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시드니 한인사회 호사가들의 관심사 중 하나가 18기 민주평통 호주협의회 자문위원에 누가 위촉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지난달 30일 시티 그레이스 호텔에서 출범식이 열리면서 그 궁금증이 해소됐다. 이번에 위촉된 자문위원들이 통일 관련 정책 건의 등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약 140명의 호주 한인들이 ‘호주동포사회는 민주평통의 개혁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21일 한호일보 등 한인 신문에 광고를 통해 발표했고, 이것을 한호일보의 고직순 기자가 ‘호주 한인들도 평통 개혁 촉구’라는 타이틀로 기사화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평통을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의 인터넷판에 댓글이 7개나 달렸다는 점이다. 대다수 기사에 댓글 하나도 찾아보기 힘든 교민매체 상황에서 이는 상당한 관심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하나의 댓글에 눈길이 갔다. 어쩌면 너무나도 흔히 들어왔던 주장이다. 이 댓글을 쓴 사람은 “이역만리까지 와서 왠 정치병인가. 한국정치에 관심 있으면 한국에 돌아가라”고 힐난했다. 구체적으로 찬성이나 반대를 밝히지 않았으나, 차라리 호주 안에서의 동성결혼 문제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도 했다.

호주정치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자는 관점은 당연히 훌륭한 제안이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버려야만 하는 문제인가. 호주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양식있는 지식인이 되는 일이고, 한국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쓸데없는 정치병에 걸린 것이 되는 것인가. 우리는 캔버라를 향한 지향 만큼이나 서울에 대한 애착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팍팍한 일상에서 먹고 살기 바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전혀 관심을 끊어버리고 사는 사람도 드물다. 예를 들어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한인이라면 비록 1.5세대나 2세대라 할지라도 한국의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갖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이 비록 잠시 커피 타임에 지나가는 소소한 대화를 통해서라도 말이다.
무슨 이역만리 타령도 그렇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인터넷 TV를 통해서 한국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단지 그뿐일까. 최근에 발생한 라스베가스 총격 사건,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독립 추진 관련 경찰의 폭력 진압 상황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뉴미디어를 통해서 실시간 업데이트된다. 

이처럼 분초단위로 변화해가는 세계화 그리고 정보화 시대에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호주의 한인들은 호주정치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으며, 또한 이번 호주동포의 민주평통 개혁 촉구 성명서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한국정치와 이곳 시드니 한인사회의 교집합으로서의 이슈에 당당하게 의사를 표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곳 시드니에서도 지난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시위 모임에 수백명의 한인들이 참가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한국에나 가라”라고 냉소를 보내던 사람들이 실제로 한국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관점과 반대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번 민주평통 개혁 촉구 성명서를 발표한 사람들에 대해 정치병 걸렸다고 평가한 사람이 사실은 한국정치에도, 그리고 이곳 호주협의회 자문위원 구성에도 관심이 클 수 있다. 단지 이번 성명서가 자신이 생각하는 구도를 그려나가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비판한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의 보수 언론이 그러하듯이 어떤 종류가 되었든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키려고 노력하는 이는 대부분 그 내면에 숨겨진 별도의 정치 아젠다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이곳 시드니 한인사회에서 기자로서 다년간 취재하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국, 호주, 세계를 따로 가릴 것 없이 모든 주제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사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모든 것에 아예 상관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시민의 권리 자체에 대해서 함부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캔버라를 향한 것이든, 서울을 향한 것이든, 아니면 캠시정치라 불리는 이곳의 시드니 한인회를 향한 것이든 말이다. 민주평통이 무슨 구름 위의 조직도 아닌데, 성명서를 내면서 이를 비토할 시민의 권리가 왜 폄하되어야 하는가. 당신에게 비토에 동참하라는 권유는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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