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노사감독기관인 FWC(Fair Work Commission, 공정근로위원회)가 7월부터 새 회계연도의 최저 임금을 $719.20로 3.5% 인상한다고 결정했다. 
  
시급(hourly minimum wage)으로 계산하면 현재의 $18.29(주당 $694.90)에서 $18.93(주당 $719.20)으로 조정되면서 주당 $24.30이 오르는 셈이다. 대략 피자 한 판과 커피 한 잔 값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대략 2백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에인 로스 FWC 위원장은 “호주 급여 인상이 정체된 상황이지만 ACTU의 주당 $50 인상 요구는 고용주들에게 ‘불리한 고용 효과’, 즉 고용시장의 위축을 초래한다"면서 "특히 젊은 인력과 저숙련 노동자들에게 고용기회가 감소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719.20라는 ‘현실적인 임금인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FWC가 노사 양측의 극단적인 인상 주장을 배제하고 중간 형태의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 ACTU(호주노총)는 7.2%($50)를 요구한 반면 고용주들은 1.8~1.9% 인상을 요구했다. 

FWC 발표 후 올해는 고용주 단체에서 먼저 발끈하고 나섰다. 대기업 대변 경제단체인  AIG(오스트레일리안 인더스트리 그룹)의 이네스 윌록스(Innes Willox) 최고경영자는 “향후 고용의 주요 장애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호주소매상협회(Australian Retailers Association; ARA)의 러셀 짐머만 CEO도 “고용 지연 및 일자리 감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대기업 경제단체인 호주상공회의소(ACCI)의 제임스 피어슨 CEO도 “급여 인상 부담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 없는 사업체는 근무 시간 또는 고용 인력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연 이들의 고용 감축 우려와 경고가 맞는 것일까? 아니면 엄살이나 엄포일까? 
“낮은 임금이 높은 고용과 낮은 실업률을 보장한다”는 견해는 노동시장 경제학의 일방적 견해(수요 측면)를 반영한 것이다.   
경제학의 공급과 가격 기초 이론에 따라 “노동력 대가(price of labour)인 급여가  낮으면 고용주의 근로자 수요가 늘고 그 결과로 고용 증가와 실업률이 하락할 것” 이란 주장은 마치 동전의 한면 만을 본 것이다. 주어진 급여를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려는 근로자들의 의지인 공급 측면이 무시됐기 때문이다. 급여가 너무 낮으면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나타난 통계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급여상승률이 높았던 가장 최근 시기는 2004~2008년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연간 급여상승률 약 4%였고 실업률도 4-4.5%선으로 최상이었고 불완전 고용율은 6~7%로 안정됐다. 
반면 2014년 이후 현재는 연간 급여상승률이 2.5% 미만으로 매우 저조하다. 최근 2.1%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현재 실업률은 5.5%이고 불완전 고용률은 2월 기준으로 8.4%였다. 10년 전보다 실업률과 불완전 고용비율 모두 크게 악화됐다. 
 
적절한 급여 상승은 기능을 잘 하는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처럼 급여 상승이 부진할 때 많은 근로자들이 기본 지출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빚을 늘리거나 아니면 저축을 낮추는 것이다. 내집 마련 등을 포기하고 수익 모두를 지출하며 견디는 상황이다. 지출 경비를 댈 다른 소득원이 없다.  

급여 상승은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계지출과 절대적으로 연관돼 있다. 급여와 가계 지출 증가율이 부진할 때 경제의 전반적 성과도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
급여 상승이 적절하게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오를 때, 근로자들은 급여상승이 낮을 때보다 더 노동력을 제공할 의향을 갖게 된다. 역사적으로 강한 급여 성장은 낮은 실업률과 연관됐다.  
 
호주의 명목상 임금 수준은 선진국 중 가장 높은 편이다. 호주는 생활비가 비싼(high living cost) 고비용 국가다. 주거비, 교통비, 통신비, 식비 등 기초 생활비 부담이 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 이런 현실 때문에 녹색당은 중간 급여(median wage)의 60%까지 인상(거의 9%)을 요구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FWC가 왜 극단적인 요구 중 중간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공감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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