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예수라는 Christ와 미사라는 Mass가 합쳐진 단어다. X-Mas는 X가 라틴어로 크리스란 말이다. 동방박사 얘기로 봐서 예수가 난 날은 밤이 길었으리라는 추측 하에서 가장 긴 밤을 택한다는 게 12월 25일이 되었다. 로마에선 원래 이 날이 태양신 탄생일이었다. 이 날부터 해가 다시 길어지기 때문이다. 사실은 밤이 제일 긴 동지 보다 사흘쯤 늦은 날이다. 서기 350년 교황 율리오 1세가 예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선포한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동방교회에서는 1월 7일을 예수의 생일로 정했다. 기독교가 약해지면서 요즘 서양에선 크리스마스가 헤어졌던 가족이 1년에 한번 다시 만나는 날이 됐다.

1980년 5월 전세계 언론이 한국의 광주민주항쟁 사건을 보도하고 있을 때 멜번에서는 세계기독교회의(WCC)가 열리고 있었다. 필자는 한국 대표단의 통역으로 회의에 참가했다. 김관석, 박형규, 박화순 목사 등이 한국 대표였다. 의장은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저자로 유명한 브라질의 교육 사상가 프레이리(Paulo Freire) 신부(神父)였다. 프레이리는 그의 책에서 억압자와 피억압자와의 관계를 다뤘다. 그리고 피억압자의 해방교육을 주장했다. 당시 지식인이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 서적이었다.

회의에서 호주 신부 한 명이 용서(Forgiveness)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자 프레이리 의장이 “신부님, 용서란 말을 어떻게 쉽게 여러 번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용서를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아직도 극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는 얘길 듣고 나는 그의 솔직함에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새삼 ‘용서’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용서’는 인간이 하기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보통 분한 마음은 복수만을 위해 치닫는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계절에 자주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평소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용서를 다른 힘을 빌려서 하게 되는 기적이다. 그 다른 힘은 예수의 사랑 정신에서 비롯된 건지 이 계절의 독특한 분위기가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주게 된다.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내가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는 밤새며 노는 날이었다. 여학생들이 일년에 한번 합법적으로 외박하는 날이었다. 탈선이 가장 많은 날이었다. 그건 크리스마스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비판이 따랐고 그 후 점차 조용한 크리스마스로 변해 갔다. 그 대신 서양 크리스마스가 주는 ‘꿈과 환상’이 없어졌다. 교회 성가대가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캐롤을 부르던 낭만도 없어졌다. 대신 서울 시청 앞과 백화점은 물론 시드니에도 스트라스필드 광장과 유명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은 더욱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호주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없어도 해변에서 ‘캠프 파이어(Camp fire)’를 하며 맞는 여름 크리스마스도 맛이 색다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모든 쇼핑센터가 분주해졌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을 끌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성격도 서양 사람 대부분이 교회를 떠나기 전 보다 많이 변질되었다. 그래서 일반인들 마음 속에 크리스마스 정신은 외면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왕 변하는 김에 크리스마스가 용서하지 못하던 사람을 용서하는 계절이 됐으면 하고 상상해 본다. 자기 힘으로 안 되면 기적과 같은 ‘이 계절의 분위기’ 힘을 빌려서라도..

복싱데이(Boxing Day)
12월 26일은 ‘복싱데이’ 라는 공휴일이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다. 금년 복싱데이는 화요일이다. 토, 일요일을 끼고 X-Mas연휴가 계속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주일은 주중 4일이 무조건 공식휴일이 된다. 여기에다가 자기의 월차 2-3일을 합하면 1주일에다가 다음 주 토, 일요일까지 합쳐 약 10일 간의 휴가기간이 생긴다.

여기에 1월 초 3일 간 공휴일을 합하면 2 주쯤 된다. 외국여행 하기에도 충분하다. 호주의 경우 12월 24일부터 1월 4일까지는 실제로 국가행정이 마비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호주는 여름철이라 국민의 3분의 1정도가 여행을 한다. 호주에 온지 오래되지 않은 한국교민 중 연휴라고 무턱대고 여행을 떠났다가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양은 예약문화라 모든 숙소가 몇 개월 전부터 예약이 끝났기 때문이다. 길에서 자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보았다.

12월 26일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반액 세일하는 첫 날이라 쇼핑데이(Shopping day)로도 유명하다. 원래 이 날은 예수의 제자로 예수를 부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예루살렘에서 돌에 맞아 순교한 ‘성 스테판의 날(Saint Stephen’s day)’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그 날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라 선물 상자(Box)를 풀고 정리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영연방국가들이 이 날을 철저히 지킨다. 어느 교민이 이 날이 권투하는 날이냐고 해서 나를 웃게 만든 일이 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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