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 신호범 이어 론 김, 최석호 등 활발  
호주 엘리사베스 리, 뉴질랜드 멜리사 리 선두
 
이 글은 지난 6월 27-29일 서울에서 열린 ‘2017 세계한인학술대회’의 오세아니아.유럽 지역 세션에서 권기범 변호사(스트라스필드시 전 시장)가 발표한 주제로 해외에서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 참여와 권익 신장에 관한 것이다. 필자의 허락을 받고 2회로 나누어 게재한다. - 편집자 주(註)
 
4. 미국의 한국계 정치인들 
 
조선 말기와 일제 식민지시대에 거쳐 일본, 간도, 중국 등으로 집단 이주하는 시기가 있었고 한국 전쟁 후에는 가난을 탈출하기위해 미주로 유럽으로 또는 남미로 건너갔다.  이주의 형태, 규모 그리고 정착과정도 가지가지이다.  한가지 공통점은 뿌리뽑힌 아픔을 내재한체 새로운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겪는 고통이다.  이 고통을 참으면서 제2의 고향인  미주,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각지, 오세아니아, 중남미 등등에서 천만 가까운 한인 동포들이 자리를 어느 정도 잡았거나  잡아가고 있다.   
 
이런 한인사회들의 정착 성공에 대한 척도(barometer)를 예전에는 경제적으로 많이 따졌다. 그리고 2-3세들의 교육수준내지는 직업 수준을 잣대를 정해  죽도록 일해서 자녀와 그리고 자녀의 자녀들을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등으로 만들어 내면서 만족해왔다.  주류진입이라는 ‘화두’에 천착 안하더라도 이 정도면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한인 동포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가나 도시의 한인사회의 많은 성원들은 자급자족에 만족하면서 제 2의 조그마한 ‘서울’ 아니면 ‘리틀 코리아’에서 안정감을 즐긴다.  
 
이런 안정감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다.  정치적인 참여를 통해 정착 단계를 한단계 올리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한인들의 정치참여가 한인사회에 대한 인식 향상과 직.간접적인 권리 신장을 가지고 온다고 주장한다. 대다수의 한인 동포들은 이 부분에 대하여 통일적이고 평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어떤 식의 정치참여 또는 정치참여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활발한 토론은 없다. 그저 유명 정치인 (예로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 장관, 수상 내지는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만이 정답으로  통하는 것이 실정이다.  
그래도 일단 그동안 수고했던 은퇴한 ‘선수’들과 현재 열심히 뛰고있는 각국의 ‘대표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세계 각지의 한인사회에 대한 획일적이고 일체적인 서술이 힘들어서 주로 미주사회 위주로 준비했다.   
 
Proto-type   1세대의  ‘눈물젖은 빵’ 이야기
 
주로 미주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공통점은 1세대이며 철저하게 맨땅에 헤딩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다. 미주 최초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된 김창준 (Jay Chang Joon Kim 1939 -  )은 1961년 미국에 도착했다. 1967년 남가주대 졸업,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이몬드 바의 시의원으로 당선되었고 그 다음해 시장에 당선된다. 1992년 캘리포니아주 제41지구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1999년까지 내리3선을 했다. 공화당 소속이었으며 최초 한인출신 연방하원의원으로서 상당기간 한국 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7년 위싱턴 한미포럼을 설립하여 한미 FTA 성사에 기여 했고 2011년 한국서 사단법인 ‘김창준 미래 한미재단’ 설립, 2012년에 ‘김창준 정경아카데미’ 설립,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국민경제 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임명을 받기도 했다. 토목공학 전공을 살려 제이 킴 엔지니어링을 1978년 설립하여 부를 쌓아 이를 바탕으로 정계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이다. (14)   
 
공석에서 발언하는 것을 직접 들어봤다. 상당히 친화력있고 유머가 넘쳤다.  김창준 전 의원에 대한 부정적 견해 및 사건도 있다. 먼저 1994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불법체류자를 다루는 ‘주민발의안 187’에 대하여 한인사회에서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다.  발의안의 주요 내용은 불법체류자를 위한 의료및 교육 등 각종 복지혜택을 전면 차단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경제 침체의 화살을 이민자에게 돌리려는 반이민 물결의 일종의 전주곡인 발의안에 대하여 반대하는 많은 한인동포들을 김 전의원은 ‘뭘 모르는 일부 한인들이 반대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미국사회를 모르는….’ 그리고 주류사회에   무지한 사람들로 치부하기도 했다. 또한 1994년 당시 김 전의원이 소속한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던 합법이민자들의 복지를 대폭 삭감하는  ‘웰페어 개정안’을  한인사회 내에서 지지하는 광고를 적극 하기도 했다.(15) 김 전의원은 1998년 불법 정치후원금건으로 2개월 가택연금 (2 months of home confinement), 1년 집행유예와 5000불 벌금을 선고받았다. (16) 
 
신호범 전의원 (Paull Shin 1935 - )은 시애틀이 있는 위싱턴주에서 정치 활동을 했다.  신 전의원은 19살 나이에 입양되어 미국에 건너간 후 역사학 교수를 지내다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후 1994년과 1996년 상원의원직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1996년 낙선 후 지역구의  2만 9천가구를 직접 방문하여 낙선 인사를 하여 유명해졌다.  1999년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선출된 후 2014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다.  몰몬  신자였던 신 전의원은 개신교로 개종한 후 린우드 베다니교회에서 명예장로직을 받기도 했으나 2014년 교회재산과 신축공사비에 관련된 법정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17)   2012년 워싱턴주 상원은 28:21로 결혼평등법  (Senate Bill 6239)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소속 의원 28명이 찬성했고 21명의 공화당 소속 의원 17명과 민주당 소속 의원 2명이 반대했는데 이중 한명이 민주당 소속 의원인  신 전 의원이였다.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사회를 분열시키며 동성간 결혼을 허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반대했다. (18)   개인적인 생각으로 김 전의원과 신 전의원은 미국에 철저히 동화하는 정책에 찬성했던 것 같다.
 
1세대 한국계 정치인으로는 임호근 전 오레곤주 상원의원, 조재길 세레토 전 시장,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 최석호 현 어바인 시장 등이 있다.  
 
 1.5세대 – 1.75세대 한인계 정치인 그리고 단체들
 
2016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선출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인계는 46명이고 이중 주의원은 14명, 시장 2명, 시의원 5명 그리고 카운티의원은 25명이다.  정부 고위직 (국장급 이상)에 54명으로 백악관에 7명과 연방정부에 17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36명이 판사직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19) 캐나다에는 주의원 1명과 소수의 시의원이 있고, 뉴질랜드에 국회의원 1명 그리고 호주에 엘리사베스 리 준주의원 1명 그리고 시의원 1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론 킴 뉴욕 주의원과 멜리사 리 뉴질랜드 국회의원의 배경과 활동을 살펴보면서 한인 정치 참여도의 현재를 가늠해 보자. 
 
론  킴 (Ronald Tae Sok Kim –김태석 의원 1979) 은 6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  대학교까지 미식축구선수로 활약했으며 대학교 졸업 후 존 리우 (대만 중국계) 시의원 보좌관으로 시작해서 여러 시의원과 주의원 및 선출직 공무원들의 정책 보좌관 자리를 거치며 2012년 뉴욕주 40지역구 (한인 및 중국계가 밀집된 플러싱지역) 의원으로 선출됐고  2016년 3선에 성공했다 .  김
의원은 선출되자마자 미국 최초로 통과시킨 강력한 총기규제법안에 앞장섰고 (20) 2014년 뉴욕주 한인 노인들과 맥도날드 뉴욕 파슨스점과 분쟁 조정을 했다. (21) 그리고 2015년에는 한인과 중국계 네일업 (손톱관리업) 종사자와 사업자들을 위해 활동하다가 정치후원금과 본인의 입장변경에 관한 문제로 뉴욕 타임스와 다툼을 하기도 했다. (22)
 
2014년 동해표기 법안문제에 있어서 김 의원이 소속해 있는 민주당 내 계파 문제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자 한인사회 일부가 크게 반발한 일도 있다. (23)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 (현 38세)에 주의원 3선 경험과 중국계 (부인이 중국계로 알려짐) 지역주민들이 다수인 플러싱에서 앞으로도 계속 활약이 기대되고 연방 진출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멜리사 리 (Melissa Ji-Yun Lee – 이지윤 1966)는 초등학교 4학년때 말레이시아로 부모와 함께 이주했다.  고등학교 시절 호주로 다시 옮긴 후 대학교에서 방송학을 전공했다. 1988년 뉴질랜드로 이주한 후 각종 언론업체에 종사한 후 지난 2008년 49대 총선에서 국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2011년과 2014년에 계속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됐다.  지역구에서는 계속 석패했지만 중선거구제인 뉴질랜드에서 당선안전권 번호를 집권 여당인 국민당으로 배정받음으로 비록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의원내각제인 뉴질랜드 정부에서 다민족 담당 부서 정무차관을 맡고있다. 소수 민족부 장관이나 경찰청담당 장관이 희망 부서이다. 동성 결혼법 (결혼평등법)안에 대하여 반대표를 최근 던졌다.   이법안은 77:44로 통과됐다. (24)   
 
론 킴 의원과 멜리사 리 국회의원 외에 버지나아 주의원 마크 킴과 엘리자베스 리 호주 캔버라 준주의원도 눈여겨 봐야 할  현역의원들이다.  이런 개인적 노력과 함께 한인 유권자 센터 (대표 김동찬)과 뉴욕에 소재한 민권센터 등 시민단체들도  선출직 정치인 후원과 한인사회를 위한 법안 통과들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외 각지역에서 풀뿌리 참여를 장려하며 활동하는 여러 한인사회 단체들이 있다. 
 
5. 자격 요견
 
정치를 국회 내지는 정부 관계로만 좁히는 해석보다는 보다 확대된 정의를 선호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바 있다.  그래도 먼저 선출직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한인 사회 출신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을 나의 경험과 앞서 살펴본 전. 현직 한인 정치인들과 이민역사 등에 비추어 정리해보았다.  중요성 순서가 아닌 두서없는 설명이다. 
 
먼저 본인의 정치철학이 확고해야한다. 생태 친화적 환경, 쾌적한 주거지 유지, 지속가능 및 친환경 개발, 대중 교통, 도로 및 각종 인프라 시설, 의료, 교육, 치안,  다문화 등 각종 풀뿌리 이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이민, 통상, 외교 현안, 지구온난화 등 거시적 이슈에도 해박해야 한다.  
누구와도 토론을 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감을 가지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이민사회 출신일 경우 아무래도 소수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몸에 배어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수와 약자 그리고 덜 가진자들을 위한 정치를 위해서는 진보적 시각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다. 자신의 출생 배경과 상이한 철학을 갖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더욱이 자신의 생각과 상반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엄청난 ‘형벌’이다.        
 
두번째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나 조직기반이 있어야 한다. 든든한 부모와 친지나 친구들뿐만 아니라 나의 소명의식 또는 뜻을 같이하는 지역 주민과 한인사회 지지자들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얼마나 합법적으로 많은 후원금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조직력 없는 후원모금 활동은 사상누각이다.  도원의 결의를 맺을만큼 믿을만한 동지들이 필수이다.
 
세번째로 운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끝임없이 움직이려하는 습성이 몸에 배야 한다. 운명 (運命) 의 운자는 움직인다는 뜻이다. 명즉 목숨도 움직일수 있다는 뜻이다. 성실함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해야 한다.  그렇다고 백년이 가도 안될 지역구는 일찌감치 피하는 것이 좋다.  그 정도 센스는 있어야 한다. 성실함에 근거한 철저한 지역구 조사가 있어야 한다. 지역구 사정을 꿰뚫어야 한다.
 
네번째로 ‘두꺼운 피부’를 가져야 한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멘탈’을 소유하여야 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말고 생면부지 그리고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과 접촉을 즐겨야 한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유권자나 나를 지지하지 않은 이들과 자주 만나고 대화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할 때 감정적으로 그리고 치사하게 공격한다.  생긴 것 가지고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으로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두껍고 부드러운 피부’를 가지면 더욱 이상적이다.
 
다섯번째로 겸손하고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사람이랑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유권자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깨에 힘들어 간 사람 또는 건방떠는 이에 대한 유권자의 보복은 항상 처절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유머감각이 없으면 타직종을 권장한다. 
 
여섯번째로 공과 사에 대한 확실한 분류의식을 가져야 한다. 공에 의해서 사를 희생하라고 선출되면 봉급을 받는 것이다. 선출직을 통한 개인내지는 후원자들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이해상충 내지는 이해충돌 (conflict of interest)에 도달하는 상황을 반드시 언제나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확고한 소명의식이 있어야한다.  소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즉 사적 존재에서 공적 존재가 되야 한다.  구름잡는 ‘한인사회 권리 신장’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가 소속한 한인 이민사회와 지역사회와 국가가 필요한 것에 내가 몸을 던진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와 한인사회 양쪽에 모두 연관되어있고 양쪽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너무 한 쪽에 매몰되어 있으면 안된다.  만일 상충되는 부분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위의 자질 중에 3개정도만 가지고 있어서 정치를 하려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다. 
 
나가는 말 
 
구약에 나오는 요셉과 모세의 이야기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행동과 진로가 집단에게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이주역사와 여러 정치인들을 살폈을 때, 개인적 성취가 자동적으로 한인사회의 이익을 수반하거나 권리 신장으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유감스럽지만 내릴 수 없었다.  물론 최치원을 통해 대견함과 고선지 등을 통해 나라잃은 민족의 후예의 설움은 느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마찬가지로 1세대 한인 정치인들과 이들의 후배 정치인들의 활동상을 통해서도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름 이상적인 자질을 나열해 보았다.     
 
이런 이상적 자질을 가지고 있는 한국계 정치스타와 함께 한인사회 전체의 자질 향상도 따라야 한다. 정치를 정치인들에게 맡기면 안된다는 것은 촛불 민주주의 혁명 (참여 민주주의)에서 배웠듯이 한인사회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현실정치 참여만이 한인이민사회 권익을 신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각종 시민단체 활동, 그리고 정치부분이 아니지만 각계에서 자기가 살고있는 사회에 득이 되는 활동자체가 알게 모르게 한인 이민사회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유대인 단체들이 지난 20세기에 했던 방법들을 100% 벤치 마킹(bench marking) 하는 것이 모든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정치참여를 강조하는 것이 비주류가 주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기를 바란다. 소수들인 우리만 가질수 있는 진보성에 근거하여 소위 ‘주류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때로는 욕심스러운 때로는 억압적인 그리고 늘 시혜를 베풀듯이 쳐다보는 것들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도 정치참여의  방편이라고 본다. 한인계 정치인들과 함께 한인사회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Anglo Saxon America, Anglo Saxon Australia 그리고 Anglo Saxon French Canada 에서  Anglo Saxon Korean America, Anglo Saxon Korean Australia 또는 Anglo Saxon French Korean Canada 가  되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조국과 내가 속해 있는 나라 그리고 전 인류가 좀 더 평등하게 잘 사는 세계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한인사회의 권익신장을 위한 정치 참여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예로서 남북통일과 한반도 평화 내지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거주하고 있는 나라에서 현실정치 참여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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