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더튼 내부장관(사진 왼쪽)과 토니 애봇 전 총리

“인도주의 포장한 포퓰리즘•인종차별•당권경쟁의 산물”

피터 더튼 내무장관이 지난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난민 프로그램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자유당내 강경 보수파인 더튼 장관의 이 발언은 연방정부의 비자 심사 강화 등 호주 이민 억제 정책 추진과 맞물리며 백인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으로 보여 거센 비난을 초래했다. 남아공 정부도 호주 대사(High Commissioner)를 불러 불쾌감을 표시하고 해명과 함께 더튼 장관의 발언 철회를 촉구했다.
 

더튼 장관의 발언에 대한 이같은 국내외적 비난 여론이 들끓자 연방정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아울러 더튼 장관의 이 발언 배경은 인종차별적 성향과 포퓰리즘, 차후 당권 경쟁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정치적 산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더튼은 ‘인종차별주의자’…백호주의 회귀 신호탄!

더튼 장관의 이번 발언이 알려지자 녹색당의 리처드 드 나탈리 당 대표는 “그는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드 나탈리 상원의원은 "더튼 말로는 남아공 백인 농민은 기여도가 크고 복지에도 의존하지 않지만, 백인이 아니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며 “연방정부가 이전에 실패한 백호주의 정책으로 회귀하려고 한다”고 공격했다.

녹색당의 사라 핸슨 영 상원의원도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더튼 장관의 발언에 대해 ‘역겹다(disgusting)’고 표현하며 “이는 호주에 망명을 요청하는 다른 백인 외국인들을 지지하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호주 망명을 요구하는 남아공의 백인 농민들이 배를 타고 호주 해역에 도착했다면 과연 이들을 나우루와 마누스 섬으로 보냈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난민활동가이자 저술가인 야스민 아브델 매기드는 “백인들은 법을 항상 깨트린다. 그러면서 법을 준수할 것을 말한다. 이는 위선적인 일”이라고 비난에 동참했다.
 

애봇 전 총리, 수카르 차관 등 
당내 강경보수파 지지 발언 이어져

반면 이같은 분위와는 달리 자유당내 강경보수파를 중심으로 더튼 장관 지지발언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토니 애봇 전총리는 라디오 2GB와의 인터뷰에서 “남아프리카 백인 농민들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지난 12개월간 400여 명의 백인 농민들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며 “남아공의 새 대통령과 의회는 보상없이 백인 농민들의 토지를 강제 수용하는 법안을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아공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최악의 인종차별이며, 공정성과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더튼 장관의 인도주의적 발상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지지했다.
또 마이클 수카르 재무차관도 “호주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특정 그룹을 돕기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왔다”고 주장하며 “시리아 내전과 IS(이슬람국가)와의 전쟁으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시리와와 이라크 난민 12,000여 명을 잠재적으로 난민으로 받아들인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또 그는 “소수의 핍박받는 사람을 돕기 위한 더튼 장관의 발언에 박수를 보낸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내 강경보수파의 더튼 장관 지지에 대해 일부에선 유럽과 미국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적 발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웨스턴 시드니 대학의 데이비드 버첼 정치분석가는 “호주 정치인들이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이민자 유입 감소 주장이 대중에게 상당히 인기 있는 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최근 여론 조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자유당 내에선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스트 턴불 겨냥..당권 경쟁은 진행 중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이 ‘포스트 턴불(Post Turnbull)’에 대한 당내 계파간의 갈등도 그 배경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현재 자유당 내에선 ‘포스트 턴불(턴불 이후)’ 후보군에 턴불 총리진영의 스콧 모리슨 재무장관, 줄리 비숍 외교 겸 자유당 부대표가 있고, 그 반대 진영에는 절치부심하고 있는 애봇 전 총리와 더튼 장관이 있다. 
지난 4일 발표된 뉴스폴 여론조사에서 자유-국민 연립은 양당 구도에서 47:53로 노동당에 뒤졌고, 총리 선호도에서 턴불 총리는 37%, 쇼튼 노동당수는 35%를 나타내며 격차가 2포인트로 좁혀졌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내년 총선에서의 자유당 집권에 경고등이 켜졌고, 재집권을 위해선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더튼 장관의 발언에 한몫했다는 것이다.

극우적인 정치 발언으로 유명한 보수 논객 앤드류 볼트는 “자유당 안에서 어떤 권위도 없어졌다. 턴불 총리가 자유당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보수주의 진영을 쓰레기로 취급하고 있다”며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호주 주요 언론들은 외교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번 더튼 장관의 발언이 국내 정치상황과 맞물리며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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