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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 대신 바비큐로 보낸 하루
이강진(자유기고가, 전호주연방 공무원) | 승인 2017.04.13 17:55
이웃을 만들어 가는 기쁨도 빼놓을 수 없는 시골 생활의 일부다.

우리 동네에는 요즈음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가끔 맑은 햇살이 비추기는 한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내리는 날씨다. 보슬비가 내리기도 하고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심한 바람을 동반한 굵은 빗줄기가 퍼붓기도 한다. 비 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베란다에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비구름과 무지개를 친구 삼아 커피 한 잔 마시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날에는 유행가 가사처럼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며 지내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빈대떡을 같이 나눌 이웃이 없다. 빈대떡을 같이 즐기려면 한국 정서를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이웃은 없다. 

빈대떡을 같이 나눌만한 이웃이 없어도 가까이 지내는 이웃은 있다. 요즈음 우리 동네로 이사 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땅을 사서 취향에 맞게 집을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을 사서 이사 오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이웃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집을 짓느라 주위를 시끄럽게 했던 이웃이 드디어 자그마한 집을 완공했다. 자그마한 집이라고 해도 대도시에 비하면 널찍한 공간에 확 트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집이다. 집주인이 이사했다. 시드니에서 퇴직한 부부다. 산책 중 가끔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전에 폴란드에서 왔다고 한다. 어딘지 모르게 동양 사람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폴란드 사람이다. 

주말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을 불러 빈대떡 대신 호주 사람이 즐기는 바비큐를 하기로 했다. 옆집에 사는 우리 동네 토박이 부부, 수(Sue)와 개리(Garry)에게도 오라고 하니 좋아한다. 남편 개리는 시드니에서 일하기 때문에 10년 가까이 주말 부부로 지내는 이웃이다. 그러나 한두 달 지나면 남편도 퇴직한다며 시원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주말이다. 이웃 맞을 준비를 한다. 준비라고 해야 슈퍼에서 산 스테이크 몇 점이다. 아내는 한국 음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호박전을 부친다. 나는 오랫동안 쓰지 않아 조금 지저분한 바비큐 철판을 닦는다. 맥주를 냉장고에 넣고 와인도 준비한다.

약속한 점심시간이 되자 폴란드 부부가 초인종을 누른다. 한국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신을 출입문 앞에 벗어 놓는다. 곧이어 옆집에 사는 수와 개리도 초인종을 누른다. 폴란드 부부와는 초면이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말이 많아진다. 특히 개리와 수는 다음 달 폴란드에 놀러 갈 예정이라 궁금한 것을 많이 묻는다. 

바비큐에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는다. 각자 가지고 온 맥주와 와인도 마시기 시작한다. 우리 동네 사람은 이웃이 초청하면 자기가 마실 술은 각자 가지고 간다. 초청한 사람이 모든 사람의 취향에 맞추어 술을 준비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식으로 밥은 준비하지 않았다. 큼지막한 스테이크 한 덩어리, 뒤뜰에서 자생한 방울토마토가 많이 들어간 채소 샐러드 그리고 호박전 등을 접시에 담아 놓고 식사를 시작한다. 김치도 한 접시 식탁에 놓았다. 몸에 좋은 음식으로 호주 텔레비전에도 소개되었다는 나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모두 김치를 잘 먹는다. 특히 폴란드 출신 남자는 맛있다고 하며 많이 먹는다. 

말도 많아지기 시작한다. 폴란드 이야기가 나온다. 음식과 관광지 그리고 정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세계 2차 대전 이야기도 나오고, 폴란드가 어떻게 민주국가가 될 수 있었는지, 음식값이 저렴하고 맛이 있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폴란드 사람에게서 동양 냄새가 난다는 나의 말에 가족 간의 긴밀함 등을 이야기하며 맞장구도 친다.  

한국 이야기도 나온다. 김정은 이름까지 거론하며 북한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기도 한다. 심지어는 남한과 북한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무지해서 묻는 말이기도 하지만 남북한의 오랜 대치 상황은 외국 사람의 눈에는 같은 민족으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씁쓸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남북한의 통일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옆집 부부, 수와 개리는 전형적인 영국 사람이다. 그러나 영국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영국 이야기 대신 우리 동네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연환경과 이웃 좋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특히 시드니와 비교하며 대도시의 복잡함과 공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대도시는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한다. 

꽤 오랜 시간을 떠들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온 술을 다 마시고도 모자라 우리 집 맥주도 바닥을 냈다. 나도 술기운을 빌려 편하지 않은 영어로 말이 많아진다. 빈대떡을 나누는 것 이상으로 바비큐를 함께하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 

거의 저녁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음주 운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걸어서 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익숙해진 서양식으로 껴안고 키스하는 인사를 나누며 이웃을 배웅한다. 오래 사귄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을 떠나면서 잃은 것도 많지만, 호주에 살면서 얻은 것도 있다. 마찬가지로 시드니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을 오면서도 잃은 것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 살기 때문에 얻는 것도 많다. 

어느 책에서 읽었을 것이다. 잡고 있는 것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암벽을 올라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이강진(자유기고가, 전호주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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