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심사와 시민권 취득 요건 강화 등 연방정부의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한인 사회는 물론 다문화 커뮤니티의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방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지난 1973년 폐지된 ‘백호주의’로 불리는 ‘화이트 오스트레일리아 정책(White Australia Policy)의 부활’이라고 언급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선 실제 연구조사 결과 호주인 대다수는 이민자 감소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호주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의 경우 이민 반대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다.


시민권 자격 심사 강화…영어 구사능력•호주적 가치관 테스트

연방정부가 추진하는 시민권 취득 수정법안을 살펴보면 호주영주권자로서 최소 4년 거주하고 이 기간 동안 1년 이상 호주밖에 체류해서는 안 된다. 

또 영어 실력도 IELTS 5.0에 준하는 점수를 받아야 하며, 시민권 신청자는 또한 호주 공동체에 통합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증명의 예로 취업, 지역사회단체 가입, 자녀 취학 등이 포함된다. 신청 가능한 횟수도 제한돼 3차례만 지원 가능하며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하면 자동 실격이 된다.

이같은 연방정부의 시민권 취득 강화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닉 맥킴 녹색당 상원의원은 “시민권법 개정으로 턴불 정부가 호주를 백호주의 정책으로 회귀시키려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시민단체 겟업(GetUp)도 “연방정부가 극우정당 ‘원 네이션(One Nation)’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비난하며 “이번 조치는 사실상 모든 이민자가 호주의 가치에 대한 정통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고 불만, 이민자 감소 주장으로 이어져…

연방정부의 이같은 이민 정책은 호주 유권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산층의 감춰진 불만, 즉 이민자 증가로 인해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는 일부 보수층을 생각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것이다.

호주인구조사위원회(TAPRI)가 투표권이 있는 2,000명 이상의 호주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인구 증가로 인해 병원, 도로, 주택가격, 일자리 등에 큰 부담이 되며, 더 이상의 이민인구 유입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호주인이 7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한 호주의 반이민 정서가 전 직종에 걸쳐 퍼져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0% 이상의 노동직 종사자들과 대부분의 준전문직 화이트 칼라 직종 종사자들도 반이민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자 중 55%는 이민증가가 호주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에 위협을 가한다고 응답했으며, 52%는 때때로 호주가 마치 외국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많이 변했다고 응답했다.

이민 전문가인 모나시대학의 봅 비렐 교수는 "이민자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높아진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고용 안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고 지역 사회기반시설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비렐 교수는 이어 “국민들이 이민 유입을 우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호주가 지속해서 기록적인 이민 유입을 허용해온 결과 한꺼번에 10만 명이 노동시장에 쏟아진다. 고용 성장률은 이를 감당하지 못할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백호주의 뿌리는 중국인과의 일자리 경쟁…2018년 다시 시작되나?

이런 이민자 감축 주장은 호주의 뿌리 깊은 백호주의와도 맥을 같이한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백호주의 정책은 1850년 골드러시로 저임금 중국인 노동자가 대량 유입돼 임금경쟁이 일어나자 백인 노동자들이 유색인종을 배척하기 위해 논의가 시작된 것이 그 뿌리다. 1901년 연방정부가 수립된 이후 법제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백인 외의 인종 특히 아시아 인종을 배격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백호주의가 시행되는 동안 호주로 이민을 가려는 희망자들은 어학 시험 등을 치러야 했다. 서양인들은 사실상 시험에서 제외됐고 동양인만이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심지어 영어를 아는 동양인들에겐 그리스어 시험이 주어졌을 정도로 아시아인들을 향한 노골적인 차별 정책이 시행됐다.

호주 플린더즈대학의 정치분석가 헤이든 매닝은 새로운 시민권 정책이 내년 선거의 승리를 위한것이라고도 분석했다. 그는 “턴불 총리는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 상승률 등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년 선거에서의 승리는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정책은 턴불 총리가 여전히 유권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들의 직업과 안전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동안 호주에서는 매년 약 13만 명의 210개국 국민들이 시민권을 취득해 왔으며 457비자를 통해 10만여 명이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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