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중동 외 영국, 호주 등 선진국도 만연

12일 ABC방송 보도로 알려진 호주 내 다수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악용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드러나면서 적잖은 파문이 일고 있다.

외교관 거주지를 탈출한 20명의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은 주말과 공휴일 휴무, 초과근무수당 없이 매일 최소 12 ~18시간 동안 일해왔고, 대사관을 벗어나는 것조차 금지됐다고 밝혀 충격을 안겨줬다.

문제는 비단 이같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중동이나 동남아 뿐만이 아니라 인권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호주와 영국 등에서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라고 불리는 이런 외국인 근로자 착취 문제는 양국 간 감정 격화는 물론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두테르테 “필리핀 근로자 철수 위해 전세기 보낸다”

지난 11일 쿠웨이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 가사도우미 조안나 다니엘라 디마필리스(29)가 살해되고, 시신이 1년 넘게 아파트 냉동고에 보관된 엽기적인 사건까지 드러나면서 필리핀에서 반쿠웨이트 정서가 일고 있다.

이에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쿠웨이트에 대한 근로자 신규파견을 중단한 데 이어 필리핀 근로자 전원 철수까지 경고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쿠웨이트에서 사망한 필리핀인이 2017년 120명이나 된다”며, “일부는 자살하거나 살해됐으며, 그 이전에 성폭행이나 각종 신체 학대를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카타르에서도 역시 필리핀 가사도우미 수백 명이 열악한 근로조건에 항의하며 도하의 필리핀 대사관으로 피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홍콩도 마찬가지다. 홍콩의 비영리 인권단체인 ‘저스티스 센터’는 1,049명의 외국인 가정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조사결과를 인용, 이들 중 6명당 1명이 강제노동, 물리적 폭력, 임금착취 및 식사와 휴식 박탈 등과 같은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스티스 센터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제이드 앤더슨과 빅토리아 위스니 오테로는 “이제 홍콩은 불편한 진실을 깨끗이 털어놓아야 한다”며 “더 이상 더러운 쓰레기를 카펫 밑에 감추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캔버라 사태, 2014년 영국의 복사판
외교관 면책특권 이용 착취 만연

한편 이번 캔버라 파문은 지난 2014년 영국의 복사판이다. 당시 외교관 가정 등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다수가 월 100파운드(약 17만원)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받고 있다는 폭로가 쏟아졌었다. 

이들 가사도우미는 장시간 노동 강요와 임금 착취, 폭력, 감금 등 횡포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이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지자 영국은 2015년 3월 ‘2015 현대판 노예법(2015 Modern Slavery Act)’을 여왕의 재가(royal assent)를 받아 발효시켰다.

이 법은 현대판 노예제에 대응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최고형량을 기존의 14년에서 종신형으로 증가시켰으며, 범법자의 재산을 철저하게 몰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호주는 미국에 본사를 둔 프리덤 하우스가 1972년부터 매년 출판하고 있는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자유 지수 순위 8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자국민의 인권과는 별개로 호주 심장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 착취의 추악한 실태가 폭로됐지만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외교관의 면책 특권 때문에 호주 정부가 어떤 조처를 취할 수 없다는 변명은 궁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10년간 노동자를 지원해 온 구세군의 제니 스탠거는 “2년 전 호주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한 호주 직장 법에 대한 교육이 큰 변화를 일으켰었다. 정부가 이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캔버라 한복판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대판 노예제도 종식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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