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호일보가 진행 중인 인문학콘서트 관련입니다. 할 일이 없어서일까요. 개인적으로 큰 관심사입니다. 금년 시리즈 첫 순서인 정동철 변호사의 두 강연 전부를 참석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래 보고자 합니다. 개인 이야기에 더하여 몇가지 제안을 조심스럽게 해보려고 합니다. 순전히 한인사회 구성원 한 개인의 의견입니다.

큰 관심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가 일찍이 비슷한 일을 해본 감회입니다. 80년대 중반 ‘호주소식’을 발행할 때 ‘토요교양강좌’를 네 다섯 번 하다가 더 못했고, 90년대 중반에는 한호지역문제연구소 이름으로 한인사회의 장래, 그때 한창 뜨던 한인 유학, 관광 산업 등 현안 이슈를 과제로 패널을 구성, 참석자와 질의 토의를 벌이는 교민 워크숍을 열었었으나 역시 오래 못 갔습니다.   
 
원래 마당발이 못되고, 이게 내 개인 돈벌이도 아닌데 무슨 죄를 저서 구걸을 하러 다녀야 하는가 라는 좁은 생각에 자금 마련을 못했습니다. 한 두 명 가까운 분이 기백불을 도와 주셨습니다. 워크숍에 대한 광고는 호주동아일보(당시 오직일 발행인, 고직순 편집국장)가 크게 내주었고, 저는 행사 후 기사를 만들어 보냈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장소는 담임 목사의 허락을 받아 교회 교육관을 빌려 썼으나 실무자들이 전화를 걸어와 이의를 제기하는 등 불편도 있었습니다. 더 큰 어려움은 발표자를 물색하고 참석자들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 하나는 광고를 보고 참석하는 교민은 매우 적다는 사실입니다.  일일이 전화 연락을 했을 때 워크숍에는 한 때 100명 이상이 참석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한 때는 한국에서 오신 한 분이 캠시에 라디오 방송국을 차려 몇 개월 동안 운영했는데 찾아가 한인사회 관련 시사토론 시리즈를 제의해 몇 번을 진행했습니다. 마침 수필가 최옥자 님이 다른 프로로 거기를 드나드셔서 잘 아십니다. 제1차에는 당시 한인회장이던 고(故) 이배근 회장을 모셨습니다. 그 다음은 목회자와 다른 한인 몇 분을 초청했는데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 일까, 설명은 여기서 못 드립니다.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개인 이야기를 굳이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한인 인구 15만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든든한 한호일보의 주관으로 번듯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인문학 콘서트가 구성원들의 참여와 협조로 한인사회의 지적 구심점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리즈 1차인 두 강좌 (한 회 거의 2시간, 도합 4시간)동안 꼬박 뒤에서 방청하신 한호일보 신이정 발행인의 열의와 성의가 감명 깊었습니다.   
 
동기의식

왜 지적 구심점인가요? 대답을 위하여 굳이 두 가지 학술 개념을 언급해야겠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필요와 필요 충족(needs and gratifications research)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글을 읽거나 강의(또는 강연)를 들으러 가는 것은 분명 이유(또는 목적)가 있어서일 텐데 그 필요 충족을 분석해보면 해당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하는 조사.연구 방법론입니다.
 
필요는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이 결정합니다. 여기 1세, 1.5세 한인들은 주류사회는 물론, 자기 커뮤니티에서도 사회적 및 지적 역할을 갖지 못하고 사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회적 및 지적 역할이 없는 사람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거나 기존의 지식을 더 발전시킬 동기의식을 가질 리가 없습니다.
 
이 분야에는 또 다른 우리에게 불리한 ‘지식의 격차 이론’(the knowledge gap hypothesis)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지식을 쉽게 흡수할 능력을 갖고 그 반대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식의 소유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난다는 가정입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이대로 간다면 여기 한인들의 평균 지적 수준은 주류 호주인과 고국의 형제자매들 모두에 비하여 훨씬 뒤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는 350여 개의 대학이 있습니다. 한 대학의 교수 숫자를 최소한 500명으로 잡아도 전체가 얼마입니까.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공공 기관장, 보좌관, 변호사, 회사 중역, 언론인, 연구소장 등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유급 전문직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하여 공부를 합니다. 요즘 독서 인구가 준다고 하지만 종로, 삼성동, 논현동의 교보 등 대형 도서점을 가보면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여기 시드니에는 구멍가게 책방 하나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한인사회에서 지(知)자가 붙는 사업은 거의 전멸입니다. 
 
해외 한인들은 정체성이란 말을 너무 쉽게 씁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우리 말 잊지 않고, 우리 관습과 생활양식을 지키고 있는 것만이라면 대수가 아닙니다. 우리대로의 철학과 장래에 대한 비전과 긍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라면 여기 한인들은 아마도 돈 말고는 울릉도나 백령도 주민보다 더 나을 게 없을 것입니다. 지적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쌍방 커뮤니케이션

서두에서 말한 제안입니다.
 
(1) 모든 이론은 현실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수이론, 응용이론과 같은 말이 쓰이는 이유입니다. 인문학콘서트에도 그 점이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 변호사의 강연 과제인 ‘인문학 시선으로 본 호주정치와 한인정치참여’는 좋은 예였습니다. 상당 부분 현실 문제이다 보니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뉴욕의 AP통신사는 그 큰 도시에서 그날 있을 수백개의 주요 행사들을 회원 언론사에 알립니다. 기자들이 그 가운데서 골라서 갈 때는 ‘누구 누구 참석 하에 성황을 이뤘다는’ 행사 자체 보도보다도 거기에서 나올만한 새 기사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토론이 그런 아이디어를 제공합니다. 우리 기자들도 착안했으면 합니다.
(2) 위에서 말한 정체성의 지적 측면을 위해서는 자체 사회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어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는 그간 커뮤니티 관련 다소 몇 개라도 나온 연구 결과, 세미나 발표, 매체에 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논평과 구성원의 의견 등이 정리되고 보관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우리대로의 연구소나 제대로 된 도서실 하나 없는 한인사회에서 먼저 생각나는 곳은 이 사회의 대표 기관이라는 한인회입니다.
 
한인회는 1년에 한번 ‘한인의 날’이나 개최하고 회장이나 운영위원들은 VIP들과 만나는 자리에 배석하는 일만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문학콘서트과 같은 자리에도 운영위원 한 사람이라도 나와 이 사회의 장래에 대하여 무슨 소리가 나오는가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벌써 10년 전, 미국 서부 여행을 단체로 하는 버스 안에서 였습니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고 신나게 안내를 하면서 “여기가 김창준씨(전 미 연방 하원의원)가 나온 지역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양반 지금은 어디 사세요?”라고 물었더니, 자기가 말하고 있을 때 묻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역할이 ‘새마을’ 강사 정도로 착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핀잔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인들이 하는 강연장에서 흔한 일입니다.
 
영미인들의 경우 40, 50명 정도 소그룹 모임에서는 발표 중에도 참석자 중 몇 사람이 잠깐 잠깐 사실 확인, 농담 등 짧은 발언으로 끼어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장내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위하여 좋다고 생각합니다. 콘서트의 기획 책임자이며 사회자인 김석원 목사(한호일보 문화센터장)가 이미 그런 원칙을 밝히셨으므로 기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토론이 잘 되자면 질문자의 예의와 요령도 필요합니다. 아무튼 교육의 효과는 서로 묻고 대답하는 쌍방형(Two way communication)이어야 큰 게 확실합니다. 개인 의견으로는 발표와 질의 시간 배정을 50-50, 반반으로 진행한다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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