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베어드 주총리(48).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한때 대학 졸업(시드니대 경제학 전공) 후 성공회(Anglican) 목회자가 되려는 생각을 가졌었다. 성직자가 되는 것을 접어 둔 그는 은행에 취직해 약 18년 동안 호주와 해외 금융권에서 일을 한 뒤 정계에 입문했다. 아무래도 정치인 출신인 그의 부친 브루스 베어드(Bruce Baird)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브루스 베어드는 80~90년대 NSW 자유당 부총재였고 자유당 정부 때 교통, 도로 장관 등을 역임했다. 마이크 베어드가 주총리가 된 뒤 대대적인 교통 인프라스트럭쳐에 손을 댄 것도 부친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마이크 베어드 주총리가 성직자가 되려는 의향을 가졌던 것처럼 토니 애봇 전 총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자유당의 보수 정치인이다. 두 정치인은 지역구가 같고 서핑을 즐기는 취미도 같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애봇은 시드니법대 졸업 후 로즈 장학생(Rhodes Scholar)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학원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시드니 맨리에 있는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해 3년 이상 다니다 중퇴를 한 특이한 경력이 있다. 

10년 전 정계에 진출한 마이크 베어드 NSW 주총리가 19일(목)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깜짝 발표를 한 그는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서 또한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와 누이를 돌볼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서”라는 은퇴 결정을 내린 동기를 설명했다. 인간미가 물씬 풍기고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한 말이다. 
그러나 호주 정계에서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종종 있었다. 스티브 브랙스(Steve Bracks) 빅토리아 주총리(노동당)도 3번 집권 후 자진해서 조기 은퇴를 했다. 피터 비티(Peter Beattie) 퀸즐랜드 주총리(노동당)도 비슷한 사례다. 이 외에도 다수의 의원들이 가족이나 개인적인 이유로 전성기에 의정 활동을 중단하고 미련없이 은퇴를 했다. 떠날 때는 말없이.. 당연히 박수 받으며 떠난 모양새도 좋았다.

베어드 주총리의 은퇴 선언 성명서에는 다음가 같은 내용이 있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자유-국민 연립의 NSW 주정부 집권 기간동안 업적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고질적인 주정부 예산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고쳤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례가 없는 수준의 고용을 창출했고 대민 서비스를 크게 개선했다. 여러분 모두 목격하고 있듯이 시드니와 지방 도시 인프라스트럭쳐를 전면 개편 중이다.” 
"NSW 주총리로 봉직하는 것은 대단한 영예다. 나는 정계에 진출하면서 변화(make a difference)와 진전(then move on)을 위해 정치 입문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제 공직 생활 10년을 했으니 떠날 시기가 왔다.”  

베어드 주총리는 지난해에 몇가지 아젠다에서 실책을 거듭했다. 지자체 통폐합(council amalgamations) 강행으로  논란과 많은 비난을 초래했다. 동물학대 행위가 자행된 그레이하운드 경주를 전격 폐지(greyhound ban)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강력한 지역사회 반대 여론에 굴복해 이를 번복했다. 또 심야 주류판매를 제한한 록아웃법(lockout laws) 강행으로도 많은 욕을 들어야 했다. 이 조치로 시드니 시티와 킹스크로스 지역에서 매출 부진과 공연예술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반대 여론도 상당하다. 
이런 세가지 실책이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들이다. 그러나 자유-국민 연립이 정권을 빼앗길 정도로 지지율이 폭락하지는 않았다. 베어드 주총리는 스스로 물러나지만 2019년 주선거에서 연립의 승리를 자신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인프라스트럭쳐가 빛을 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베어드가 몇 년 후 연방 정치권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지만 루머일 것 같다. 약속을 중시하는 그의 성격으로 다시 정계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베어드의 은퇴 성명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 대중연설(시카고)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가장으로서, 부모와 형제를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질환으로 시달리는 부모와 누이를 돌보기 위해 은퇴를 한다는 순진한 말이 아름답게 들린다. 왜 한국에는 이런 정치인이 거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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