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변화의 바람이 각 분야에서 불고 있다. 여기 한인사회와 직접 관련을 갖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도 예외일 수 없다. 서울 사무처의 지도부가 바뀌고 있고, 지난 주 한호일보 기사에도 나온 대로(6월 16일자 참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이미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또  그간  여기 많은 한인들이 자문위원에 위촉됐고, 그럼으로써 커뮤니티의 위상이나 구성원의 의식과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남겨 왔으므로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보는 것은 시의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드니에 살면서 전두환 정권 때 출발한 이 기구를 초대부터 현장에서 지켜봐 왔으므로 거의 40년에 가까운 역사다.

두가지에 대해서만 쓴다. 첫째는 이 기구의 공식 명칭 중 자문(諮問)이라는 말의 적절성이다. 자문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개인이나 특정 기관에 의견을 물음’이다. 그럼 과연 정부는 그간 정기적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전체 평통 회의나 각 지역 모임, 또는 다른 채널을 통하여 그런 자문을 단 한번이라도 구해본 적이 있는가? 다시 말해서 매 정부가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그걸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거나 수정한 적이 있었나?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평통이 박수 부대, 거수기, 어용과 같은 외부 평가를 들을 수 밖에 없었던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알다시피 평통은 헌법기관이며 수석 부의장, 사무처장을 포함 현재 알려진 대로 총 3,200명의 국내와 해외 위원은 이 기구의 의장인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의 위임장을 받는 자리라면 월급이 있든 없든 사실상 공무원이 아닌가. 과거 실제를 보면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할 것 없이 교포들이 이 자리를 관직으로 생각하고 명함을 박고 다니고, 그걸 하려고 ‘빽’도 쓰는 인사도 있었다.

군대 같지는 않으나 공무원의 1차 의무는 명령 복종이다. 명령을 복종해야 하는 자가 상관을 향하여 무슨 쓴 소리를 한단 말인가. 한다면 부드럽고 달콤한 자문 밖에 할 수 없다. 정부에 예속 되더라도 독립적 기능을 하도록 고안된 기구가 있긴 하다. 그러나 법규가 무어라고 쓰여 있든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에서 대통령이 임명하고 정부의 예산을 쓰는 기구가 실제적으로 정부가 원지 않는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비전문가의 자문?
또 다른 구조적 이유라 할까, 한계는 전문성의 문제다. 어느 분야든 자문 역할을 하겠다면  자문을 할 과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위원들은 그럴 입지에 있지 못하다. 해외에서라면 더 그렇다. 극히 일부를 빼고는 지식산업과는 거리가 먼 생업에 종사하다 보니 남북관계에 대한 정보나 리서치 면에서도 본국에서 보다 크게 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평통 사업 계획의 대부분이 서울이나 각 해외 지역 모임에서 전문가들을 초빙 위원들을 가르치고 업데이트시키는 통일정책과 안보 세미나다. 그런 위원들에게 무슨 자문을 구한다는 건가. 

한국의 텔레비전에 나와 한반도 문제를 논하는 인사들의 얼굴을 보면 왠 전문가가 그렇게도 많은가 의아해진다. 한반도 평화,  통일, 안보 등의 이름으로 된 연구소, 연구원, 포럼, 센터, 재단, 대부분  대학과 일부 언론사에 설립된 북한학과와 통일연구소의 교수와 언론인과 연구원들 말이다. 정말 통일정책에 대한 자문은 이들로부터 구하면 된다. 

결론적으로 나의 생각이라 할까 제안은 이 기구는 헌법기관으로서 자문 기구가 아니라 민간 단체로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서포터스 그룹(supporters group)’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이 기구와  관련 그간 불거진 쓸데 없는 시비나 불신은 없어질 것이다.  예산도 줄이고 무성한 악평도 잠재울 수 있다. 서포터스는 원래 어떤 정책이나 운동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는 모임이나 단체이므로 거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고 탓할 사람은 없다. .

둘째로 해외 각 지역 평통은 본국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다. 고국 정부라고 하지만 현지 한인들은 일차적으로는 한국을 대표하여  나와 있는 한국 대사와 총영사를  직접 만나거나 공관을 찾아 와서 대하게 된다.

우호적, 비우호적 인사 
정광일 세계한인민주회의 사무총장은 한 글에서 “1980년대 전두환 쿠데타 정부 당시 만들어진 해외평통은 군부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재외동포사회 들러리 집단으로 해외 동포들의 민주화운동의 걸림돌로 인식된 바 있고, 해외 동포들의 자발적인 통일운동의 방해세력으로 군사정권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썼다. 
 
그러나 지금의 해외 한국 대사와 총영사는 방패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간의 실제를 보면 그들은 적극 관(官)지향적인 지역 평통을 재임동안 울타리로 십분 활용하고 떠났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인은 정과 의리로 뭉쳐진 민족이 아닌가. 대사, 총영사가 공관에 우호적인 평통과 다른 단체들을 잘 챙기고 비우호적인 단체나 개인은 멀리 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겠다. 문제는 우호적, 비우호적의 개념이고, 공관장 자리는 국가의 녹(祿)을 받는 자리라는 점이다. 우호적인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우호적인 말만 듣고 돌아가는 건 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다. 

이 글이 어떤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구기에 몸을 담게 될 인사들은 과연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를 숙고해보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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