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뜬금없이 아들이 결혼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아들애의 속내가 궁금했습니다. 아들은 주변의 여자들과 가벼운 데이트를 하고 짧고 부담 없는 만남을 가지는 것의 공허감을 이런 우스꽝스런 비유로 표현합니다. 

“마치 월세 집에 사는 느낌 같아요. 아무리 집이 좋아도 그건 내 집이 아니잖아요. 집이 좋을수록 세만 더 나가고 그렇게 나간 돈은 흔적도 없이 그때그때 다 증발하고. 하지만 집을 사면 힘들긴 해도 모기지를 갚아갈수록 보람도 느끼고 결국엔 내 집이 되는 거잖아요.” 

아들의 말에 저는 하하 웃었습니다. ‘월세 집과 연애’, ‘내 집과 결혼’의 대비가 절묘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아주 틀린 비유는 아닌데다, 아닌 게 아니라 실속 없는 다수의 연애보다 내실 있는 한 번의 결혼이 ‘흑자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왕 ‘셋집과 내 집’으로 아이가 먼저 비유를 들었으니 저도 집을 예로 제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래도 셋집은 내가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잖아. 집을 비워주면 그걸로 그만이지. 하지만 내 집이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지. 혹여 집이 마음에 안 든다 해도 가볍게 훌쩍 버릴 수가 없잖아. 물론 팔아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하기 까지 적잖은 고민을 해야 돼서 이럴 줄 알았으면 월세에서 살 걸 하고 후회할 수도 있거든. 그나저나 집을 산다고 쳤을 때 너는 어떤 집을 원하니?” 

집으로 시작된 비유이니 역시 집을 비유로 들어 시쳇말로 아들애의 ‘이상형’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집 크기는 얼마 만 하고, 방은 몇 개가 있어야 하며 마당은 얼마나 넓은 집이 좋겠냐고 말이지요. 

“어떤 집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해도 꼭 그런 집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집을 보러 나가기 전에 대략적인 구조나 예산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게 아니냐?”며 내친 김에 한 발 더 나가는 저에 대해 아들애는 집을 빗대어 ‘이상형’ 운운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네 경우는 우선 한옥이냐 양옥이냐부터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 라는 제 말에 그만 말문이 막혔는가도 싶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민 2세대로서 한국 여자와 결혼할 건지, 호주 여자를 원하는지가 중요한 사안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들애는 원점으로 돌아가 이런 말을 합니다. 

“결혼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쾌락에는 허무함과 공허감만 따라 오지 마음 깊은 행복이나 안정감이 없어요. 관계를 맺어가는 정성이나 서로의 신뢰를 쌓아가는 보람도 느낄 수 없고요. 세월이 흘러도 곁에 아무도 없는 거지…그런데 결혼하면 책임이 생길 텐데 그게 또 완전히 자신이 있는 건 아니고…”
 
아들은 정직하고 성숙한 편입니다. 결혼의 길을 가려면 사랑에 따른 고통과 헌신에 대해 용기 있게 직면해야 하며, 결혼의 본질은 달콤한 연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 뿐 아니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연애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들애는 최근 반듯한 직장을 가졌습니다. 학벌도, 외모도, 마음 바탕도 반듯한 편입니다. 부모 못난 것만 빼고는 ‘조건’에서 크게 빠질 것 없는 신랑감이니 속된 말로 ‘결혼 시장’에서 1등급은 못 되도 ‘팔아먹기엔’ 큰 하자가 없는 ‘상품’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않습니까. 결혼생활을 해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지난한 혼인관계를 애면글면 지탱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사랑은 돈과 조건으로 사고팔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요.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도록 정량화 수량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과 거래’를 혼돈하거나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행복이 성적순이 아닌 줄 이미 인생을 살아본 우리는 잘 알고 있듯이, 결혼의 행복도 조건 순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들은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즉문즉설’로 대중과 만나는 정토회의 법륜 스님도 결혼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만 20~25세 이상, 무조건 상대에게 맞출 마음’ 이 두 가지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하고라도 결혼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담에 아들이 또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거두절미하고 저도 스님의 결혼 조건을 말해주렵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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