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족의 정체성과 디아스포라(Diaspora)

한국 정부의 해외 동포 정책
‘대한민국 주체 의식’ 탈피 못 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동질화’를 모색
실효성 사라지는 민족 개념에서
해외동포와의 관계 논의
한인공동체, 한국어 등의한국 중심의 사고를 지향

근대는 공동체 개념을 국민국가의 기원이자 바탕으로 추동한다. 분리된 개별자가 일정한 영토 내에 ‘민족=국민’으로 주체화하는 과정은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상상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는 베네딕트 앤더슨(2002)의 상상의 공동체로 상징화될 수 있다. 공동체는 역사적으로 존재했고, 그것이 구성원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민족됨’ 혹은 ‘민족성’은 한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며, 공동체는 이것을 무한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다(신진숙, 2011:129). 장-뤽 낭시는 근대 공동체 개념의 한계를 이러한 내재주의, 공동체의 근원이 유한한 개별자 내부에 무한한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에서 찾는다. 그에 의하면 내재주의는 공동체를 ‘사유(私有)’함으로써 전유하는 것이다. 공동체로 상상되는 자질, 형식, 특징은 하나의 개인에게 필연적으로 내재적이다. 따라서 ‘타자성’은 원칙적으로 소멸된다(Jean-Luc Nancy, 2010). 

내재주의적 시각에서 본다면 공동체의 외부는 없다. 동일성과 동질성으로 상상된 공동체의 존재 근거를 내적인 차원에서 찾는다. 타자의 부재는 공동체주의가 전체주의로 변환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세계가 경험했던 파시즘과 나치즘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한편 전체주의화된 공동체는 공동체가 상실되었으며, 따라서 미래의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공동체는 그 자체로 공동체 구성원에게 하나의 역사적 사명이다. 공동체는 과거이자 미래가 된다. 실제로 낭시는 공동체에 대한 근대인의 향수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낭시는 ‘공동체는 자리 잡았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공동체에 대한 사유나 욕망은 근대적 경험에 나타난 가혹한 현실에 응답하기 위해 뒤늦게 창조된 것’이다. 말하자면 공동체란 근대 사회관계가 자아내는 고독, 좌절, 경고, 소외 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분열의 자리를 희석시키기 위해 창안된 개념이다. 공동체를 상실한 이후에 근대 사회가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사회를 근거로 도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낭시는 공동체를 하나의 ‘선험적 환상’이라 부른다(Jean-Luc Nancy, 2010, 40-41쪽). 

내재주의적 공동체는 공동체의 바깥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낭시는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내재화할 수 없는 타자와의 소통 자체를 폐쇄한다고 비판한다(Jean-Luc Nancy, 2010, 41쪽). 이는 세계 대전 이후 근대 국가의 재구성에서 만들어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무국적자’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국민이 난민으로 변한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근대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발생한 이러한 ‘무국적자’를 주권 개념의 ‘예외상태’로 규정한다(Hannah Arendt, 2006, 514쪽). 조지오 아감벤은 이러한 예외상태를 ‘호모 사케르’ 라는 표상 속에서 논의하고 있다(Giorgio Agamben, 2008, 47쪽). 

역사적으로 민족이념은 18세기 이후 자유와 민주를 향한 대중적 열망이 시민공동체인 공화국 건설로 모아지면서 형성되었다. 한국의 민족 이념 또한 동학에서부터 일제시기, 전쟁과 냉전, 독재정치 등으로 민족이념이 배타적으로 사용된 역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실천적 민족공동체’ 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최대석, 2011, 169-170쪽). 이렇게 민족의 개념은 매우 정태적이고 안과 밖을 철저히 구분하고 있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한민족 문화공동체는 민족을 근거로 하고 있다(임영상 외 2인, 2012). 
지금까지의 한국 정부의 해외 동포에 대한 정책과 한국인들과 해외 동포들의 관계에 대한 문제점들을  여러 보고서에서 상세하게 열거하고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동포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그들과의 민족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질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논의하였듯이, 그 실효성이 소멸되고 있는 민족의 개념에서 해외동포와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여전히 한인공동체, 한국어 등의 한국 중심의 사고를 지향하고 있다. 

내부에만 존재하는 동질성을 가정하는 마치 고정적인 의미가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되어가기’의 과정을 중시하는 아(我)와 타자(他者)의 구별이 없는 열린 형태의 실천적인 공동체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승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 공동체로서 다음 장에서는 한글문화공동체를 논의하고자 한다. 


Ⅳ. 동아시아 평화와 공존공영을 위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과 
한글문화공동체의 필요성

1. 한민족 네트워크의 평가와 대안

남북 사회통합,
동아시아의 공존 공영 수단으로서‘한글문화공동체’ 구축 제안

유대인은 히브리어로 작성된 성경을 가지고 모여서 학습하고, 공통의 언어에 근거한 히브리문화를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토론과 세미나를 통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계승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한민족 네트워크 운동을 통해 한민족 디아스포라가 민족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추진해왔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통합하고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자 하는 한민족 네트워크 운동은 나름의 중요한 성과를 이루어왔다.

그러나 기존의 한민족 네트워크 운동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주체(subject/대한민국)와 객체(object/한민족디아스포라)의 이분법적 경계 획정이 우리(national community)로 수렴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한민족 네트워크의 주체로서 대한민국이 객체의 입장에 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들을 우리(one Korea)라는 민족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거꾸로 장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북한이 한민족 네트워크의 중심 구성원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역시 한민족 네트워크가 민족정체성 형성과 한반도 통일을 위한 보다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하는데 한계로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대한민국의 학자들이 조선족들에게 주체(한국어)와 객체(조선어 등)를 뛰어넘어 우리(national Korea language)라는 보다 거시적인 틀(frame/민족어)을 고민하지 않고 한국어의 문법을 그대로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아래는 중국 연변대학에서 조선 문학 박사과정을 5년 동안 하고 있는 분이 석사 논문과 조선어 연구회, 논문발표회 등을 참석하며 느낀 점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조선어라고 부르고, 북한에서도 조선어라고 부른다. 조선족 교수들은 한국대학 교수들에게 한국어로 통일하라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모든 논문에서도 한국어 맞춤법과 조선어 맞춤법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논문을 작성하거나 논문발표에 참석하면서 용어에 대해 신경전이 있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조선족 교수들과 북한 교수들의 조선어 논문발표가 따로 이루어지는 발표장도 여러 번 보았다.

조선족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과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간섭을 받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심지어 매우 불쾌한 경우들이 종종 나타난다. 현재의 한민족 네트워크는 대한민국이 주체(subject)의 입장에 있으면서 그 외 모든 한민족 디아스포라(북한도 포함)를 객체(object)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논의는 동아시아의 평화 및 공존공영과 한반도의 분단극복을 위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다. 70여 년이 넘는 남북의 분단 상황에서 이질적인 사상과 사회체제는 물론이고 정치적·군사적 갈등과 대립의 지속성을 끊고, 통일과정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조성하며 통일 이후 남북 사회통합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통합적 수단이자 동아시아의 역사적?영토적 갈등과 대립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공존 공영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한글문화공동체’ 구축이 앞서 유대인의 히브리어에 근거한 유대문화공동체에서의 역할과 기능을 해줄 것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이호규 (동국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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