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감꽃이 제법 많이 떨어졌다. 15년 전에 절 입구에 세 그루를 심었는데 두 나무는 크게 잘 자랐고 한 나무는 키가 조금 작다. 심을 땐 거의 같았는데 지금은 상당히 달리 보인다. 같은 시기에 같은 땅인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처한 조건의 영향에 따라서 그렇게 차이가 났다. 그렇지만 감나무라는데선 동일성을 회복한다. 인간의 삶 역시 이러한 차별적 현상으로 인한 다양한 기능과 본성으로 회귀하려는 이성적 조화로움으로 인해서 모든 존재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서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감나무를 심은 것 역시 어릴 적에 보고 느껴왔던 그 향수어린 평등성에 기인한 평화로움에 다가가고자 하는 복고적 속셈이 그 나무 속에 숨어있다. 비록 본인이 자리한 이곳은 시공의 간극으로 보면 어릴 적 그때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지만 감꽃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느껴진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옛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동심의 세계에서 느껴졌던 그 어떤 마음과 상황을 다시 맞이했을 땐 더 없는 행복감으로 충만된다. 

그 농도는 산골에서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일수록 더 진한 옛 향수에 취하는듯 하다. 티 없이 순수했던 그 자리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하는 순수이성의 본래적 취향의 발로이리라. 

터진 핫바지를 입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사태(흙 언덕)를 타다가 집에 돌아오면 뒷뜰에 노랗게 떨어져 있던 감꽃을 줍는 재미는 더 없는 즐거움이었다. 우선은 그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일 순위를 두었고 그 다음은 꽃 자체가 매우 예쁘게 보였다. 겨우내내 모진 추위로 손을 호호 불며 어서 봄이 왔으면 하고 간절하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따뜻한 봄이 오면 망태기를 메고 산과 들로 쏘다니면서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쑥이나 냉이 등을 캐다가 처음 만나지는 감 꽃이기에 더더욱 반갑지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감꽃을 주워서 실에 길게 꿰어 목에다 걸고 다니다가 시들시들 해지면 하나씩 빼어 먹는 재미도 상당했다. 특히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감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은 형언하기 어려운 풋풋한 정감이 그 속에 어려있다. 

멀리서는 소쩍새가 애잔하게 울고 뒷동산에선 뻐꾹새가 목이 매인 듯 봄 소식을 전해준다. 그들의 노래 속에서 감꽃 떨어지는 소리까지 합친 그 어둠의 속삼임, 생각 같아선 지금 바로 뒷뜰에 나가 머리로라도 그 감꽃을 받아보고 싶어 했던 그 어릴 적 마음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감꽃이 끝나면 할미꽃이 핀다. 이 꽃은 양지바른 산지겁 말라 버린 잔디속이나 묘등 근처에서 피기를 좋아한다. 보송보송한 깃털을 온 몸에 감고 보라색 예쁜 색깔로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엽게 보였다. 특히 묘등에 핀 할미꽃은 딸네 집에 갔다오다가 고갯마루에서 딸의 집을 바라보며 세상을 떴다는 그  애절한 사랑의 전설과 함께 피빛으로 물들인 할미꽃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그 딸이 있을 법한 집을 응시하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만나지는 것이 진달래 꽃이다. 이것 역시 먹을수 있기에 꼬마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았고 연분홍 화사한 꽃 색깔도 동심을 사로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높은 벼랑 끝이나 애기 무덤위에서 피는 꽃이 그 색깔도 더 진하고 꽃송이도 더 탐스럽게 피어난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올라 갈수 없는 가파른 언덕 위에서 큰  구루터기로 피어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그 화사한 진달래 꽃, ‘어떻게 하면 저 꽃을 꺾을 수 있을까? ‘하고 별의별 궁리를 다해보다가 끝내 꽃잎이 시들어 고개를 떨구면 그런 갖은 수작도 저절로 사라진다. 그 뒤엔 애기무덤 쪽으로 마음이 옮겨간다. 그땐 어릴 때에 잃어 버리는 애기들이 많아서 뒷동산 넘어 으슥한 곳 소나무 근처에 애기들만 묻는 공동묘역이 따로 있었다. 

어떤 무덤은 여우나 늑대가 건드려서 옷가지 등이 묘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다. 우린 평소엔 무서워서 그 근처엔 가지 못했는데 진달래 꽃이 그 주변에 화사하게 피어있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무리 꽃이 탐나도 혼자서는 접근하지 못하고 서너 사람이 함께 모여서 하나, 둘, 셋 하곤 와르르 달려가서 좋은 꽃부터 꺾어서 후다닥 뛰어나오곤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애기무덤에서 피는 꽃이라 조금은 꺼림칙 했을 수도 있었는데 꽃을 탐하다 보니 다른 생각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계절을 거꾸로 계산해야 되는 이곳 호주의 봄,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 이 시각에도 감꽃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 마음은 그때 그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가 않다. 할미꽃과 진달래는 볼수 없지만 감꽃 하나를 바라보면서 나머지 여러가지 꽃들도 연이어 연상이 된다. 흰 찔레꽃과 붉은 복숭아 꽃, 호박꽃과 흰 박꽃 등등 화단에 심은 개량 서양꽃을 볼수 없었던 그 시절,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삶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온 그 토종꽃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기후 스님(정법사 회주)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