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2015년 호주리서치센터에 의해 수행된 ‘21세기 호주 거주 한인들의 사회통합 실태조사’ 결과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 연구 참여자는 조사 시점 기준으로 12개월 이상 호주에서 거주 중인 18세 이상의 성인 남녀로서, 관광이나 가족 방문 등의 목적을 가진 단기 체류자는 본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8회 한인들의 문화참여

몸은 호주에, 삶의 방식은 아직도 한국식

“호주 문화는 한국과 다르지만,
호주 라이프스타일은 자랑스럽다”

77% “한국과 호주 생활방식 달라”
문화는 흔히 편하게 ‘사람들의 생활양식’으로 정의하는데, 그 개념은 매우 추상적이다. 문화활동은 일차적으로 소비생활을 포함하는데, 사회구성원들의 공통적인 소비행위나 소비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고 소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 광범위하게는 전통이나 가치관, 그리고 그 사회의 삶의 질을 반영하는 활동을 포함하는데, 전통문화과 대중문화에 참여하여 소위 그 사회의 문화코드에 접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콘서트, 전시회, 지역사회 행사나 축제 등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 개념적 모호함과 광범함에도 불구하고 문화활동에 대한 참여는 개인의 사회통합과 사회 전체의 응집력 수준을 판단하는 주요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간의 기본권의 한 구성요소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즉, 문화활동에 대한 참여가 낮은 이는 사회적 배제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민자들은 새로운 사회의 생활방식 및 가치관과 접촉할 수 밖에 없으며, 때로는 모국과 이민국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정착과정에서 문화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한인 이민자들은 호주의 문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호주 생활방식, 문화 자부심 느끼나?
41.3% “그렇다”  12.6% “아니다”

우선, 한국과 호주의 생활방식과 문화가 비슷한지 아니면 다른지 물어본 결과, 대다수의(77.6%) 응답자들이 ‘다르다’고 대답했다(‘매우’ 18.4%, ‘다소’ 59.2%). 다음으로, ‘호주의 생활방식과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가’는 질문에는 ‘그렇다’는(41.3%) 응답이 ‘그렇지 않다’(12.6%)는 응답보다 월등히 많았다. 상기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인 이민자들은 호주 사회의 주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상당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그 문화적 이질감은 한인 이민자들의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다수의 한인들은 호주의 생활방식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혜택에 더욱 주목하고 있으며, 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그것에 동화되고자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호주의 생활방식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 (%)

대중문화와 격리된 생활방식
21.6%만 “호주 스포츠 관심, 즐긴다”

그럼, 실제 한인들의 문화참여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관해 여러가지 지표가 이용될 수 있으나, 대중문화에 대한 참여실태에 관한 몇가지 질문으로 가늠해 보았다. 우선, TV 연예물이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응답자는 13.1%로서(‘자주’ 12.4%, ‘항상’ 0.7%) 매우 드물었다. 언어적인 요인과 함께 최근 인터넷을 통한 한국 방송에 접근성이 보편화된 현상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추측된다. 

다음으로, 호주 스포츠에 대한 참여율을 살펴보았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호주인들이 스스로 호주인의 특성으로 꼽는 덕목 중의 하나이며, 호주의 고유한 생활방식의 한 구성요소다. AFL(호주식풋볼), NRL(럭비리그), 크리켓, 축구 등 호주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한인 응답자는 다섯 명 중의 한 명 꼴로서(21.6%) 역시 많지 않았다. 대체로, 한인 이민자들은 호주의 대중문화에 낮은 공감도를 보이고 있으며, 대중문화와 다소 단절된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나 스포츠는 일상적인 대화 주제가 될 수 있고, 따라서 호주인들과의 대인관계 형성과 사회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호주 대중문화 참여율(%)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행사 참여 10% 미만
한인 이민자들의 호주 문화와의 단절은 1월 26일 ‘호주의 날(Australia Day)’ 참여율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호주의 날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한인 이민자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매년’ 1.3%, ‘자주’ 5.3%). 아직까지 한 번도 참여해보지 않은 응답자가 40.1%, 한 두번 참여해 본 응답자가 36.8%로서 지금까지 호주의 날은 한인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공휴일에 지나지 않고 있다. 

“호주 문화, 가치 체득 노력 필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화는 사회통합의 가교역할을 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호주의 생활방식과 문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으나, 대체로 느린 삶의 속도(laidback lifestyle), 경쟁보다는 연대의식(mateship),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을 호주인다움(Australinness)의 공통 요소로 꼽는다. 분명 한인들이 모국에서 체득해왔던 것들과는 상반되거나 다소 거리가 있는 가치들이다. 

상기 조사결과들을 요약해 보면, 한인 이민자들은 호주의 생활방식과 문화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만 실제 그 일부가 되기 위한 활동이나 노력은 매우 미흡하다. 마음은 따라주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으로 비길 수 있을까? 

아무튼 결과적으로 한인 이민자들은 물리적으로는 한국을 떠나 삶의 방식은 여전히 한국적인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적 생활방식이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버리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 필요가 있다(민족적 정체성과 사회통합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더 논의할 것이다). 호주 문화를 체험하고 그 일부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한인 이민자들의 사회적 배제를 줄이고 더 통합된 일원으로 성장하자는 의미다.

정용문 박사(시드니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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