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아고라’ 등 포털여론 광장 말고 ‘블로그 아고라’라는 ‘덧글 향연장’을 아시는지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예술활동이 이루어지던 아고라 광장처럼, ‘블로그 아고라’는 온라인 버전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이라고 할까요? 비록 술은 없지만 블로그 포스팅을 주제로 펼치는 덧글 대화 공간을 의미하는, 제가 만든 말입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제가 일전에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남의 가정을 깬 불륜녀로 유명세까지 톡톡히 치르며 ‘동양의 악녀’로 불리기도 한 요코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Newyear’의 덧글이 올라왔습니다. 거기에 제가 “잘 한 건 아니지만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으니, 좀 봐주자”라는 식으로 답글을 올리자 ‘dada’라는 아이디를 가진 독자가 곧 등장했습니다. 

“Newyear와 천우 신아연 님, 두 사람의 대화에서 이성과 감성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보고 시비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부정확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나로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내 머릿속에서 어떤 가치 판단을 하여 시비를 가리는 마음장치는 과거에 입력된 어떤 지식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판단하도록 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위험한 것은 과거의 잘못 입력된 정보가 현재의 내가 진실을 눈앞에 보고 만지면서도 그것을 진실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변화합니다. 어제까지 참 진리로 철석같이 믿던 것도 오늘은 거짓으로 인식되고,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거짓으로 여겨오던 것들이 오늘은 참 진리로 인정받는 것을 보면, 무엇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인식한 그 순간의 그의 생각일뿐 아닐까요?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일부일처제가 시행된 것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지금도 지구상 모든 나라가 일부일처제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즉 예술은 예술의 시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예술인의 삶 또한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삶을 일반인과 같은 잣대로 보는 것은 감성을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Newyear 님과 신아연 님 두 분의 의견이 다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이성적으로는 Newyear 님의 말이 맞고, 감성적으로는 신아연 님의 말이 맞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것은 옳고 그르고를 따질 일은 아니지만요. 

이는 마치 ‘이성적인 사상을 펼친 맹자가 옳으냐? 감성적인 사상을 펼친 장자가 옳으냐?’를 따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두 분의 사상 모두를 진리로 아우르며 존중하고 있지요. 그것은 사람이 이성과 감성의 복합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결혼은 서로의 결핍을 메우는 화학적 결합이었다고 봅니다. 지식과 정에 목말랐던 존 레논은 지적인 동양 여성 요코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성적 지식 너머의 감성적 갈증을 느꼈던 요코는 존 레논의 예술세계를 접하면서 서로 구분될 수 없는 결합을 한 것이겠지요. 이런 사람들이 있었고 있기에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문화와 예술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이끄는 것은 아닐까요?” 

이 같은 다다의 열띤 변론에 대해 ‘밀라노’가 “dada 님의 명쾌한 글을 읽으면서 크게 감동했습니다. 특히 ‘사람은 과거의 나로 현재를 살아간다’는 말씀은 제 삶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지혜입니다. 아, 이런 것을 지혜라고 하는구나!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꾸벅 꾸벅 꾸벅 ^^” 하며 감탄을 쏟아내자, ‘소나무’ 라는 분이 “ dada님의 논쟁과 시비를 조정하는 지혜에 감탄했죠. ‘정리는 이렇게하는 거구나’ 하고서.”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이에 ‘코뿔소’라는 독자는 “저는 ‘이 세상에 진실이라는 게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일까? 다만 각자의 진실만이 존재한다는 생각과 함께 레논과 요코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는 덧글로 외연을 확장시켰습니다. 

제 블로그를 예로 들어서 좀 ‘거시기’합니다만, 어떤가요? 이쯤되면 개인 블로그가 이른바 ‘인문적 담론과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나요? '요코'뿐만 아니라 제가 던진 다른 사안에 대한 ‘한라봉’, ‘유리구두’의 고준담론도 다다의 그것과 함께 ‘진검승부’를 방불케 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사유의 능력’에 있습니다. '블로그 아고라'로 인해 저는 요즘 새로운 열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유의 훈련을 통해 본래적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 블로그를 포함하여 은하계의 별처럼, 한강의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은 블로그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다, 한라봉, 유리구두 등 균형과 절제, 중용적 통찰력을 가진 깊고도 높은 수준 의 시민들이 담론의 리더가 되어 ‘사람 살리는 인문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1992년에 호주로 이민,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한국의 신문, 잡지, 방송사등과 일하며,  중앙일보, 스크린골프다이제스트, 자유칼럼그룹, 자생한방병원, 여성중앙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 (공저)> 등이 있다. 

블로그 :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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