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시드니 도심은 동성애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과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주최측은 약 4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자신들도 법률상의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주장했다. 

연방정부는 전체 유권자 1600만명에게 우편으로 동성결혼 합법화 찬반 여부를 묻는 투표를 이번 주부터 실시한다. 이번 우편투표는 강제성이 없어 유권자들은 반드시 답할 필요가 없다. 또 우편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찬성표가 많더라도 의회 승인을 거쳐 법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분석이겠지만, 찬성표가 많으면 의회 내의 동성결혼 합법화 추진에 힘이 실리게 된다.

지난 6-10일 실시된 페어팩스/입소스 여론조사에서는 10명 중 7명이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전국 유권자 1400명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65%만이 우편투표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들 중 68%는 찬성, 25%는 반대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나머지 7%는 모른다였다. 이 설문조사의 표준오차는 2.6%다.

연령별로는 예상대로 젊은층은 찬성 비율이 높았고 55세 이상 중노년층은 낮았다. 성별로는 여성의 찬성 비율이 74%로 남성(63%) 보다 11% 높았다. 출생지별 찬성률은 호주 출생자 71%로 해외 출생자(60%) 보다 11% 높았다. 정치 성향별 찬성 비율은 녹색당 지지자 90%, 노동당 지지자 74%, 자유국민연립 지지자 57%였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큰 이변이 없으면 이곳 호주에서도 조만간 동성결혼이 합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이슈의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웠던 점 중의 하나는 보수 정치인인 말콤 턴불 연방 총리가 이를 선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주말의 거리시위에 대해서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원래부터 공화국건립 운동(ARM)을 주도했었고 여러 이슈에서 온건 우파의 시각을 드러내온 인물이지만, 확실히 그는 정치적으로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문명 발전의 역사에서 동성 결혼의 합법화는 되돌리기 힘든 흐름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처럼 그는 이 논쟁을 주도함으로써 동성결혼 합법화가 성공하면 현실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확보 뿐만이 아니라 향후 역사의 우호적 평가까지 얻어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했다. 이처럼 공세적인 정책 주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이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이다. 역사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첫걸음이 그의 손에서 시작됐다.

맨날 복지는 퍼주기 예산 낭비라고 강조하고 동성애자는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보수 정당 대표들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실 좌파(진보)와 우파(보수)의 개념은 상대적일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크게 보아도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행태적 이렇게 4가지 기준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준 역시 씨줄과 날줄이 얽히듯이 복잡하게 전개된다.

예를 들어 중국의 덩샤오핑을 보자. 
기존 마오이즘의 경직된 중국 경제를 변화시켰다는 측면에서 그는 분명히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 하지만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고 공산당 1당 독재를 강화했다는 측면에서는 그는 누구보다도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그가 보수적으로 지킨 정치 시스템은 바로 좌파 공산주의 체제이고, 진보적으로 변화시킨 경제 시스템의 종착지는 우파 자유시장경제였다.  

어쨌든 흥미로운 점은 최근 들어 세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각국의 거시경제 관리 시스템이 일정한 모델로 수렴하게 되면서, 이번 동성결혼 이슈에서도 보여지듯이 진보와 보수의 전선이 점차적으로 ‘문화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대선 토론에서 군대 안에서의 동성애 문제가 등장했다. 이번에 진보 성향의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가 결국 낙마하게 된 데에도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측의 집요한 로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김이수 후보자는 지난해 군인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 위헌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릴 때 반대 의견을 냈었다.

이번 페어팩스/입소스 여론조사에서도 젊은층, 여성, 진보 정당의 동성 결혼 합법화 찬성 비율이 높았다. 한국에서도 여성 장관 비율 등 페미니즘 이슈가 화제가 되고, 문재인 대통령의 주된 지지층이 30-40대 여성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문득 여기 호주의 한인사회는 문화적으로 주류사회의 정치지형과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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