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채움
오늘은 목요일. 어젯밤에 글을 끝냈으면 좋았겠는데 월드컵 축구를 보느라고 못썼다. 그래서 아침 일을 잠깐 보면서 사온 10불짜리 맥도날드 커피와 핫케익으로 속을 채웠다. 카페인과 설탕이 서로 소용돌이치며 나의 뇌를 5천 씨씨 포드머스탱 엔진처럼 강하게 돌려 줄 것을 기대하면서. 
독일과의 경기 시간은 밤 12시였다. 00시라고도 부르는 애매모호한 시간인데, 오히려 천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라, 1%의 기적을 바라며 화면 앞에 자리 잡았다. 어찌 나 뿐이었을까? 자정부터 2시간 동안 전 세계의 배달민족은 골을 열망했고, 승리를 갈구했는데, 이게 정말 웬일? 
시합 전에 나도는 두 가설이 있었다. 독일이 7대 0으로 이기든지, 한국이 2대 0으로 이기든지 둘 중 하나였는데, 후자가 이뤄질 가능성에 도박사들은 60대 1의 최소 확률을 내 걸었다. 그 결과는? 만약 어젯밤 장난삼아 10불을 투자한 사람이 있었다면, 오늘 아침 10불짜리 맥도날드가 아니라 오페라 하우스 앞의 미쉐린 쓰리스타 식당에서 600불짜리 점심을 먹을 뻔 했다. 그렇게 지난 새벽 우리는 1%의 기적을 경험했다. 

2. 비움
우리네 인생은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채움과 비움이다. 처음에는 가득 채우고 싶어 한다. 좀 더 많은 유효 골로 채우고, 지식과 돈과 안락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가득가득 채워 나가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때가 온다. 버리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요새 아버지가 그리하신다. 두 주 전 한국에서 열리는 총회 참석차 가면서 아버지와 동행했다. 총회 중 카톡이 왔다. 2020년부터 묘역사용권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으시겠다고. 지난 해 화장했던 어머니의 잔재도 수목장으로 뿌려 버리시겠다고. 집에 가보니 물건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젊은 날의 사진, 활발하게 일하시던 때의 여권들과 자격증들을 포함하여 인생의 흔적을 다 지우고 계셨다. 많이 공감되었다. 나 역시 집에 돌아와 주위를 돌아봤다. 비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책들을 치울 것이다. 그동안 모았던 수많은 필기도구들도 버리기 시작할 것이다. 지난날의 나에게는 소중했지만 남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것들을 많이 버려 나를 비워 나갈 것이다.

3. 즐김
채우는 기쁨도 좋지만 더 큰 기쁨은 비움으로 찾아온다. 생각해보라. 지금 당신의 인생이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다면 불공평의 산물일 가능성이 많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사람 역시 불공평하게 태어난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부모 밑에서, 적극적인 성격. 비상한 머리. 날렵한 손재주, 조직적 사고력, 강인한 목소리를 선물 받아 태어난다. 이런 사람들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는 구분된 인생을 살아간다. 만약 흙수저들에게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대 맞아도 싸다. 1%의 기적을 바라며 피곤한 몸을 누이지만, 99%의 대부분은 여전히 차가운 냉방에서 눈을 뜰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사회의 한계다.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개울에서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일은 1%도 안 된다. 

그래서 많이 낙망 되는가? 아니다. 반드시 기억하라. 절망은 소망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절망의 눈물 속에는 기쁨이 숨겨져 있다. 마치 손흥민의 두 눈물처럼 말이다. 앞의 두 시합에서 연거푸 패했을 때 흘린 눈물은 대통령 부부가 찾아왔어도 닦아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펑펑 흘리는 눈물과 함께 모든 것을 비우고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을 때 기적이 일어났고, 새로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당신은 그 보다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라. 당신의 잠재력을 믿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에게 있어서 당신의 존재는 손흥민 이상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이 그 동안 흘린 회한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기묘한 것은 당신은 그 하나님을 비움의 때에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을 만나시기 위해 죄로 물들어 불공평해진 세상을 주기적으로 흔드신다. 가득 채워져 있던 돈궤를 흔들어 비게 하시고, 육신을 치시는 때가 온다. 갑자기 그런 비움이 몰려올 때 명심하라. ‘드디어 하나님을 만날 때가 되었군!’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세상 것의 채움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한분으로 자족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 안에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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