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장(Caravan Park)에서 거주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야영장에 거주하는 사람이 특이하게 치장한 캐러밴.

바다낚시와 골프를 즐기러 먼 곳까지 왔으나 파도가 심해 낚싯배가 떠나지 않는다. 골프만 치며 지난 3일을 보냈다. 오늘도 파도가 심해 낚시는 포기다. 하루 정도는 동네 주위를 걷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혼자 숙소를 나와 걷는다. 해변에 규모가 큰 야영장(Caravan Park)이 있다. 조금 걸으니 또 다른 야영장을 만난다. 겨울이라 여행하는 사람이 적을 때지만 야영장에는 크고 작은 캐러밴들이 줄지어 있다. 예전에는 텐트도 많이 보였으나, 요즈음은 비싼 캐러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는 개인용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는 장소에 캐러밴을 주차하고 지내는 사람도 흔하다. 여행하면서도 집에서 누리던 편안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주택가에 들어선다. 보트가 있는 집이 자주 보인다. 휴양객에게 빌려준다는 표지판이 붙은 집도 많다. 동네 중심가에 있는 음식점이나 가게에도 놀러 온 사람이 많이 보인다. 일하는 사람보다 소비하는 사람이 많은 동네다.   

동네 한복판을 지나 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조류 따라 흐르는 바닷물이 출렁거린다. 제법 큰 도미가 떼를 지어 있다. 맑은 바다 밑바닥에 한 마리의 홍어(Sting Ray)가 먹이를 찾아 서서히 움직이는 것도 보인다. 다리 기둥에는 수많은 굴이 붙어 서식하고 있다. 해산물이 풍부한 호주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해안을 따라 만든 산책길을 걷는다. 검은 구름이 예고 없이 비를 내릴 수도 있는 흐린 날이다. 그래서일까, 경치 좋은 곳에 잘 닦여진 산책길이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선착장을 지나 해변에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관광객 두 명이 주위를 걸으며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조금 떨어진 바비큐 시설이 있는 식탁에는 젊은 여자 혼자 노트북을 보고 있다. 시골의 한가로움이 넘쳐나는 풍경이다. 도시의 바쁜 생활과 비교된다.  

산책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오른다. 왼쪽으로 태평양이 끝없이 펼쳐진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에는 주택들이 있다. 주택의 넓은 앞뜰에는 정성들여 가꾼 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은퇴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언덕 끝자락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빗줄기도 한차례 지나간다. 비도 피할 겸 잠시 전망대에 머물며 주위를 즐긴다. 발아래 보이는 방파제를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치고 있다. 해변에는 큰 파도와 어울려 서핑을 즐기는 남녀노소로 가득하다. 수영에 자신이 없는 나는 꿈도 꾸지 못할 스포츠다.  

전망대를 지나 계속 걷는다. 숲으로 안내하는 오솔길이 나온다. 산책로 입구에는 보통 안내문이 있는데 이곳에는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해안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나무가 하늘을 가린 산책로다. 우중충한 날씨에 혼자 걸으니 두려움이 조금 일어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녔던 흔적이 있는 폭넓은 길이다. 약간의 두려움을 누르며 계속 걷는다.

한참 걸으니 하늘이 보이지 않던 숲길이 사라지고 풀만 무성한 너른 평원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다정한 연인이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풀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걷는다. 풀밭이 끝나는 곳에는 수십 길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낭떠러지 아래에서는 계곡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큰 파도가 바위와 부딪히며 물거품을 내뿜고 있다. 바람이 심하다. 파도 물방울이 얼굴을 적신다. 사진을 찍으러 가까이 가고 싶으나 난간도 없는 곳이라 불안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다. 

계곡을 뒤로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산책로가 두 갈래로 나뉜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이다. 인적 드문 낯선 산책길이다. 사람이 많이 다닌 흔적이 있는 넓은 길을 택해 걷는다. 동네에 물을 제공하는 큼지막한 물탱크가 나온다. 집도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숲속에서 긴장한 것 같다. 주택을 보면서 안도감에 큰 숨을 내쉬는 나를 본다.

산책로를 나오니 안내판이 있다. 이곳이 산책로 입구였다. 그러나 산책로를 반대편에서 걸은 것도 나쁘지 않다. 미지의 오솔길이었기에 가진 재미도 쏠쏠하다. 입구 옆에는 사람들이 쓰고 남겨놓은 나무 지팡이 서너 개가 큰 바위에 기대어 있다. 다른 산책자를 위한 배려이다.

동네 길을 따라 내려간다. 공터에는 집을 짓고 있다. 집을 다시 짓는 수준으로 개조하는 집도 있다.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면서 건넜던 다리 옆에 있는 선착장까지 왔다. 수협이 보인다. 들어가 보니 이곳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을 판다. 호주 사람이 즐겨 먹는 생선과 감자 튀김(Fish and Chips)도 팔고 있다. 피시 앤 칩스를 들고 바다가 보이는 야외 식탁에 앉아 점심을 때운다.

조금 떨어진 곳에 노부부가 부둣가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낚싯대로 세월을 낚고 있다. 지금은 한가하게 지내고 있지만 젊었을 때는 나름대로 바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갈매기와 펠리컨이 한가로이 수면 위를 노닌다.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다람쥐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삶도 있고 코알라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삶도 있다, 그러나 코알라의 삶은 게으른 삶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다람쥐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남보다 한 박자 늦게 천천히 나만의 삶을 살았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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