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즐랜드 가까이에 있는 이반스 헤드(Evans Head)의 작은 동네.

시골에 살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종종 실감한다. 이웃과 어울려 식사는 물론 여행도 자주 떠난다. 이번에는 프레드(Fred)라는 이웃이 골프와 낚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장소는 이반스 헤드(Evans Head)라는 곳이다. 흔히 한국 사람이 ‘골낚’이라고 부르는 7박 8일의 여행이다. 

참가하기로 했다. 두세 명이 팀을 만들어 떠난다. 나는 2년 전 시드니에서 이사 온 데니스(Dennis) 그리고 나와 동갑인 스티브(Steve)와 함께 한 팀이 되었다. 목적지 이반스 헤드까지는 450km 정도 되는 먼 거리다.

떠나는 날이다. 아내에게 손을 흔들며 남자들만의 ‘골낚’여행을 시작한다. 하늘은 잔뜩 찌푸린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다.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시드니와 브리즈번을 잇는 고속도로 공사장을 지난다. 그러나 공사장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수많은 중장비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만약 인공 지능이 현실화하면 중장비도 로봇이 운전할 것이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 공사장, 미래의 삶을 잠시 생각해 본다.

오랜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들어선다. 이반스 헤드라는 동네 이름이 크게 쓰인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에는 인구 3,100명이라고 쓰여 있다. 작은 동네다. 조금 더 들어가니 비석 앞에 꽃이 만발한 잘 꾸며진 공동묘지가 있다. 호주에서는 동네 한복판에서도 공동묘지를 자주 볼 수 있다. 혐오 시설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저녁 식사를 위해 길 건너편에 있는 잔디볼링(Lawn Bowling) 클럽을 찾았다. 규모가 큰 볼링장이다. 내부도 넓고 깨끗하다. 클럽 식당은 뜻밖에도 중국 식당이다. 

나를 보고 찾아온 식당 주인과 몇 마디 나눈다. 80년대 초부터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매운 것을 좋아할 것이라며 고추도 따로 가지고 온다. 동료들은 내가 중국 음식을 잘 알 것이라며 나에게 주문을 부탁한다. 나도 80년대에 이민 왔지만 이렇게 외진 곳에 정착할 생각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푸짐한 중국 음식으로 저녁을 끝낸 후 숙소로 돌아왔다. 거나하게 취한 남자들만의 수다가 시작된다. 스포츠와 정치 이야기를 한다. 여자 이야기도 나온다. 오래전 한국에서 예비군 훈련받던 시절이 떠오른다. 남자들만의 이야기는 호주나 한국이나 대동소이하다.

술이 많아질수록 말도 많아진다. 프레드는 나에게 호주 비속어를 가르쳐 주며 주위 사람에게 웃음을 준다. 호주 군인으로 동티모르에서 근무했다는 이웃은 한국 군인과 전투 식량을 바꾸어 먹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쓸데없는 말이 난무해서일까, 예전보다 더 가까워진 이웃을 본다.

참석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은 79세이다. 가장 어린 사람은 50이 갓 넘은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전공 분야도 목장에서 일하던 사람,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 화가, 회계사, 교사 등 가지각색이다. 나이, 직업 그리고 빈부 차이가 있음에도 함께 숙식하며 격의 없이 떠들며 즐기고 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친구가 되어 지내는 모습,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이러한 모임은 작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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