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대은행인 커먼웰스은행(CBA)의 도적적 해이(Moral Hazard)가 계속 폭로되고 있다.

은행권 의회특검(royal commission)과 언론을 통해 드러난 비리는 돈세탁과 테러자금조달 금지규정 위반, 조직 내 배타적 지배문화 파문, 생명보험사 스캔들, 금리 조작, 사망한 고객들에게 수수료 부과, 고객 정보 분실, 내부 직원들의 비리 등 놀랄 정도로 많다. 

일부 금융전문가들은 “은행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혹평하고 있다. 또 연방 정치권의 소극적인 금융권 감독이 가져온 결과라고 비난한다.

“꼭꼭 숨겨라”.. ‘대처방식’ 더 큰 문제
이미 드러난 CBA의 비리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개선은 커녕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겨보자는 식의 태도가 더 강하다.

지난해 말 자금세탁 방지법 위반 혐의로 호주 금융거래 감독기관인 오스트랙(AUSTRAC)으로부터 기소당한 CBA는 5만3000건이 넘는 범죄와 테러 관련 의혹 자금 거래를 오스트랙에 보고 하지 않고 숨겼다. 이는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즉시 알리도록 상장회사에게 요구하는 기업법(corporations law)의 규정인 지속적인 정보공개 의무(disclosure obligations)를 위반한 것이다. 즉, 은행의 비리 사실을 숨겨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다.

다음은 금리조작이다. 지난 1월 30일 호주금융투자감독원(ASIC)이 CBA를 상대로 ‘은행어음 스와프금리(bank bill swap rate, BBSW)를 조작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BBSW는 은행 간 발행하는 어음으로 기업 대출금리에 적용되는 매우 중요한 지표다. ASIC의 주장에 따르면 CBA는 은행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2012년 3차례에 걸쳐 스와프금리를 조작했다. 

ASIC는 호주의 대표 금융기관이 이런 부당한 방식으로 거래를 하고 조작 사실을 감춘 채 변동된 금리를 기준으로 대출상품을 판매한 것은 매우 ‘비양심적’(unconscionable)이라고 비난했다. 

비리를 숨긴 사례는 또 있다. 은행권 특검 결과 CBA 카운트(Count) 재무설계부서의 한 재무설계사는 2004년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던 한 고객에게 2003년부터 적어도 2015년까지 수수료를 부과했다. 고객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의 수수료를 부과한 것이다. 서비스를 하지 않은 수수료 부과 문제는 ASIC에 20회 이상 거짓 보고가 드러난 후 특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고객의 개인정보 분실도 숨겼다. CBA는 지난 2016년 5월 1,980만 개의 고객 계좌 정보를 분실했다. 분실된 고객 정보에는 2000~2016년 초까지 고객 이름과 주소, 계좌번호, 거래 내역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CBA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동안 고객들에게는 비밀에 부친 것으로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내부 직원의 비리와 관련, 직원을 퇴사시키며 기밀합의를 통해 비리 사실을 숨겼다. 디 에이지의 보도에 의하면 CBA의 대출 담당관이던 조지 브레타코스는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약 2년간 은행 내부 시스템의 약점을 이용해 약 350만 달러의 사기 행위를 벌였고 그는 사기 친 돈으로 가지고 코카인 구입과 매춘, 고가의 주택구매에 돈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도 CBA가 비리 사실을 2010년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에서의 해고와 200만 달러를 갚는 조건으로 브레타코스와 기밀합의를 맺고 이를 은폐했다. 또 CBA는 이후 브레타코스가 30만 달러의 변제금액을 갚지 못했음에도 이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연방정부의 ‘수수 방관’으로 문제 악화”
현재 대부분 주/준주에는 부패감독기관이 있다. 반부패독립감독위원회인 NSW의 ICAC(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빅토리아의 IBAC(Independent Broad-based Anti-corruption Commission)가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춘 대표적인 부패 방지 수사 기관이다. 하지만 연방 단위에서는 아직 이런 기관이 없다. 상당 기간 전부터 신설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말콤 턴불 총리는 “이미 연방 단위에 강력한 제도가 있다. 호주 법집행 청렴 호주위원회(Australian Commission for Law Enforcement Integrity)와 연방경찰이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다”면서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은행권 특검도 여론과 야당의 공세에 못 이겨 겨우 지난해 연말에 결정했다. 이런 연방정부의 반응이 CBA의 비리가 계속 이어지도록 방조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빌 쇼튼 야당대표는 “노동당이 2019년 총선에서 승리하면 집권 1년 안에 연방 단위의 부패감독기관(federal anti-corruption watchdog)인 NIC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NIC가 투명하고 분명하며 공평한 기구가 되기를 원한다. 연방 정부의 신뢰, 책임감, 투명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볼커룰’, 싱가포르 ‘지점 폐쇄’로 강력 재제 
미국의 경우 대형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한 볼커룰(Volcker Rule)을 운영하고 있다. 볼커룰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시스템 위험의 확산을 방지하고 사실상 대형은행의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금지를 위한 것에 그 목적이 있지만 대형은행의 도덕적 해이 차단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싱가포르에선 은행 업무에 대한 부실 감독과 일부 은행 직원들의 비리 혐의가 포착된 외국계 은행에 대해 지점폐쇄라는 강력한 규제를 단행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CBA의 비리에 대처하기 위한 부패감독기관의 설립이다. 이와 함께 더불어 은행 비리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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