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민권 취득에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 이민업무를 관장하는 연방 내무부의 최신 자료는 시민권 신청자 10명 중 9명은 신청 결과 통보에 최대 16개월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보다 몇 개월 늘어난 것이다.

이런 시민권 신청 대기기간 지연의 이유로 내무부가 최근 355명의 담당 직원을 감원하고 대규모 업무 자동화를 추진한 것이 지목됐다. 시민권 신청 수속은 신청자에 대한 다양한 서류 검토와 자격 평가가 필요한 업무인데 자동화가 얼마나 가능한지 의문이다. 

내무부의 대변인도 의사결정자가 신청자마다 다른 상황을 감안해서 철저히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문데 해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직원 대량 감원이 성급한 결정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기간 지연의 또 다른 주요 이유는 신청자 폭주다. 연방정부가 지난해부터 시민권 취득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입법화 전에 시민권을 비교적 쉽게 받으려는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특히 대학 입학 수준의 영어능력 요구 조건은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취득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호주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건은 아니다. 비영어권 이민자를 차별하는 ‘백호주의 회귀’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영주권자에 대한 정부 혜택 축소 가능성도 신청자 폭주를 자극한다. 정부는 재정 악화로 인한 국가 부채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보건, 교육 등에 대한 혜택을 갈수록 삭감하는 추세다. 

시민권자가 받는 정부의 대학생 등록금 보조 혜택은 이미 영주권자에게 박탈하기로 했다. 이제 정부 예산 지출의 최대 항목인 보건복지 비용 삭감으로 표적이 이동하고 있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현재 약 87만명의 영주권자가 받고 있는 복지혜택을 시민권자로 제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증대와 이민유입 억제 효과를 노리는 발상이다. 광산붐에 이어 주택붐까지 냉각되는 호주 경제 흐름을 감안하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시민권 신청 대기기간 장기화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담당 직원 감원과 사무 자동화는 물론이고 신청자 폭주 원인도 정부가 해결할 사안이다.

특히 시민권 취득 조건 강화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득실을 고려해야 한다. 영주권자들은 이미 오랜 기간 호주에서 생활해왔고 앞으로도 평생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 호주 국민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로 결심했다면 정부는 기꺼이 수용해줘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는 이민자들이 호주 경제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실제론 배척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다. 이민자들의 공로를 진정 인정한다면 이민자들이 호주 국민으로서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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