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이른 아침과 해진 후가 매우 바쁘다. 덥지 않은 때에 일을 해야 되기 때문이며 그것은 코리안 가든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오래 전부터 교민 차원의 상당한 규모로 한국 정원을 조성해 볼려는 뜻있는 분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이 사바 세계의 속성이라 지금은 주춤하고 있음이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작은 정원을 만들어 보기로 마음 먹고 한달 전부터 머리속으로 설계를 하고 나서 복지원 건물의 뒷뜰을 오가면서 이런 저런 구상을 해왔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음은 20여년 전 한국에 갔을 때 부산의 어느 고물상에 들어감으로써 시작이 되었다. 그곳은 상당한 규모의 점포로써 다양한 물품이 많이 있었다. 우선 석탑과 석등을 골랐고 남여의 석장승 2기 , 맷돌, 베틀, 물레, 멍석, 풍구대(바람으로 쭉정이를 골라내는 것), 엿장사 큰 가위, 나막신(나무로 만든 신),  1 미터 높이의 큰 항아리 3개, 고려시대 수저, 나무 등잔 등등 한 콘테이너의 분량을 구입해서 이곳으로 가져왔다. 그 중 멍석 등 짚이나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보관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서 이리 저리 굴러 다니다가 지금은 거의 다 썩어서 버린지가 꽤 오래 되었다. 

그나마 남은 것들을 여기 저기에 배치해 두고 그 주변에 보리와 도라지, 옥수수 등 가능한 한국적인 것을 심어서 가든을 만들어 보려고 조석으로 잔디밭을 오가며 눈 설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먼저 잔디를 캐내고 터를 닦으며 서늘한 기운이 있을 때에 호미질을 하다보니 그 때가 바쁘고 사뭇 기다려 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할 때에 매우 행복감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 매우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땅과 장비가 있고 또한 체력과 시간이 있음과 동시에 시원한 때를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그 여유로움에 대해서도 너무나 감사한 것이다. 그런 상황과 마음에서 일을 해보면 일념을 이루게 되면서 정신과 육체가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게다가 자신의 희망이 실현되면서 주변의 모습이 변화되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훈훈해진다. 

우선은 전통 찻집을 대나무로 새롭게 단장을 했고 등나무가 천막 속으로 감고 올라와서 보라색 꽃을 피운지도 3년이 넘었다. 그 앞에 돌을 파내고 땅을 고루어서 석장승 내외를 그곳으로 옮겼고 그 주변을 한국 전통기와로 꽃밭 두둑을 만들었다. 그 중간에 한국 소나무 분재를 심고 그 둘레에 다양한 꽃나무를 심었다. 다음 주에는 그 곁에 맷돌과 작고 예쁜 손으로 쪼아 만든 석등을 옮길 예정이다. 그리고 잔디밭 중간쯤엔 큰 항아리 2개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치하려고 그 주변을 매일 아침 서성거린다. 다행히 5년전에 한국식 담장을 하고 남은 전통기와가 몇 장 남아서 장독대 주변을 그것으로 장식하고 그 언저리에 도라지와 보리 등을 심어볼 계획이다. 그렇게 되고 나면 이보다 더 멋진 코리안 가든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인간의 삶은 적성과 능력대로 주어진 여건에 따라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 때에 생명과 신체의 안정이 보장된다. 아시아 국가들의 크고 멋진 가든을 바라볼 땐 다소 부럽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량이 이 뿐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 어떤 문제로 인해서 우리 힘에 걸맞는 교민 차원의 가든을 아직도 꾸릴 수 없는지에 대한 에누리 없는 개개인의 반성이야말로 국위를 선양하고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손바닥만한 한국 정원, 우리 조상들이 신주 단지처럼 생각하고 애용했던 큰 항아리가 만년의 된장, 간장 냄새를 머금은 채로 고금의 시공을 담고 있고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동네의 안녕을 희망했던 돌장승 내외가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들을 지켜주고 있으며 콩과 곡물을 갈아서 우리들의 생명을 보전해 주었던 맷돌의 무게만큼이나 큰 우리들의 조상들의 음덕이 스며 있는 그 손자욱, 그 곁에 솔향기가 스며들고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 꽃이 바람에 살랑인다. 또 그 옆엔 키가 큰 옥수수가 길게 수염을 늘어 뜨리고 있고, 엿기름이 되어 식혜를 만들게 되는 주원료인 보리이삭은 수염을 위로 기른채 추녀밑에서 싱그럽게 자라나고 있으니 이만하면 코리안 가든으로써 체면은 넉넉하지 않겠는가? 

헐떡거리는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찬찬히 자신의 생각을 내려다 본다. 나는 왜 옛날 것에 관심이 많으며 한국에 대한 애착심을 크게 갖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얘기가 나오게 되면 그 모두가 시간이 부족하다. 그 속에 짙은 향수가 어려있고 희로애락의 삶의 질곡이 녹아 있기에 그럴 것이다. 우린 지나온 그런 자신의 여정을 더듬어 봄으로써 그 속에서 스스로의 그 어떤 정체성을 확인해 보려는지도 모르겠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 옛 것을 본받아서 새로움을 창조해 나가라는 뜻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지난 일을 되돌아 보면 잘못된 결정이나 도리에 어긋난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처리한 것이지만… 더 먼 훗날 내 자신이 코리안 가든을 만든다고 은근히 자랑하던 지금이 그 땐 또 다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생각날 지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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