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게 아태지역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는 형제국같은 위치인 뉴질랜드를 제외하면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 국가들이다. 물론 한국과 중국, 일본이 호주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지정학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비중이 작지 않다.
그런 차원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2010년부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과 자유무역협정(AANZFTA)을 발효 중이다. 아세안 10개 회원국들(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및 베트남)을 한 그룹으로 묶으면 호주와 무역 규모(미화 1000억 달러)가 중국과 일본에 이어 3번째로 크다.   

지난 17-19일 시드니에서 ‘아세안-호주 특별 정상회의(ASEAN-Australia Special Summit)’가 열렸다. 호주는 아세안의 정식 회원국은 아니지만 전략적 파트너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호주는 1974년 아세안-호주 대화관계(ASEAN-Australia Dialogue Relations)를 체결했다. 지난 2010년 10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17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별도로 아세안-호주 정상회의가 개최됐고,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는 등 아세안과의 관계가 발전되어 왔다. 

시드니에서 열린 아세안-호주 특별 정상회담은 역내 테러리즘에 공동 대처하고 교역을 증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은 시드니에서 첫 정상회의를 연 뒤 18일 말콤 턴불 호주 총리와의 공동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 중단을 촉구했다. 또 유엔 회원국들에게 대북 제재 조치를 충실히 실천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중국이 거의 모든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남중국해의 비군사화 및 충돌방지 행동지침 수립을 촉구했다. 미얀마에서 탈출한 로힝야족 무슬림들의 인도주의적 위기 해결을 위해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번 회의에서 10개국 정상들과 호주 정상이 ‘아세안-호주 인프라스트럭쳐 협력 이니셔티브(ASEAN-Australia Infrastructure Co-operation Initiative)’에 합의한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의 인프라스트럭쳐 프로젝트에 국내외 민간 및 정부의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턴불 총리는 “이번 회의에서 보호주의는 아예 없었다”라고 단언하며 “아세안 10개 회원국은 지역의 전략적 위원회(strategic convenor)”라고 호평했다. 그는 이번 회의를 통해 무역과 투자 등에 있어서 새로운 기회가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높은 경제 성장으로 호주 자원과 테크놀로지, 서비스 수출 시장으로서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이다. 중국과 관계가 악화될 경우,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점에서 장기 포석일 수 있다. 

턴불 총리는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와 함께 시드니에서 열린 중소기업 콘퍼런스에서 “보호주의는 국가의 경제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한다”고 비난했다. 턴불 총리는 “호주는 무역자유화를 위해 인근 국가들과 협력해 나가겠다”며 "다른 시장의 접근을 막기 위해 자기 시장의 문을 닫으면 국가 경제가 강해질 수 없다”고 밝혔다.

아세안과 호주의 이같은 찰떡 공조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게 이들 국가의 설명이다.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도 "아세안의 구상일 뿐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세안-호주 인프라스트럭쳐 협력 이니셔티브는 지난해부터 거론된 이른바 ‘쿼드(the Quad)’로 불리는 호주 일본 미국 인도의 ‘4자 안보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와 더불어 중국의 인프라스트럭쳐 펀딩을 통한 영향력 증진에 대항하는 호주의 첫 번째 분명한 행동이란 점에서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턴불 총리는 지난달 미국 순방 중 트럼프 미 대통령과 호주 일본 미국 인도의 공동 지역 인프라스트럭쳐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물론 ‘쿼드’의 지역 파트너 계획은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지적처럼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라이벌이 아닌 ‘대안(alternative)”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호주가 아세안 회원국이 되면 아세안의 위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아세안 창설 멤버인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16일 시드지모닝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호주의 아세안 가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호주의 아세안 가입은) 지역의 안정성, 경제적 안정성뿐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이 확실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슈는 호주 내부(정치권)에서 합의가 필요한 주요 사안이지만 아직은 시급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호주는 한편으로는 아세안 10개 회원국들과 공동 보조를 취하며 또 다른 편으로는 ‘쿼드’ 협력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턴불 총리의 이같은 ‘투 트랙 외교전략’이 앞으로 ‘신의 한 수’가 될지 아니면 실효성 없는 립서비스가 될지 모르지만 국제적으로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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