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漸入佳境)'. 이 사자성어의 본래 의미인 긍정적인 뜻과는 반대로 갈수록 추한 모습이 한국에서 계속 폭로되고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폭로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은 폭로로 촉발된 ‘미투(Mee_Too, 나도 당했다는 양심선언)’ 운동이 법조계와 문단계를 시작으로 연극과 영화, 공연계, 문화예술계 등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그간 숨죽이고, 숨어지내던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문화예술계에 경계경보가 울렸다. 여러 스캔들 중에서도 유명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의 성추행/성폭행 추태는 입이 벌어질 정도다.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 주장 여성이 10명이 넘었다. 좀 과장한다면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程度)로 딱하다는 의미인 ‘목불인견(目不忍見)’ 단계로 치닫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호주 유명 배우 제프리 러쉬의 신문사 데일리텔리 그라프지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재판이 19일부터 시드니에서 시작됐다. 2015년 시드니시어터 무대에 오른 리어왕(King Lear) 연극 공연에서 러쉬가 여배우를 ‘부적절하게 만졌다(inappropriately touched)’는 보도와 관련해 러쉬는 “연극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런 터치였다”고 반박하며 신문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할리우드 스타가 고국인 호주에서 ‘연극을 하면서 부자연스럽게 손을 댔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는 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이런 명예훼손 공방을 보도하다가 한국에서 터져나온 성추행/성폭행 폭로 기사를 보면 한국은 모든 면에서 극단을 달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급 예술인들의 숨겨졌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문화권력자란 방패 속에서 그간 저질러온 범죄가 오랜 세월 주변인들의 묵인과 방관 속에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점 역시 말문을 닫게 하고 있다. 묵인과 방조를 해온 이들 또한 예술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해진다. 

우선적으로 한국은 내부고발자를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죽여 버렸던 사회였다. 범행이 분명한데도 인적, 지연, 선후배, 이해관계를 앞세운 묵살, 억압으로 범행과 부조리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구조였다. 항변하면 더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서지현 검사의 피해 사례에서도 항의하고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자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권력자 주변에 공범자들이 수두룩했다. 국가의 녹을 먹던 공무원들이었기에 이런 범죄 행위는 더욱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아직도 공익제보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고 제보자를 보호하거나 보복행위를 막으려는 조직의 분위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라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게 좋다’, ‘조직을 위해 대충하고 넘어가자’, ‘분위기를 파악하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듯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 한다’는 말을 흔하게 접했다. 이제는 물론 ‘개소리’ 취급을 받지만.. 
이런 억지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역지사지의 입장에 서 봐야 한다. 나의 이해관계 가 당연 최우선이요 사회 정의, 개인의 인권유린은 ‘아무 상관없다(I don't care)’라는 인식이 강한데 이들이 피해자였다면 과연 이런 헛소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윤택의 피해자들 중 한 명(여성 연극인)이 이씨가 기자회견에서 사과하는 척 하는 연극을 하면서 “합의된 성관계였다”며 발뺌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입에 똥물을 퍼붓고 싶다’는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피해자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성추행, 성폭행 사건에서 제대로 된 반성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런 모양새다.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에 놀란척하지만 ‘이것도 한때 태풍 광풍이려니’하면서 위기 모면에 급급하는 모습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또 못된 짓 하는 자들 주변에 달라붙은 권력 기생충들도 이번 기회에 가려내야 한다. 이들은 조력자로 때론 방관자 역할을 하며 범죄 은폐에 공모를 해 왔다. 
법적인 송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아마 영어권 선진국에서 이윤택 스캔들이 벌어졌다면 패가망신은 물론 혹독한 형사 처벌에 거액 배상 등 사회에서 매장당할 범죄로 엄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가해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호주의 교회, 학교 등 기관에서 수십년 전에 발생한 아동성추행/성폭행 사건에 대해 의회특검(로얄커미션)을 가동시켜 5년 이상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 관련자 처벌과 보상에 국가가 주체가 됐다. 수억 달러의 예산을 지출했지만 돈 낭비란 비난은 없었다.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시정하고 이런 만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늦더라도 악(범죄 행위)은 반드시 처벌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함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는 이번 미투 운동이 오랜 세월 묵은 권력형 성범죄의 뿌리를 뽑고, 나아가 성범죄에 대한 한국 사회 전반의 인식변화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기대감을 갖고 한국 뉴스를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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