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주가 지나갔다. 시드니대학 정용문 박사의 거주국 사회통합과 관련 호주 한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준 논문 요약을 잘 읽었다 (한호일보 7월 7일, 14일자 참조).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매우 유익한 연구이며 문헌이었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에서 공론화가 될만한 사건이나 현안이 보도되어도 후속(follow-up)이 없고 그렇다고 외부 독자의 반응도 없으니 가뭄에 콩 나 듯하다가 묻혀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은 그런 연유에서 저자의 연구 관심과 노력을 성원하고, 한편 호주에서 살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이 숙제에 대하여 개인 의견 한 두 가지를 보태보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해외 지역도 마찬가지일 듯, 여기 한인 커뮤니티도 자기들이 툰 둥지를 깊이 알려는 사회과학적 연구에는 무덤덤하다. 아무래도 이민자들이 갖기 쉬운 ‘지식이 밥 먹여주나’하는 안일한 세상 인식 때문에 이런 일에 자금 조성과 전문인 양성이 불가해서 그럴 것이다. 고국에서 가능한 연구 자금은 현장과는 거리가 먼 탁상공론이거나 언제 봐도 되풀이 되는 재외동포 연구와 발표로 거기에서 소진되고 마니 그것도 한가지 이유다. 

한인사회를 이끌고 갈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나 고국에서 방문하는 고위직자들은 한인사회의 큰 발전과 장미 빛 전망을 쉽게 말하지만 그 사회가 추구해야 할 철학과 물적, 인적 리소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지식 없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영미 가치와 생활양식 

정 박사는 제대로 된 전화번호부 하나가 없는 한인사회에서 샘플 만들기(sampling, 표본 추출)와 훈련된 면접 인원의 부재 등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얼른 봐도 맞다 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수량화해서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영미사회의 한인들이 개인과 집단 차원, 그리고 전략과 실용 면에서 지향해야 할 사회통합의 1차 목표는 지금은 이 분야의 고전이 된 이민자가 완전 동화 (assimilation)되는 과정을 자세히 기술한 미국 학자 M. 고든(Assimilation in American Life, Gordon, M. 1964)이 말한 ‘문화적 동화(cultural assimilation)’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든의 6단계설은 후학들이 더 실용적으로 3단계로 줄여 논하는 게 보통인데 첫째가 문화적 동화, 둘째가 사회적 동화(social assimilation), 마지막이 심리적 동화(psychological assimilation)다. 문화적 동화는 굳이 학술적 용어라고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쉬운 개념이다. 여기 한인이 주류 호주인 (넓게는 앵글로 색슨 켈틱계 민족)과 같거나 가깝게 영어를 잘 하고 그들의 가치와 행동 양식을 배워 필요할 때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 쉬운 말은 문화적 적응(cultural adjustment)이다. 사회적 동화는 주류 호주인들과 교류하는 정도다.

마지막 심리적 동화는 당사자가 거주국 사회를 마음속으로 좋아 하고 자기가 당당한 주류의일원이라는 자부감을 갖고 살게 될 때이다, 피터 알렌의 ‘I Still Call Australia Home’이란 인기 노래를 즐겨 부른다면 그런 상태다. 또 하나 사례는 여기 한인들 가운데 호주인들 앞에서 ‘We Koreans’가 아니라 ‘We Australians’ 라고 당당하게 발언할 수 있다면 그것이다. 

가장 적응이 안 되는 집단

호주에서 비영미권 이민자 유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든가, 반아시아 인종주의 정서가 드세져 간다든가, 정부가 이민자 시민권과 영주권 취득을 어렵게 만드는 등 우리에게 불리한 정책이 느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민자들이 현지 문화에 적응하지 않는 집단, 특히 동북아시아인은 이른바 ‘가장 적응이 안 되는 집단’(The least assimilable, 다만 이 가운데 해외 일본인은 거의가 상사 주재원이나 정부 파견자여서 둥지 개념이 없어 우리와는 다르다)이어서 호주가 원하는 사회통합과 사회 안정을 해친다는 주류의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년 반무슬림 정서로 혼선이 일어나고 있기는 해도 이민자가 거주국이 아니라 모국을 더 좋아한다든가 그 쪽에 더 충성심을 보인다고 불평하는 호주인은 드물다. 한호 축구 경기를 보라. 우리가 양팀 중 어느 쪽을 응원하든 이들은 뭐라고 안한다. 참 착하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현지 문화를 깡그리 외면하고 살겠다면 우리는 점점 미운 오리새끼 민족집단으로 치부될 밖에 없다. 유명한 영어 격언 ‘로마에 살면 로마인처럼 행하라(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도 바로 그것이다. 로마를 좋아하느냐 아니냐가 이슈는 아니다.  

개인으로 봐도 그렇다. 나는 호주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 때문에 시비를 당한 적은 없다. 그보다도 내가 좀 더 영어를 잘하고 필요하면 호주인 행세를 더 잘 할 수 있었더라면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하며 느끼는 게 사실이다. 이건 내 개인만의 일이 아니다.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자. 요즘 스트라스필드 전철역 출구를 나올 때 오팔 카드에 문제가 있거나 뭔가 알아 볼 게 있어 역원에게 말을 걸면 귀담아 듣지 않고 그냥 ‘나가라’하는 식의 무례는 다반사다.
혈액 검사소나 하드웨어 숍에 가도 차게 구는 직원이 많아졌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약 20년 전 만해도 덜 그랬다. 영어도 못하고 무례를 당해도 아무렇지 않는 이민자가 수적으로 크게 늘어났고 그런 집단을 우습게 여기게 된 탓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무례한 자들은 백인보다 유색인 가운데 더 많다.)
 
잘 먹고 돈 잘 번다고 삶의 질이 높은 건 아니다. 인간 대접을 받는 것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위에서 이민자의 현지 사회로의 통합 또는 적응의 1차 목표는 개인과 집단 차원, 그리고 실용과 전략 면에서 문화적 동화여야 한다고 한 이유다. 이 나라는 다문화주의인데 해서는 안 된다. 그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결론은 자명하다. 한인사회에 공동목표가 있고 한인회와 같은 구심점 단체가 있다면 사회통합 목표도 그 안에 한 큰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고국의 재외동포정책의 근간은 민족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거주국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돕는 데 있다. 커뮤니티 자체의 정책도 이와 다를 수 없다. 문제는 이 두 가지는 하나를 잘 하면 다른 하나도 덩달아 잘하게 되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아니고 그 반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두 문화에서 어떻게 이중적 역할 (dual roles)을 슬기롭게 잘 해서 살 수 있느 냐가 관건인데 과문인지 몰라도 그런 과제를 다룬 연구는커녕 경험담을 쓴 심층적인 글마저도 고국과 해외 한인사회에서 나온 것을 보지 못했다.. 

너무 강한 민족정체성

나는 해외 한인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원은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게 잘 될 수 없다면 고국의 재외동포 지원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데 구성원들은 호주에 떨어지는 그 돈이 얼마며 어떤 사업에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고 있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눈 짐작이지만 효과로 봐 거의가 세계한민족네트워크의 구축과 같은 말로 요약되는 민족정체성 강화를 위한 행사와 사업에 쓰이고 있다고 보는데 그 정책에는 한가지 잘 못된 전제 (misconception)가 깔려 있다고 본다. 해외에 살면 고국을 잊어버린다는 전재인데 영미지역 한인들의 경우 현실을 잘 모르는 틀에 박힌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나친 민족 감정이 발전을 저해하는 건 아닌가..

이 지역 커뮤니티는 계속되는 이민의 유입으로 계속 1세 중심이고 한인교회가 대표적 예인 대로 모든 단체 활동과 개인간 교류가 저들이 보기에 동족끼리만 똘똘 뭉쳐 함으로써 고립된 ‘이민자 소굴’ (ghettos, enclaves)이 되고 있다. 고국의 정책은 그걸 더 심화는 시키는 게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 (소굴 하면 빈곤층을 연상하지만 호주 한인들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지만 영미인의 가치와 문화 면에서는 타당한 말이다.)
 
호불호보다 필요가 관건

글이 이미 너무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전술한 심리적 동화와 문화적 동화와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짧은 코멘트다. 이민자는 거주국을 좋아할 수록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익히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한 과거 연구에 따르면 더 중요한 변수는 동기의식으로서 필요 (needs)다. 그리스계 커뮤니티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잘살게 되니 문화적 동화를 기피하고 더 자기들식으로 살더라는 것이다. 필요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오래된 한 조사는 미군 부대에 나가 일하는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인디언들의 삶을 알아봤다. 그들은 낮에는 미국인과 똑 같이 말하고 같이 행세를 하면서도 일과 후 집에 돌아와서는 미국인 흉을 보면서 완전히 자기들 식으로 놀고 지내더라는 것이다. 필요할 때만 미국인 행세를 한다는 말이 된다. 호주 애보리진(원주민)에 대하여 조사를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 같다. 한국의 재외동포정책 책임자간에 가끔 ‘기민(棄民)’이란 말이 쓰인다. 고국이 돌보지 않기 때문에 남의 나라 사람이 되고 만다는 시비인데 조선족, 재일교포, 고려인은 몰라도 서방 지역의 한인들은 그럴 염려가 없다는 게 나 개인의 의견이다. 장래 재외동포정책은 교포들의 현지화에도 머리를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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