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우리 애들 봐 주는 거야 당연한 거 아냐? 어차피 걔네들이 할머니, 할아버질 모실 테니까. 우리야 뭐 돈이 있어야지, 해드리고 싶어도 여력이 없잖아. 그러니까 손주들한테 잘해야 되는 거지, 그분들은 지금 우리 애들 통해서 노후 보험 든 거라구.” 

얼마 전 서울 서초동 어느 카페에서 젊은 여자 둘이 하던 이야기입니다. 대화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라 반사적으로 두 여자를 쳐다보게 됐습니다. 

너무나 ‘멀쩡하게’ 생긴 두 여자, 생긴 것만 봐서는 우리나라 여성들, 나아가 젊은이들의 표준 초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한데 과연 두 사람의 발언 또한 대한민국의 같은 또래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지 적이 당혹스러웠습니다. 

맞벌이하는 자식들을 대신해 손자 손녀 봐 주시는 부모님들께 여쭙습니다. 그 녀석들한테 덕 볼 생각으로, 이담에 손 벌릴 계산으로 그 고생하고 계신지요. 일한 공은 있어도 애 봐 준 공은 없다는 말처럼 ‘공 없는 일’에 ‘공치사’나마 들을 기대조차 없건만 언감생심 노후를 의탁하다니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소리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 자식들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연실색’할 노릇입니다. 

그동안 부모에게서 받기만 하고 자란 세대 아니랄까 봐 염치없고 뻔뻔하다 못해 이제는 계산까지 헷갈리나 봅니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이제 갓난 ‘지 새끼’가 이담에 조부모를 봉양할 거라니요. 제가 놀란 것은 부모 등골을 ‘빼먹다’ 못해 본인들의 자식 세대까지 자기 본위로 재단하는 거리낌 없는 '요즘 젊은 것들'의 당돌하고 무도한 사고방식입니다. 

더구나 지네들 말마따나 지네들도 돈이 없는데, 지네들 자식은 돈이 있으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또 걔네들이 조부모를 모셔야 한다면 지네들도 걔네들 자식을 봐 주고 이담에 모심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인데 누구 맘대로 그게 가당하답니까. 돈이 없기는 또 뭐가 없답니까. 얼마나 있어야 있는 거고, 얼마나 없어야 없는 건가 말입니다. 다 마음이고 정성이지요. 

기왕지사 시대가 바뀌었으니 한 대를 걸러서 노인을 봉양하는 인습이 재정착 된다면야 그 또한 나쁠 게 없겠지요. 어차피 장수 시대니까요. 하지만 그 젊은 여자들의 본뜻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부모한테 어린 자식 맡기는 걸 고마워하고 죄송스러워하기는커녕 당연하게 여기다 못해 자기 자식들 통해서 노후 덕 보게 될 거라며 ‘면피’를 하려는 심보가 고약해도 여간 고약하질 않습니다. 공부시켜, 결혼시켜, 집 장만해 줘, 그것도 모자라 손자 손녀까지 도맡아 준 보답이 기껏 이거였나, 허탈하고 배신감 듭니다. 

그러기에 돈이건, 체력이건, 시간이건, 마음이건 자식들한테 ‘올인’하지 말라고 매스컴 등에서 주야장천 떠들어도 끄떡도 않는 부모님들, 이번에야말로 생각을 좀 다시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기사 “자식한테 다 쏟아 부으면 안 된다는 걸 누가 모르냐, 알아도 하는 수 없으니 이러고 있지.” 라고 하실 테지만요.

저도 20대 중반의 자식이 둘 있지만 호주에서 자란 탓에 한국의 젊은이들과는 생각부터 다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부모를 모신다’는 개념조차 없기에 ‘내 자식한테 봉양토록 하자’는 따위의 ‘어처구니 없고, 얄미럽고, 얌체 같은’ 발상을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호주는 시스템이 갖춰진 나라이니 혼자 밥 끓여 먹는 것마저 힘에 부치면 자식이 있건 없건 노후를 양로원에 의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자식들로서는 그나마 시설 좋은 곳에다 모시는 것이 노부모를 봉양하는 최선의 효도인 셈입니다. 일반 양로원 입주야 국가가 감당할 몫이지만 개인 돈이 추가되면 고급 설비와 질 높은 간호가 제공되는 곳을 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주에 살 때 한 양로원 입구에 붙여놓은 글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젊어서 자식들한테 잘하라, 그래야 늙어서 시답잖은 양로원에 안 갈 테니!' 

자식들에게 그나마 몇 푼 보태게 하려면 젊었을 때부터 자식들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는 ‘씁쓸한 진실’입니다. 
싫든 좋든 우리나라도 노후생활을 국가가 관리하는 쪽으로 가게 될 테니, 그때가 되면 제가 본 두 젊은 여자들의 말이 시스템 속에 담겨 이렇게 표현될 테지요. 

‘늙어서 손주들한테 잘하라, 그래야 더 늙어서 시답잖은 양로원에 안 갈 테니!’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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