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의 피터 벨(AFL 웹사이트 발췌)

서호주 최고 인기 스타, ‘AFL 명예의 전당’ 영예 

지난달 26일 방송된 ‘ABC 라디오 시드니’(ABC Radio SYDNEY)에서는 유일한 한국 태생의 전직 AFL(호주식풋볼) 스타였던 피터 벨(Peter Bell)이 출연해 선수 시절과 한국 입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눈길을 끌었다.

피터 벨은 1976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태어나 생후 단 며칠 만에 호주 부부에게 입양됐다. 출생 전 미국인 생부가 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어려운 환경에 홀로 남겨진 생모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것.

그는 서호주 퍼스 남부의 작은 마을 코존업(Kojanup)에서 6명의 형제 자매와 함께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9살 때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또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성인이 되어서도 생모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들이 미국으로 입양된 줄로만 알고 있던 생모는 오랜 시간 미국에서 그를 수소문하다 과거 출산과 입양을 도와준 수녀의 제보로 2006년이 되서야 호주에서 피터를 찾았다. 30년 만에 재회한 모자는 그 후 서로 왕래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피터가 AFL을 처음 접한 건 10살 때였다. 매일 밤 축구공을 껴안고 잠들 정도로 풋볼을 사랑했다. 13살 때 양쪽 다리가 모두 부러지는 심한 부상과 합병증에도 AFL을 향한 그의 열정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피터 벨(AFL 웹사이트 발췌)

AFL 프로선수로선 불리한 체격 조건(175cm)이었지만 매우 대담하고 민첩한 플레이로 1994년 새로 창단한 프리맨틀 도커스(Fremantle Dockers) 팀의 초대 선수로 발탁돼 이듬해 프로선수로서 데뷔했다. 그러나 단 2번의 경기 이후 코치와의 불화 등의 이유로 클럽에서 제명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하지만 당시 멜번 북부 캥거루(North Melbourne Kangaroos) 팀 코치 데니스 파간(Denis Pagan)이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스카우트했다. 그 후 캥거루 대표선수로서 1996년과 1999년 2회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특히 1999년 시즌 결승전에서 골 4개, 공점유 31회라는 남다른 활약상을 선보여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 후 그는 2001년 프리맨틀 도커스로 복귀했다. 그는 “비록 제명되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내 프로선수 생활을 처음 시작한 이 팀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켠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며 다른 수많은 팀의 러브콜을 모두 거절하고 망설임 없이 프리맨틀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2002년 주장 완장을 찬 그는 맹활약을 펼쳐 이듬해 도커스팀 최초로 그랜드파이널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렇게 전성기를 이어가다 2008년 통산 286경기에서 골 250개를 기록하며 약 15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15년엔 AFL 명예의 전당(AFL Hall of Fame)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믿지 못할 일’들이 내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의 탄생배경과 AFL 프로선수 활동,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까지 모두 ‘운명’인 것 같다”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프리맨클 도커스팀 선수 중 최오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이 자리에는 생모 경애씨도 참석해 축하를 햇다.

현재 피터 벨은 ‘ABC 라디오 퍼스’(ABC Radio PERTH)에서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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