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반도 분단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 및 공존공영을 위한 ‘한글문화공동체’의 필요성

한국을 떠난 한민족(한국과 유리된 북한도 포함)은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흔들리고 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언어가 통하고 문화적 유대감은 느끼는데 공동체라는 유대감은 약하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나면 깊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국가나 명칭의 차이를 두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오히려 언쟁이 오가고 분열이 되기 쉽다. 예를 들면 조선어를 한국어로 하자는 식의 이야기가 오고 가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조선족 학생들의 가족들 중에서 한 사람 정도는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다. 한국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가지고 간 사람도 있고, 살벌한 일자리의 어려움을 알고 간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 특별한 준비가 없이도 취업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한국을 찾는다. 한글을 사용하여 대화가 가능하고 문화적 동질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자리에서 만난 한국인과의 경험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조선족 혹은 탈북자라는 냉대와 직장의 상하관계 속에서 겪는 아픔으로 좌절과 실망, 그리고 뼈저린 복수심 등을 품게 된다고 한다. 

한국은 한글을 한국어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은 한글을 조선어라고 부르고 있고, 북한 역시 한글을 조선어라고 부르고 있다. 러시아에 사는 고려인도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재일동포, 재미동포도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전 세계에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이다. 이들 모두는 나라와 국가와 명칭은 달라도 모두가 한민족이고 한글을 쓰고 있다.

사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한국 사람의 심성은 일부러 조선족이나 북에서 온 탈북자를 냉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공통적 유대감을 만들 수 있는 구심점, 매개체를 아직 못 찾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글문화공동체’라는 주제는 거리감을 못 느끼고 기존의 국적이라는 벽에도 막힘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데도 하나가 안 되고 따로 나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볼 때 한국어와 조선어라는 용어 차이를 넘어서서 한글로 통합하는 문화세미나나 발표회는 새로운 관점과 발전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유대인이 히브리어를 모체로 문화공동체를 형성, 세계적인 유대감을 갖고 있으면서 그들의 집합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여 세계에 알리고 있다. 중국은 최근 한자(모국어)가 어려워서 쓰지 못하는 젊은 청소년이 증가하는 추세다. 연변조선족 사회에서도 조선족이 이탈하고 있고, 조선어도 사장되고 있다.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한글문화공동체라는 주제는 이념, 사상, 정치, 정책, 국적을 떠나서 유대감과 정체성을 갖는데 좋은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남북의 통일도 남한 관점의 흡수 통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자 정책적 대안이 바로 ‘한글문화공동체’ 구축에 대한 논의이다. 한글문화공동체 구축은 남북한 체제나 이념, 정치를 넘어서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이나 미래 통일 및 사회통합을 위한 구심점이 될 수 있고 전 세계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한민족 네트워크 형성과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평화와 공존공영을 위한 구심점으로 작동될 수 있다. 방송, 문화, 문학 등에서 한글을 중심 모티브로 하여 하나 됨을 이끌어 내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쉬워 보인다. 원리는 단순할수록 강한 힘을 가진다. 더불어 한글은 열린 정신(open spirit)을 갖고 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에도 모든 백성들이 어려움 없이 익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함이 목적이 아니었던가. 한글에는 열린 마음이 존재하고 있다. 

열린 정신의 한글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공통점을 추구하고 상이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열린 마음은 현재 남과 북을 둘러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그 하나로서, 남북한의 대립 구도를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논의의 대부분이 국가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 중심의 논의를 인간 중심의 논의로 전환시키면서, 국가도 중요한 행위자이지만, 나아가 한글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 또한 동아시아 평화의 중요한 행위자로 활동을 할 수 있다. 더불어 행위자들의 확장은 기존의 국가 중심의 논의에서 중요한 의제가 되었던, 정치, 경제, 군사 등의 범위를 문화와 인간들의 일상생활의 영역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논의의 장이 더욱 풍부해 질 수 있고, 모든 구성원들이 주체의 의식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Ⅴ. 해외 언론의 중요성: 지리적 영토에서 마음의 공간으로

해외동포 언론에 대한 장기적 지원과 활용 방법을 강조하지 않으면, 
미래의 한글문화공동체 네트워크를 연결시켜줄 
연결 고리를 잃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과 함께 디지털 혁신시대에서의 한글은 그 어떤 글보다도 디지털의 원리와 매우 적합하다. 예를 들면, 중국의 경우에 모든 한자를 자판에 담지 못하기 때문에 알파벳을 이용하여 발음기호로 자신들의 글을 표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요즘 젊은 중국 학생들이 자신의 글(한자)을 익히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한글은 한국에서 ‘엄지족’이 있을 정도로 디지털과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한글로 문자를 보내면서 한글의 원리도 동시에 익힐 수가 있다. 한글은 마치 레고와 같은 모듈 방식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위대한 글로서 흩어져 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통합할 때, 지금보다 훨씬 더 세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결합체가 형성될 수 있다. 또한 한글의 정체성 아래에서 남북을 포함한 한민족 디아스포라가 각기 자신들이 거주하는 국가에서 삶을 누리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거주 국가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고시키는 데 일조를 하리라 사료된다. 한국, 북한, 조선족, 재일동포, 재미동포, 고려인, 전 세계 한민족들이 한글문화공동체를 통하여 하나 됨을 느끼고 유대감이 높아지며 단합된 힘을 발휘하고자 함이 최상의 목적이다.  

이 글에서 제시하고 있는 한글문화공동체는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체가 됨을 요구한다. 모든 사람들이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공유함으로써 구심력을 요구하는 중심을 허락하지 않고 상호 견제/협력할 수 있는 공통점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동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글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세계 도처에서 한인들이 생활을 영위해가는 모습을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를 할 필요가 있다. 즉,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이 경험해 온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상호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한민족 공동체는 한국 중심의 공동체로서 디아스포라들을 객체화함으로써 그들에게 한국 중심의 동질화를 요구해왔다. 이러한 공동체는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다름을 알아야 다름을 인정할 수 있듯이, 한글이라는 울타리에서 차이를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이해와 공유를 위해서는 해외 언론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미 앞에서 제시하였듯이, 해외 언론은 국내 언론과는 달리, 각각의 디아스포라들의 역사적으로 구성된 각각의 구체적인 역사·문화적 환경을 충분히 살려 다른 디아스포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언론의 보도 기능을 넘어서, 해외 언론들은 모든 디아스포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 단순히 자신들의 디아스포라들의 상황을 다른 디아스포라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 언론을 통해 모든 구성원들이 의견을 표현하고 논의함으로써, 다양한 관점들이 공존하고 공유되는 기회가 제공된다. 앞에서 제시하였듯이, 이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논의의 장이 국가의 범위에서 개인과 시민의 범위로 확장되면서, 지금까지는 고려되지 못했던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는 중요한 계기가 조성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외동포 언론이 한글문화공동체의 정체성 강화에 지대한 공헌과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외동포 언론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국내에서도 어떻게 해외동포 언론을 활용해서 한글문화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해 나갈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고 나아가 관련 연구도 수행되고 있지 않다. 후기정보산업화 시대에 세계 한글문화공동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해외동포 언론에 대한 장기적 지원과 활용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미래의 한글문화공동체 네트워크를 연결시켜줄 연결 고리를 잃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더불어 한글문화공동체는 대한민국의 언어문화에도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현재 연변지역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KBS World나 SkyLife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방송을 실시간 시청취하고 있다. 북한도 특정 지역과 정치적·경제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실시간으로 한국의 방송을 시청취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족, 고려인, 북한 주민들은 대한민국의 언어문화를 접하면서 매우 당황하는 태도들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국 중심의 콘텐츠나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들이 난무하는 관계로 조선족들이나 고려인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인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에서도 국적 없는 언어들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은 주지하는 바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글문화공동체는 미래의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한민족 디이스포라를 상호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문화로 연계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재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민족 공동체라는 동질화의 개념에서 벗어나 이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의식에서 해외 디아스포라들과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나갈 때 거기서 비로소 화합과 조화가 나오는 것이다. 인정의 정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끝으로 한글문화공동체가 한민족 정체성을 구축하는 총론에 해당한다면 각론으로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흩어져 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특수한 문화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함께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 내용을 담아내는 다양한 한글문화콘텐츠가 필요하다. 모국으로서 한국(South Korea) 중심의 일방적인 역사와 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한글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 디아스포라와 함께 새로운 한글문화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는 다양한 한글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제작하여 함께 공유하는 것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해외의 다양한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해외 언론의 위상 제고가 요구된다. 한글문화공동체라는 보편적인 틀에서 각각의 독특한 디아스포라들의 특성을 충분히 살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은 현재 한국의 지리적인 영토는 좁지만 한인 디아스포라들과의 공존을 통해 마음의 영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본다. (끝)

이호규 (동국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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