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협의 여성 인권상 상패 전달식. 왼쪽부터 손녀딸 루비, 오헤른 할머니, 박은덕 변호사, 송애나씨.

얀 오헤른 할머니  ‘정대협 여성인권상’ 수상
 “일본이 공식 사죄할 때까지 죽지않고 싸울 것”
박은덕 송애나 남호주 방문해 상패 전달, 감사 인사


얀 루프 오헤른(Jan Ruff O'Herne) 할머니는… 네덜란드계 여성으로 1923년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서 출생했다. 1942년 2차 대전 당시 자바섬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암바라와 수용소에 감금됐고 1944년(21세) 일본군 위안소에서 강간과 폭행을 당했다. 종전 후 영국군 장교와 결혼한 뒤 1960년 영국에서 호주로 이민을 왔고 남호주의 애들레이드에 살고 있다.  

그녀가 쓴 책 ‘50년 동안의 침묵: 전쟁 강간 생존자의 특별한 회고(Fifty Years of Silence: The extraordianary memoir of a war rape survivior)’는 <나는 일본군 성노예였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됐다. - 편집자 주(註)
 

"날이 어둑해질 때쯤이면 소름이 끼친다. 어두워진다는 것은 내가 다시 거듭 강간을 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공포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오헤른 할머니가 ABC 방송의 다큐멘터리 ‘오스트레일리안 스토리(Australian Story)’에 출연해 밝힌 회상의 일부분이다. 

95세 고령인 오헤른 할머니는 20대 초반에 당한 능욕을 생생히 기억하며 "일본이 공식 사죄할 때까지 죽지않고 싸울 것”이라는 집념과 투지를 내보였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증언한 첫 백인 여성인 오헤른 할머니가 6월 9일(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정의기억재단'이 마련한 여성 인권상을 수상했다. 

95세 고령에도 또렷한 정신력
“한인들과의 만남 기쁘다”  

박은덕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실천 추진위원회 대표가  애들레이드의 할머니 자택을 방문해 여성인권상 상패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지난 2007년 2월 미 하원 위안부 청문회에 동행해 통역 등으로 봉사한 송애나(빅토리아주정부 공무원)씨, 한호일보 기자 그리고 할머니의 손녀딸 루비 챌린저(Ruby Challenger)가 참석했다. 

정대협은 "오헤른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고통을 이겨낸 생존자로서 침묵하고 있던 국제사회를 일깨우며, 가해 사실과 책임을 부정하던 일본 정부를 향해 정의의 외침으로 맞섰다. 또 여성인권 운동가로서의 오헤른 할머니의 삶이 현 세대와 미래세대들에게 잊지 않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도 분쟁지역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희망의 메세지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 여성 인권상을 드린다”고 밝혔다.  

오헤른 할머니는 6월 19일 ‘세계 전시성폭력 철폐의 날’을 맞아 제정된 ‘여성인권의 상’을 전달하기 위해 애들레이드를 방문한 일행에 대해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핑크색 쉐터에 진주목걸이를 한 화사한 모습의 그녀는 기력이 쇠한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인터뷰 중간에는 노래도 부르는 등 대화 시간 내내 매우 즐겁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오헤른 할머니는 지난 1992년 백인 여성 중 최초로 일본군성노예의 피해 사실을 공표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후 일본, 북아일랜드, 영국, 네덜란드 등 여러나라를 방문해 증언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에 일본군 성노예제도의 진실을 알렸다. 

또 2007년 미 연방 하원 청문회에 한국의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와 함께 참석해 증언을 함으로써 미 하원에서 일본군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결의문 채택에 기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할머니의 기력이 약해진 상황을 고려해 가족의 부탁에 따라 인터뷰 질문을  미리 보냈고 그 중 합의된 질문에 한해서만 인터뷰가 진행됐다. 

 

Q 1992년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하면서 “일본 정부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입은 우리가 죽기를 바라겠지만,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며 위안부 이슈에 관한 국제적인 관심을 일으켰다. 일본 정부에 대한 당신의 메세지는 무엇인지 듣고싶다

“일본 정부는 가해사실과 책임을 여전히 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엄연히 있었던 사실을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이다. 그는 끔찍한(terrible) 사람이며 거짓말쟁이(liar)다. 잘못을 인정하기에 너무 늦지 않았다. 역사와 세계 앞에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분명히 사죄하고 역사의 한 부분(part of a history)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나는 사죄를 원하지 돈을 원하지 않는다”. 

Q. 남은 생애를 전쟁에서 상처입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살겠노라고 결심한 이후 거의 20여년동안 투쟁해왔다. 위안부 여성들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같은 고통을 겪은 한 자매다. 언어가 달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만날 때마다 서로 매우 가까움을 느꼈고 서로가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특별한 연대감이 있으며 매우 특별한 기억(special bond and special memory)을 갖고 있다.”

Q. 대부분의 위안부 여성들이 80~90대 나이로 접어들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 다음 세대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는 남자들의 역사다. 역사는 여성들의 인권이나 특히 전쟁같은 상황에서 겪는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위안부 문제는 교과서에 언급해 후세들에게 계속 전해져야 하며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손녀딸 루비가 만드는 영화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가 전해지듯 어떤 형태로든 그렇게 위안부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갈 것이다. “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오헤른 할머니는 영국인 남편 톰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고백했을 때 톰은 "당신의 과거가 어떠하든 그 것은 내게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당신을 사랑한다”며 프로포즈했다. 할머니는 남편 톰을 "가장 멋진 남자(the most loving man)"로 회상했다. 

손녀 딸 루비는 '데일리 브래드(Daily Bread)’라는 단편영화를 통해 수용소에서 오헤른의 젊은 시절을 그렸으며 이 영화로 ‘플릭커 페스트(flicker fest)’, 세인트 킬더 필름 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루비는 오헤른의 삶에 관한 다음 영화 제작을 위해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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