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은 곧 새로운 만남을 의미한다. 어머니와 가족이 그 첫번째이고 그 다음은 친구들이다. 이 넓은 지구촌에 홀로 태어나진 가녀린 생명체를 정성껏 보살핌은 어머니의 자애스민 따뜻한 품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모두는 그런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을 통해서 여린 생명으로 키워져왔다. 그때의 보살핌이야 말로 애지중지 그 자체이다. 그때의 어머니의 전 신경은 오로지 그 작고 보드라운 생명에게 오롯하게 쏠려 있었다. 

이런 어린 생명에 대한 보호본능은 뭇 생명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랑의 아름다운 가치이다. 특히 인간의 경우는 내 품속을 떠난 성인의 경우라도 그 마음만은 어릴 때와 별 차이가 없으며 그 농도는 우리 한국인에 있어서는 더 애틋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넉넉한 인정의 교감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교민 사회에서 어느날 두 모녀가 사찰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온 어머니 되는 분이 말문을 열자 마자 딸은 금방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휴지를 찾았다. 7개월된 둘째 아들을 침대에 눕혀 두고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애기가 그만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마침 큰 애가 갖고 놀던 여러종류의 장난감이 그 침대 아래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는데 하필이면 애기가 그곳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놀란 엄마가 곧장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여러가지 사진을 찍어 보고 나서 의사의 소견서에 명기하길 아마도 애기가 외부에서 가한 충격으로 이렇게 된 듯 하다고 기록을 해서 아동보호소로 보내졌다. 

요지는 엄마가 폭행을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의사의 견해였다. 그 말에 당시 상황를 자세하게 설명을 해도 엄마의 말은 들은체 만체하고 그 의사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 하다못해 통역을 통해서 애기를 잘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지더라도 절대로 손댄 적은 없다고 설명을 해도 고개만 가로졌더라는 것이다. 

아마 동양계 사람들의 그런 폭력성에 대한 그 어떤 선입견이 크게 자리한 듯 하다고 하면서 두 모녀는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예 엄마와 애기를 격리시켰고 그런지가 2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그 사이에 큰 애까지도 병원에 오라해서 이곳 저곳을 사진을 찍어보더라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고 답답해서 한국에 있는 친정 어머님에게 연락을 했고 그런 소식을 듣고 급히 호주로 왔단다. 자초지종의 얘기를 다 들은 그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도대체 애기와 엄마를 못  만나게 하는 이런 인권유린을 그 누가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만일에 그런 과정에서 애기나 엄마가 잘못되면 당신네들이 책임지겠느냐고 고함을 질러도 그들은 아동보호 수칙만 내세우더라고 했다. 그 얘길 듣고 나니 이곳에선 노약자와 어린이들을 얼마나 잘 보호할려고 하는지를 충분하게 이해는 하고 있지만 수유까지도 금지시키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게 염려되면 관찰자의 입회하에 모유를 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면서 엄마의 따뜻한 품안에서 사랑의 생명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아량이 있을 법도 한데 들은대로라면 어느 부분에선 정해진 규범에 너무 얽매어서 도리어 인간애의 근본을 잃어버리게 하는 그런 경우도 종종 있는 듯하다. 
그렇듯한 여러 유형의 어려움을 어릴적부터 겪으면서 그때마다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 일생을 함께 지내오다가 어느날 홀연이 그 분들과의 이별을 맞이해야 되는 것 또한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공통된 이치이다. 수일 전 평소에 담소하며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낯익은 분 역시 인생의 행로를 멈추게 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분의 자녀들은 호주에서 오랫동안 공부해온 터라 직장 역시 이곳 사람들과 친분이 많아서 호주식으로 영결식을 마련했다. 팜플렛의 내용 역시 한국과는 많이 달랐는데 특히 시 한 수가 눈에 들어와서 여기에 옮겨 본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한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한국에서 교편 생활을 오래 했던 그녀였다. 정든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과의 잦은 이별을 경혐했던 그 분은 서정주의 이 시를 무척 좋아했단다. 이별의 아쉬움을 연꽃을 매만지며 지나가는 바람쯤으로 맞이하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이젠 바람처럼 지나칠 수 없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두고 떠나는 마지막 이별의 현장, 그 길 또한 우리모두가 맞이해야 될 일방통행으로 이어진 길이다. 끈질긴 인연의 태줄로 태어나진 어머니와 아들딸들과의 고귀한 생명줄, 그 끈을 영원히 내려 놓아야 되는 마지막 공간에서의 이별… 내생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한 순간 헤어져 있어야 되는 예약된 시간에 대한 인사, 그래서 연꽃 만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맺힘 없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담백한 일생이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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