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호일보사 주최 인문학콘서트 시리즈의 하나로 6월 26일 밤 필자가 한 강연의 요지다. 30 여명이 참석했다. 참석하지 못한 독자를 위해서와 참석자에게도 졸속으로 말한 내용이 잘 전달되지 못했거나, 빠뜨렸던 이야기를 함께 모아 써보려는 것이다.
 
강연의 핵심 과제는 호주 사회의 일부인 한인사회가 주류(전체)사회와 호주 정부와 주요 단체들을 향하여 전해야 할 메시지, 말하자면 우리의 정당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 하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커뮤니케이션학 개념으로는 정보와 영향력의 일방적 흐름의 문제다. 
 
이는 거주국과 소수민족 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강대국과 약소국 간, 중심 국가와 변방 국가 간, 한 나라 안에서도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이는 학문적 연구 과제이기도 하지만, 국제연합이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새 세계정보질서’ (New World Information Order)라는 기치 아래 간행물도 발간하고 개혁, 변화의 필요성을 오래 강조해온 사업의 하나다.
 
국가 간 또는 다른 주체간 정보와 영향력의 불균형이 크면 왜 문제인가? 한국에서 요즘 사회 이슈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갑질의 폐단이 바로 한가지 사례다. 그게 오래 용인해 왔던 것도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입장에서 보면 메시지가 강자에서 약자 쪽으로만 흐르던 한국 사회의 결과물이다.      .
 
한 참석자의 질문대로 이 불균형은 한쪽은 강하고, 다른 한쪽은 약하고, 즉 뉴스라면 한쪽은 큰 뉴스가 많고 다른 한 쪽은 이렇다 할 뉴스가 없으니 그런 것 아닌가 할 수 있다. 상당 부분 많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약한 쪽도 좋은 이슈를 만들고 전달 수단을 발전시킨다면 달라진다. 가령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세워진 알자지라 영어 방송은 아랍 세계를 대변하는 CNN으로 불리고 있다.
 
한인계 국제 칼럼니스트
영어가 세계어가 된 지금 한국은 세계 여론의 형성에 기여를 못하고 있다. 영어로 나가는 아리랑 텔레비전, 영문판 연합뉴스, 3대 영자 신문이 있으나 모두 고만 고만이다. 뉴스 기사는 몰라도 뉴욕 타임스, 워싱턴 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런던 타임스 등 국제매체에 전재될만한 칼럼을 쓰거나 거기에 기고할 만한 칼럼니스트를 배출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친한파 언론인, 친한파 학자에 매달리는 건데 그들이 우리의 깊은 애로와 실정을 얼마나 잘 알겠나.
 
필자가 거기에서 오래 일을 해 잘 알지만 그런 인재 양성을 위하여 국가가 따로 머리 쓰고 투자한 적이 없다. 거기 기자와 언론인은 자국어 언론인만큼의 대접도 못 받았으니 갈데 없는 사람이나 오래 남지 모두 떠나버리는 서글픈 현장이었다. 정부가 몇 년 전부터 영문 연합뉴스를 키우기 시작했으나 그게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다.
 
여기 한인사회의 현장으로 돌아와 보자. 그 불균형은 먼저 고국과의 관계에서 아주 심각하다. 그쪽에서 여기로 흘러 들어오는 메시지가 100이라면 여기에서 거기로 가 닿는 메시지는 1이나 될까 말까. 여기에서 보도 자료나 건의서를 보내는 사람이나 단체도 드물지만 보내도 싣는 큰 고국 매체가 없다. 해외 한인과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만나 하는 모임이 있지만 밥 얻어 먹고 그쪽 이야기만 듣고 돌아오는 일방형이다. 이쪽이 좋은 이슈와 아젠다를 내놓아도 전달될까 말까인데 그런 노력마저 없으니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 아래 새로 임명된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30여명의 재외동포 문제 자문위원을 뽑았는데 2-3명이 미국 교포이고 나머지는 전부 한국내 인사들이다. 이게 고국에서 보는 해외교포사회다. 이 문제는 논문을 하나 써도 모자라니 나중 기회로 미루고 본래 제목인 호주와 한인사회의 문제를 결론으로 다뤄보겠다.
 
언어의 불평등
여기 한인들이 영어 장벽으로 주류사회에 대하여 우리가 해야 할 말을 못한다면 3등 국민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이건 인종이 아니라 언어의 불평등(linguistic disparity) 문제다. 영어가 짧으면 많이 배운 우리 어른도 호주 아이와 대화할 때 상대는 대학생, 이쪽은 초등학생의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1세 한국인에게 영어를 통달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영어를 잘하는 2세, 3세가 풍부한 한인 사회에서 이들과 1세가 힘을 합쳐 집단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혹자는 우리가 호주 정부나 주류사회를 향하여 못하는 말이 뭣이며, 한마디로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 있다. 문제를 못 보거나 안 보는 사람에게 문제는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1923년 일본에서 있었던 관동대지진 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느니 수도물에 독약을 탓다는 낭설이 퍼져 적어도 6천명이 죽창으로 찔려 죽었다. 당시 조선인 사회에 제대로 된 지도자나 조직이 있어 정부 요로와 주류 언론에 접근, 의사 전달(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해왔다면 이런 참상이 일어났겠나? 
 
문명국인 호주에서, 그리고 지금의 한호관계에서 이런 일은 상상 못하지만 언젠가 상황이 바뀌고 우리가 벙어리처럼 지낸다면 급속히 늘어나는 중국인들과 함께 똑 같은 아시아인으로써 봉변을 당할 일은 대단히 많다. 그래서 글 제목에 한국인 대신 아시아인이란 말을 썼다.
 
필자는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할 분야를 대(對)정부, 대주류미디어, 대주류산업과 단체로 나눠봤다. 대(對)정부라면 당장 액션을 취할 사항은 별로 없어 보인다. 센터링크, 교육부, 공정거래부, 자동차 관련 NSW 서비스, NRMA보험사(이건 정부는 아니다) 등은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런 기관을 향하여 우리가 구체적 정보를 요청할 사항은 많다. 준정부 산업 기관인 철도청이나 몇 개 대기업에게 집단적으로 시정을 요구할만한 사례는 적지 않아 보인다. 
 
 필자는 한 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우리 동네 기차역장(station master)에 대한 장문의 항의 편지를 철도청 CEO에게 보낸 적이 있다. 문책을 하겠다는 성의 있는 회답이 왔었다.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동행을 하는 한 지인이 기차를 바꿔 타려고 다른 홈에 들어오는 기차를 향하여 달려갔으나 문이 닫히는 순간 손을 집어 넣자 꽉 끼었다. 빠지지 않는 것이다. 저 끝에서 차장이 봤건만 일부터 한 참 열어주지 않은 것 같다. 나중 기차가 떠날 때 항의를 하니까 거꾸로 욕을 하는 것이었다. (이건 조금도 가감 없는 사실이다. 증언할 사람이 있다). 각 역의 출입 게이트를 지키는 역원에게 오팔 카드나 기타로 무슨 말을 걸면 자세히 듣지도 않고 그저 나가라고 하는 무례는 아주 흔하다. 아이러니 하게 유색인 직원 가운데 그런 사례가 많다.
 
건의서 
시드니에서 하드웨어(철물) 제품을 거의 독점하는 대기업이 있다. 영어 잘 못하는 고객들의 문의나 도움 요청에 배관기사(plumber)를 쓰라는 무례한 대답을 하는 오래된 직원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여기 고객들은 대부분이 무조건 저자세인 중국인이 주로인 아시아인들이다. 이들 고객들 때문에 장사가 될 텐데 이게 뭔가하고 불평을 상부 경영층에게 보낸다면 시정될 것이다. 이런 문서로 된 불평이나 시정 요구를 영어로 'Representations' (건의서?)이라고 한다. 개인으로 하기에는 어렵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        ,
 
호주의 이민이나 인종차별 정서에 대하여 필자는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먼저 잘하려는 노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호주 사람은 중국인과 한인을 구별 못한다. 양 소수 민족 간 공조가 필요하지만 이때까지 그런 움직임이 한번도 없어 보인다.
 
장기적으로 봐 영어를 잘하는 2, 3세와 의제 설정을 잘 할 수 있는 1세가 팀워크 (또는 task force)를 만들어 대처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한다. 상시 조직은 불가능함으로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비상임 인재의 양성과 훈련이 현실적 대안이다. 결국 기금 조성과 조직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 많은 단체와 돈 쓰는 행사가 어지러울 정도인데 한인사회에서 그 정도의 기금도 조성될 수 없다면 이른바 지도자들은 한인사회의 발전이니 위상과 같은 말은 아예 꺼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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