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원자재와 농축산물 등 1차 산업과 금융 서비스업과 같은 3차 산업이 발달한 반면 2차 산업인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국토면적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 내수만으로는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기가 어렵고 높은 인건비 탓에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탓에 호주는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해외 제조사와 호주 소비자 사이에 수입, 유통, 도소매업자 같은 중간 단계가 많다 보니 같은 제품이라도 다른 나라에 비해 가격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나이키 운동화라도 중국에서는 $70에 팔리는 것이 호주에서는 $90에 팔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국가 간 가격 편차를 이용해서 싼 가격에 판매하는 국가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한 후 비싸게 파는 국가에서 판매한다면 문제가 없을까요? 가령, 호주의 한 사업자가 중국의 나이키 공식 판매점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 모은 후 호주로 반입해 호주 내 나이키 공식 판매점보다 저렴하게 파는 경우가 그럴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병행 수입(parallel importing) 이라고 부르는데 가짜 짝퉁 상품 (counterfeiting product)을 만들어서 파는 것과는 달리 진정 상품(genuine product)을 정당하게 구입해서 판매하는 것이므로 사안에 따라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모호하게 오갈 수 있습니다.     

일단 병행 수입으로 제품이 판매가 되면 그 과정에서 가장 불만이 큰 사람은 위의 나이키 예에서와 같은 경우 호주 내 나이키 공식 판매점일 것입니다. 이들은 미국 나이키 본사로부터 호주 내 독점적 판매권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중국에서 동일한 나이키 신발을 구입해서 호주로 들여와 더 싸게 판매한다면 매출 하락은 불 보듯 뻔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 제조사와 각 국가의 총판권자 사이에 맺는 제품 공급 계약서에는 총판권자가 해당 국가 외 다른 국가로 제품이 재판매되는 것을 막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되는데, 현실적으로 제품을 구매하러 오는 사람이 본인이 직접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가져가 되 팔 목적으로 사는 것인지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호주에서의 진정상품의 병행 수입과 관련된 법적인 이슈로는 호주 소비자법과 저작권법 그리고 상표법 등이 관련될 수 있습니다. 우선, 호주 소비자법(Australian Consumer Law)에 따르면 병행상품 수입업자는 본인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보증과 수리 의무를 가집니다. 위 나이키 예를 다시 들면, 중국으로부터 나이키 병행상품을 호주로 들여와 판매하는 업자는 제품에 하자 발생시 제조사와 동일한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때 호주 내 나이키 공식판매점(총판권자)는 병행수입된 제품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병행수입된 상품 구매시 판매자의 품질 보증 및 수리 여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병행수입된 애플의 아이폰을 구매했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애플 공식대리점에 가지고 가면 서비스를 거부당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과거 호주에서는 해외 제조사가 저작권법을 이용해 병행 수입을 금지시켰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R.A. Bailey & Co. Ltd. v Boccaccio Pty Ltd (1986) 6 IPR 279 케이스에서는 베일리스 아이리쉬 크림(Baileys’ Irish Cream)의 해외 제조사가 와인의 라벨에 포함된 그림이 창작물(artwork)의 일종이라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이 저작권의 라이센스를 받지 않았던 와인 병행수입 업자는 저작권법 위반이 결정되어 호주 내 병행수입 제품 판매 중지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판례 이후 호주의 저작권법(Copyright Act 1968)에 제44C항이 신규 추가되어 병행 수입 금지를 위한 목적으로는 저작권법의 적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베일리스 (Baileys)의 사례와 같이 저작권법을 이용한 병행수입 제제는 불가능해졌습니다.  

한편 호주 상표법(Trade Marks Act 1995)의 제123조에 따르면 상표권자의 동의(consent) 하에 등록 상표가 제품에 사용된 경우라면 상표권 침해의 예외사유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즉, 병행 수입된 제품이라도 제조사의 동의 하에 사용된 상표에 대해서는 상표법을 적용해 제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위의 나이키 예를 다시 들면, 중국의 나이키 공식 판매점에서 구입한 운동화에는 ‘Nike”라는 등록 상표가 찍혀 있는데 이 상표는 당연히 나이키 본사의 동의 하에 사용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나이키 운동화가 호주로 반입되어 판매되더라도 상표권자의 동의 하에 팔린 것이라 주장할 수 있으므로 상표법상으로는 문제가 될 소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상표권은 각 국가별로 등록해서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에 만일 호주 내 상표권자가 해외 제조사가 아닌 호주 내 총판권자 명의로 되어 있을 경우 문제가 달라집니다.  2012년에 있었던 Lonsdale Australia Limited v Paul’s Retail Pty Ltd [2012] FCA 584케이스에서는 병행 수입업자였던 폴스 리테일(Paul’s Retail)이 론스데일(Lonsdale) 제품을 유럽의 판매권자(European Licensee)로부터 수입해서 호주로 판매한 것을 다루었습니다. 호주의 총판권자였던 론스데일 오스트레일리아(Lonsdale Australia)가 폴스 리테일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특이한 것은 호주의 론스데일 상표권이 영국 론스데일 본사가 아니라 호주 총판권자인 론스데일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었던 것입니다. 호주의 론스데일 오스트레일리아는 당연히 병행수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비록 병행수입된 제품이 수입한 국가에서는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은 것이었다 해도 호주에서는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 되는 셈입니다. 다시말해, 호주 내에서는 상표권 제123조를 주장할 여지가 없어져 결국 상표권 침해 판결을 받아 병행상품의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2012년 론스데일(Lonsdale) 케이스 판례에 따라 호주 내 상표권자가 해외 제조사가 아닌 호주 총판권자인 경우 병행수입된 진정상품의 호주 내 수입 및 유통이 어려워졌습니다. 따라서, 병행수입 업자의 입장에서는 수입하고자하는 제품에 사용된 상표가 호주 내에서 누구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병행 상품 수입업자는 해외 제조사의 보증 (warranty)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광고 시 소비자를 오인 또는 혼동하게 할 수 있는 표현을 삼가해야 합니다. 

호주 내 총판권자 입장에서는 해외 제조사의 허락을 얻어 본인의 명의로 호주 내 상표 등록을  해 두는 것이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상 해외 제조사들이 브랜드 소유권을 해외 총판권자에게 넘기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업 관계가 좋을 때는 큰 문제가 안되다가도 나중에 사이가 틀어지면 상표권을 되찾아 오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총판 계약을 맺을 때, 총판권자의 이름으로 상표 등록하는 것을 허락하되 이 권리가 총판 계약과 연동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즉, 총판 계약이 만료 또는 종료될 경우 등록된 상표를 해외 제조사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조건부 양도(conditional assignment) 조항을 넣는 식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조건부 양도 조항을 통해 호주 총판권자가 상표 등록을 했는데, 실제 영업 관계에서는 해외 제조사가 호주 내 영업과 관련하여 총판권자에게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예를 들어, financial control 이 있을 경우) 비록 상표권이 총판권자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호주 내 수입된 병행 수입 상품에 사용된 상표는 상표권자(해외 제조사)의 동의를 얻었던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병행수입 업자는 상표권 침해 예외를 주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렇듯 진정상품의 병행수입과 관련된 이슈는 거래 당사자들(해외 제조사, 총판권자, 병행수입 업자, 소비자)의 입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계약 체결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국제적으로 얽혀있는 총판계약, 라이센스계약 등의 세부 내용이 복잡한 경우가 많아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전문가의 법적 조언을 받고 진행하도록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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