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brandt Harmensz. van Rijn, 'Self-portrait as the apostle Paul', 1661

렘브란트가 시드니에 왔다. 풍차, 튜울립의 나라, 더치 페이와 스피노자(B. Spinoza)의 나라. 네덜란드의 황금기 회화를 이끈 더치(Dutch) 천재들의 작품이 전시장 벽에 걸렸다. 아, 하는 감탄이 나왔다. 오픈하기 전에는 특별히 전시장 앞을 지날 필요가 없는데도 괜히 그앞을 서성거리고, 카페로 가는 길에 한번 오는길에 또 한번 애꿎은 커피만 자꾸 마셨다.  언뜻 보이는 인상은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시킨 강렬한 바로크 미술 바로 그것이었다. 

지난 금요일 밤(11월 9일)에는 전시 오프닝이 있었다. 평상시 보기 힘든, 어디서 왔는지 모를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그라운드층을 가득 메웠다. 갤러리 직원이나 자원봉사자들 외에 갤러리에서 초대한 사람들로,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차림새도 꽤 있었다. 그날은 동성 결혼 찬반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도 어떤 게이 커플은 한쪽에서 이미 통과되었다며 주변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며 축하하고 있었다.  뉴사우스웨일즈 주립 미술관장, 네덜란드 총영사, 네덜란드 국립 미술관 라익스뮤지엄(Rijksmuseum)의 큐레이터 등 오프닝 스피치들이 끝나자마자 성격 급한 사람들은 그림을 보기위해 서둘러 아래층 전시장으로 내려갔다.

나는 여기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것이 그라운드층 한가운데에 한상 떡벌어지게 네덜란드식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각양각색의, 아니, 다양한 택스쳐와 다양한 크림색의 치즈와 버터, 빵, 타트, 과일, 야채 그리고 와인…이름도 모를 치즈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 온몸에서 치즈냄새가 나는듯 했다. 아래층 그림을 포함해,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건 분명 홀랜드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립미술관은 절대 이렇게 쓸 예산이 없다.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의 전무후무한 전성기인 17세기, 그들의 풍요로운 경제적, 문화적 생활상을 회화를 통해 보여주는 전시이다. 이 시기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카톨릭 절대 왕권 체제 아래 매우 웅대하고 장엄한 미술이 유행하였다. 주로 드라마틱한 종교화나 왕권 강화에 일조할 수 있는 화려한 초상화가 제작되었다. 

반면 네덜란드는 작고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들, 매우 사실적이며 일상 생활을 표현한 장르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꽃그림에서는 향기가 나서 나비가 날아들듯 하며, 부유한 상인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옷감은 그것이 중국 무역으로부터 얻은 실크인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렘브란트(Rambrandt van Rijn))의 자화상은 화려한 젊은 시절을 뒤로 하고 파산한 노화백의 관조하는듯한 눈매가 압권이다. 버미에르(Johannes Vermeer)의 ‘편지를 읽는 여인’의 그림에서는 그 당시 여인들이 아침에 입는 가운의 모양을 알 수 있으며 집안 인테리어에 사용된 가구를 볼 수 있다.

이렇듯 이웃 나라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작품이 제작된 이유로 세가지 배경을 들 수 있다.

Johannes Vermeer, 'Woman reading a letter', c1663

1. 정치적 배경

네덜란드는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오랜 전쟁을 마감하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며 공화국 체제가 된다. 다시말해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 정치의 막을 내린 것이다. 예술을 후원하고 소비하는 층은 더 이상 왕이나 귀족이 아닌 새로운 중간 계층, 즉 신흥 부르조아 계급이었다.   

2. 종교적 배경

또한 권위적인 가톨릭으로부터도 분리되며 종교적 자유가 범람하는 개신교의 나라가 됐고, 세계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자들은 신화 속의 벌거벗은 인물들이나 거룩한 종교화보다는 일상의 모습이나 생활을 재현한 그림으로 그들의 호화주택과 사무실을 장식하고자 했다. 더불어 신흥종교는 교회안의 종교적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였기에 화가들은 좀 더 세속적인 주제로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3. 경제적 배경,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관건

바야흐로 유럽 최강의 부자 나라로 성장해 상공업과 금융, 철학, 과학, 법률, 미술 등 전반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랬다. 다음 주자 영국에게 바통을 넘겨주기까지 17세기 유럽의 경제적 헤게모니는 분명 네덜란드에 있었다. 국제 무역으로 현금이 넘쳐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소비를 했다. 특히 가장 성공적인 흥행 코드는 다름아닌 미술이었다. 오죽하면 네덜란드를 렘브란트의 나라라고 부르기까지 할까. 유럽에 첫번째 미술 거래 시장이 생긴것도 이 시기의 암스테르담이었으며 프란스 할스(Frans Hals), 렘브란트, 버미에르 등 미술사상 최고의 작가들을 배출해내고 이후 고흐(Vincent van Gogh)로 이어진다. 

해마다 연말로 접어드는 여름의 언저리에서 주립 미술관은 그 해의 가장 공들인 블록버스터 전시를 시작한다. 이는 내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남반구의 여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살 더 나이들어 우울할 수도 있는 계절에 멋진 전시와 더불어 도파민과 엔돌핀으로 뒤범벅이 되는 것도 생각해보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자고로 여인의 투기는 칠거지악 중 하나라 했거늘…지난 주 오프닝을 보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느낌은 다름 아닌 질투였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의 번영과 그를 반영한 풍요로운 예술, 완벽한 보존, 국민적 자긍심,  국가적 지원…아, 왜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조차 한반도 출신의 이 여인은 아직도 국수주의적 질투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오늘 저녁엔 맥주라도 마시며 맘을 다스려야겠다. 더치 발효 기술의 정수 하이네켄으로..?
(자료출처 : AGNSW)

Jan Davidsz de Heem, 'Still life with flowers in a glass vase', 1650

‘렘브란트와 네덜란드 황금시대’ 전시
• 전시기간 : 2017년 11월 11일 -  2018년 2월 18일
• 입장권 : 성인 $24, 12 – 17세 $14 (12세 이하 아동 무료) 
• 무료 한국어 안내 투어
11월 15일 – 12월 13일, 1월 3일 – 2월 14일 :매주 수요일 오전11시
1월 13일 – 27일: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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