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도라 제주에는 ‘여자, 돌, 바람’이 많다지만 한국 전체로 말할 것 같으면 ‘보행자 신호등, 물 그리고 소음’이 길고, 넉넉하고, 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지 4년 째, 횡단보도 초록 불이 들어오고도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다시 30초라는 ‘보너스’가 주어지는 것에 놀랐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습니다. 물론 인구가 많으니 길을 건너는 사람들도 물 밀 듯해서 보행 시간을 길게 주는 것이 당연하겠지만요. 

두 번째 넉넉한 한국의 인심은 물입니다. 관공서, 일반 빌딩, 백화점, 은행, 도서관, 식당 어디를 가든 음용수를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으니 호주와 비교하여 물 인심 후하기로 치자면 거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온 느낌입니다. 과장을 좀 하자면 호주에서라면 물을 마실 건지, 밥을 사 먹을 건지 양단간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세 번째는 소음입니다. ‘소음이 넉넉하고 후하다’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니 정확히는 ‘소음에 대한 한국인들의 넉넉한 아량, 무한 인내심’에 경이로움을 표하고 싶다는 게 맞는 말일 것입니다. 

소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는 거의 미칠 지경입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보일 때는 시선을 피하거나 눈을 질끈 감으면 된다지만, 듣고 싶지 않은 소리는 당장에는 무방비라는 점에서 정말 괴롭습니다. 길을 지나다 귀를 틀어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장 익숙한 소음으로는 모바일 폰과 화장품 가게 점원들이 길에서 확성기로 호객 행위를 하고, 의류점 등이 바겐세일로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일입니다. 그 밖에 개업하는 식당이나 술집 광고 등도 길거리 소음의 주범들이지요. 

게다가 명동의 한 영화관은 관람객들에게 영화 상영 시간을 알리고 표를 사고파는 소리를 아예 거리 전체로 다 퍼져 나가도록 해 두어 그야말로 ‘아연실색’할 노릇이었습니다. 

“무슨 영화가 몇 시에 하나요?” “ 오늘은 상영 끝났습니다.” “그럼 다른 영화로는 뭐가 있지요?“ “무슨 무슨 영화가 몇 시 몇 시에 있습니다.” “그걸로 주세요.” “ 몇 시 꺼, 몇 장 필요하세요?” “그 시간으로 두 장이요.” “즐거운 관람되세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야 말할 것도 없고, 확성기를 통해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괴롭히면서 영화 안내와 입장권 구매 상황으로 온 종일 명동 거리를 시끄럽게 해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온종일 불필요한 소리와 소음에 무방비 상태로 당하며 스트레스를 ‘만땅’으로 받기 때문에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에 그토록 과민한 반응과 비상식적인 대응을 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내 소리’가 ‘네 소리’보다 커야, ‘내 음성’이 ‘네 음성’을 덮어 눌러야 비로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네게 전해진다고 생각하는 한 소음을 줄일 방도는 없습니다. 이쯤 되면 소통이 아니라 거의 윽박지름에 가까우니. 

물론 한국에도 생활 소음 기준이 있고 규제 조항, 소음 발생 허용 시간대 등도 법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주상 복합 주거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엔 아래층에서 밤새 영업하는 노래방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잔 날이 드물다는 민원, 개 때문에 온 동네가 새벽부터 잠을 설친다는 호소가 있지만 여전히 관대하다는 느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시끄러운 소리에 습관이 되어서일까요? 소형 라디오를 허리춤에 차고 가요를 들으며 산행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잠시라도 고요히 자신 속에 침잠하며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내면과 조용히 독대하는 시간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요. 보든 안 보든 무심코 텔레비전을 틀어 놓아야 하고, 잠을 잘 때도 TV를 끄면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그저 생활의 일부일 뿐, 어쩌면 소음은 더 이상 소음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하루빨리 적응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을 듯합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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