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부부가 함께 모임에 가거나 행사에 동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제게는 의아하게 여겨집니다. 처음에는 한국의 전반적인 그런 분위기를 눈치 못 채고 누구누구네는 부부 사이가 안 좋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드랬습니다. 내 생각에는 부부가 함께 나올 만한 상황인 것 같은데도 도무지 배우자를 볼 기회가 없기에 부부 금슬에 문제가 있는 걸로 지레짐작했던 것입니다. 

돌아온 대꾸는 “그냥, 어쩌다 보니, 남들도 다 그러니까, 그게 편해서, 그게 어때서?, 왜 같이 다녀?” 등등,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그걸 무슨 질문이라고 하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좀 심하게는 무슨 개 풀 뜯는 소리냐는 식이었습니다. 

저의 호주 경험에 비추어 이 질문을 거꾸로 해본다면, 즉 “왜 당신네 부부는 늘 함께 다니나요?” 라고 했을 때 “그냥, 어쩌다 보니, 남들도 다 그러니까, 그게 편해서, 그게 어때서? 왜 같이 안 다녀? “라고 같은 반응이 돌아올 것입니다. 별 시답잖은 걸 다 묻는다는 표정을 지을지도 모릅니다.  

정반대되는 질문임에도 답이 같다면, 거꾸로 똑같은 질문에 답이 다르다면 그것이 곧 ‘문화 차이’입니다. 특별히 부부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 중년 부부의 ‘따로따로 현상’은 시나브로 문화적 현상으로 정착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호주 동포사회에서는 사적인 영역에서 부부가 반나절만 따로 움직이면 “저 집 오늘 부부싸움 했군, 어지간하면 풀고 그만 좀 티내고 다니시지.” 할 정도가 아닌가요? 하지만 한국의 경우 반나절이 아니라 10년을 별거 중이라 해도, 애 저녁에 이혼을 했다 해도, 안 할 말로 배우자가 죽었다 해도 내가 입을 열지 않는 한은 가까운 주변 사람들한테도 티 안 내고 지낼 수 있겠더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쪽의 삶이 당연하거나 옳다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가 각자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뭐가 잘못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모든 문화현상에는 그 공기를 호흡하는 당사자들은 미처 체험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 같은 취약하거나 부정적 요소가 있습니다.  

대저 서양처럼 부부가 너무 붙어 다니는 경우 그저 ‘물고 빨고’ 하는 것만을 사랑이라고 여기는 부작용이 있는 반면, 우리처럼 떨어져 지내는 것이 당연시될 경우 그야말로 ‘부부유별’을 제대로 실천할 기회에 봉착했다고 할 밖에요. 원래 뜻 말고, ‘이혼이 잦아진 요즘,  부부끼리 재산은 따로따로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네이버 지식 인에 정의 되어 있는 ‘부부유별’ 말입니다. 

하지만 이혼의 위기를 느낀다면 오히려 건강한 관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감각이 살아있을 때처럼요. 그래야 상처가 나도 치료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부부가 이토록 하염없이 따로 생활하고 ‘각자도생’하는 듯해서야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무감각해져서 이혼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게 아닌가요?   
 
불현듯 이런 우스개가 떠오릅니다. 

“부부가 잠을 잘 때 20대는 서로 껴안고 자고, 30대는 마주 보고, 40대는 나란히 누워 자지만 50대는 등을 돌리고 잔다. 어언 60대가 되면 각기 다른 방에 가서 자다가 70대는 어디에서 자는지조차 서로 모른다. 그렇게 80대에 이르면 이승과 저승으로 갈려 영원히 따로 잔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웃고 나면 오히려 서늘해질 때가 있지요. 이 우스개도 그렇습니다. 부부 관계를 너무 소원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됩니다. 딱히 우리 부부를 지적하는 듯하여 듣기 거북하다면 ‘한국의 부부문화, 특히 중년부부 문화, 이대로 좋은가?’라고 타이틀을 달아 공론화 해봐도 좋겠습니다. 

내 가정도 제대로 못 꾸린 제가 한국의 중년 부부 문제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 줄 너무나 잘 압니다. 하지만 행여 부부간의 해묵은 갈등을 회피하고 그저 덮어두기 위해 각자 바깥으로 도는 경우라면 언젠가는 문제가 표면화될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한국의 중년 부부들의 따로따로 ‘생태’를 그저 그러려니 하고 가치 판단 없이 바라보면서도 한편 위태로워 보이는 것도 그러한 염려 때문입니다. 함께 살고자 한 결혼이라면 일상을 함께 나누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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