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 칼튼노스의 프린세스파크 축구장에서 성폭행 당한 후 피살된 22세 여성 코미디언 유리디스 딕슨 사건이 밤길 치안 불감증에 빠진 호주를 강타하고 있다. 딕슨은 멜번 도심에서 밤 10시 30분쯤 공연을 마치고 걸어서 귀가하던 중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참변을 당하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고인을 애도하는 촛불 추모식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여성이 밤거리를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없는 치안 부실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 폭력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촛불 추모식 참가자들은 “여성들이 야간에 집과 직장을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면서 치안 강화와 남성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연방 총리와 야당 대표까지 촛불을 들고 잔혹하고 흉포해지는 사회에 대한 자성과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말콤 턴불 총리는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 건설과 남성의 여성 존중 문화 확립을 강조하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재발돼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호주인들의 충격과 분노는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는 호주의 인간성 상실과 인명 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범죄통계연구청(BOCSR)의 자료에 따르면 호주의 전국 범죄 발생률은 하락세다. 2000과 2016년 사이 살인율은 37.5%, 부동산 범죄는 60% 각각 감소했다. 최근 살인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2013/14년 호주 전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238건으로 1989/90년의 307건 보다 감소했다. 호주인 10만명 당 피살자는 1명으로 1989년 이래 최저치다. 이 비율은 미국 4.88명, 영국 0.92명, 뉴질랜드 0.91명이었다.

그러나 호주가 더 이상 안전한 국가가 아니라는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통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직접 몸으로 느끼는 체감도다. 
입소스의 올 4월 여론조사 결과 빅토리아 유권자들이 당면한 최대 우려사항으로 가장 많은 52%가 범죄문제 해결을 꼽았다. 올 4월 호주플랜 인터내셔널이 시드니 거주 18-25세 여성 4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0% 이상이 시드니 밤거리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올들어 호주 전국에서 피살된 여성만 30명을 넘어섰다. 최근 호주 언론을 통한 중범죄 사건 소식도 거의 매일 이어지고 있다.

결국 통계상 범죄율은 하락세이지만 사람들은 밤거리를 마음놓고 다닐 수 없는 불안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서운 밤거리 도보를 가능하면 피하기 때문에 범죄 발생률이 줄어든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호주 한인들은 2013년 말 브리즈번 도심의 공원에서 새벽 청소일을 가다가 20대 호주 남성에게 ‘묻지마 살인’의 희생양이 된 한국인 워홀러 반은지 씨의 참사로 호주의 안전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국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5월 NSW 경찰협회는 올 5월 ‘폭력의 유행’을 방지하고 범죄 발생을 억제하는데 필요하다면서 2500명의 경찰 충원을 요청했다. 경찰도 폭력 확산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는 현실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연방 총리가 촛불을 들고 남성들의 의식 변화만 촉구하기엔 호주의 치안 문제는 상당히 우려되는 양상이 됐다.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심도깊게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호주의 모든 여성이 유리디스 딕슨’이라는 비유를 흘려 들어선 안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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