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더라도 진실과 참상은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런 기념 조형물이 시드니한인회관에 제막된 것을 축하한다”고 격려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축사에서 “한일 정부의 일방적 합의는 헌법상 무효이며 불가역적 합의란 있을 수 없다”면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 인권 유린 방지가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의무”임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평화의 소녀상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인권 보호의 상징물이란 점에서 성남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보탰다”고 설명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연대사를 통해 “지난 12월말 한일 정부가 피해자들의 염원과는 전혀 다른 일방적 합의를 했다. 서울의 주일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도 철거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피해자 할머니들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정의기억재단을 시민들의 힘으로 출범시켰고 평화의 소녀상을 세계 곳곳에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38명에서 현재 40여명에 불과하다.

길원옥 할머니, 시소추 관계자들과 후원자들

“가장 의미, 보람 있는 행사” 

앞서 강병조 시소추 공동대표의 개회사 및 시소추 활동 보고, 백승국 한인회장의 환영사, 소녀상 제작의 후원사인 황성진 이솔 코즈메틱 대표의 축사, 성남시 평화의 소녀상추진위원회 원복덕 위원장이 인사말을 전했다.

퍼포먼스로는 이지언 현대무용가의 살풀이춤으로 베일에 가려있던 소녀상이 공개되자 환호가 터져 나왔다. 호주인 혼성 합창단인 솔리데리티 합창단(Solidarity Choir)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한국어로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신준식 시소추 공동대표가 축시 ‘평화의 길을 걷는다’를 길원옥 할머니께 헌정했다.  

박은덕 시소추 공동대표의 폐회사로 제막식이 종료됐고 250여명이 한인회관에서 주최측이 준비한 오찬을 함께했다. 

제막식에 참석한 이회정 회계사 등 여러 교민들이 “시드니한인회의 30여년 역사에서 가장 의미와 보람이 있는 행사였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날 행사에는 교민 언론 외 호주 공영 ABC 방송, 시드니모닝헤럴드지, 중국 신화통신, 일본의 NHK 방송과 교도통신 기자들이 나와 열띤 취재 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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