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들의 선망의 관광지로 알려진 시드니의 심볼 오페라 하우스가 바라보이는 서큐라 키 페리 선착장에는 일년내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장대 피리(?)를 불고 있는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Aborigine)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애용하는 디저리두(didgeridoo)라 불리는 목관 악기는 ‘부메랑’과 함께 애보리진을 상징하는 그들의 전유물이다.
 
세계 인종 중에서 가장 자연에 친화적인 용모의 애보리진은 약 3만 8천년 전 제2 빙하기에 동남아 대륙에서 호주 본토와 토레스제도(Torres Strait Islanders), 타즈마니아로 이동해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종족이다.
 
영국 이주민이 호주 대륙에 상륙할 무렵 70만명이었던 애보리진은 현재 45만명으로 감소하여 호주 인구의 2.4%에 해당하며 사용 인어도 250개에서 140개로 줄어 소규모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보리진 인구 감소의 큰 원인은 영국 이주민에 의한 학살도 있었지만 이들과 같이 들어온 전염병(수두, 천연두 등)과 성병(매독)으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토착 원주민들 중에서 가장 순한 성정을 지닌 애보리진이지만 호주 내륙에서는 정착민에 대한 저항으로 3천명의 이주민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도 1만 여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원주민들에게 대지는 흙과 그 위의 생명들, 자연과 계절, 이 모두를 만들어 준 
신비로운 천지 창조인 것이다.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적응하면서 4만여년의 장구한 세월을 생존해 왔던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보면 특히 지명에서 대부분 모음으로 끝나거나 단어의 반복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워이워이(Woy woy)’, ‘나라라(Narara), '불라부라(Bullaburra)’ , ‘카이야마(Kiama) 등이다. 
문자가 없었으니 이야기와 노래로 수만년 동안 후손들에게 전승해야 하기 때문에 반복 훈련으로 암기를 해 왔던 것으로 분석된다.
 
애보리진의 언어에는 ' 어제'와 '내일'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었다. 통치 기구나 통치 회의, 재산의 개념도 없다.
집이나 씨앗, 가축 기르기와 도자기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800년에 걸쳐 대형 조개 무지(높이 9m, 밑면 3만 3천 미터)를 만들기도 했다. 문자가 없는 원주민은 창조 신화, 전통, 사상과 삶의 이야기를 상징적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정체성의 주체는 대지에 대한 신화와 전설이다.
 
그들의 성지인 노던테리토리 준주의 울루루(Ululu) 또는 영어명 에어즈록스(Ayers Rock)는 ‘그늘이 지나는 곳’을 뜻하며 대륙 중앙 사막지대에 우뚝 솟은 '지구의 배꼽'으로 불리운다.
 
영국 정착민들은 1900년부터 70년 동안 ‘원주민 개화’라는 미명 하에 호주 정부와 영국 선교사들에 의해 애보리진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하여 백인 가정에 입양하는 만행을 저질러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로 불린 입양아들은 최소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아이들을 찾으려고 간 부모들에게 식사 시간에 하나님께 꼭 ‘감사기도’를 해야 된다고 명령하는 선교사의 지시를 받고 "우리는 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종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 속에서 살아가는데.. " 애보리진 바르긴지 부족 지도자가 중얼거렸다는 일화가 필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애보리진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과거에 대한 회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헛되고 헛되도다는 철리를 깨닫고 어제나 내일 보다 '지금', '여기'를 중시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민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3년부터 NSW 주정부는 애보리진 250개 언어 중 5개의 언어를
선정해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1955년부터 VITORIA주 정부에서는 해마다 멜본 중심지에서 노동절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축제를 펼치고 있다. Mooba(Let,s go together and have fun )라 불리는 축제에는 200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참여 하고 있다. "
 
최근 한국의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난민 5백여명이 비자없이 입국하여 난민 신청을 함으로써 국내외의 화제를 모은다. 
아라비아 반도(사우디 아라비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은 현재 정치, 사회가 혼란한 준 전시상태에 놓여 있는 가난한 나라이다.
 
제주도의 역사를 보면 1270년 고려말 몽고와의 전쟁에서 대몽고(중국 원나라)와 항쟁하다가 제주도로 철수한 삼별초군이 궤멸당하고 몽고군이 점령해서 90년동안 원나라의 통치를 받아온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탐라국으로 불리운 제주도는 원의 통치하에 관리, 군인, 유배자.목장인부 등 중국인의 이주로 본토 육지인에게 이국적으로 비쳤다.
그래서일까?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제노포비아(외국인 공포증)’에서 제주도민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원주민이 아닌 이주민으로 살고 있는 해외 동포 입장에서 보면 이제는 한국이 다문화 사회를 향한 연착륙을 시도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난민의 한국 영주권 취득은 총 121명에 불과하다. 무려 140만명 난민을 수용한 독일은 이들 노동력을 활용하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대한민국의 국력으로 능히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정치의 기본인 인본주의로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길이다.
난민 문제는 국제협약으로 세계 모든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