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사는 스티브(Steve)가 생선 손질에 정신없다.

깊은 바다에서 많은 생선을 잡으려고 이반스 헤드(Evans Head)라는 곳을 찾아 왔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고 파도가 높아 지난 5일 동안 낚싯배를 타지 못했다. 내일이 낚시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이틀 후면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와서 생선 한 마리 못 잡고 간다면 낭패다. 

모임을 준비한 프레드(Fred)가 낚싯배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날씨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긴 통화가 끝났다. 궁금해 하는 일행에게 프레드가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내일도 파도는 높을 것이나 오늘보다는 좋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내일 새벽에 일단 선착장으로 나간다고 한다.

오늘도 식당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러나 내일 낚시를 떠나기에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간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스티브(Steve)는 새벽 시각에 알람을 맞춘다. 밤늦게까지 떠들썩하던 숙소가 오늘은 조용하다. 나도 대어 잡을 생각을 하며 일찍 잠자리에 든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이다. 간단하게 빵 한 조각 먹은 후 떠날 준비에 바쁘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대비해 옷을 두툼하게 챙겨 입는다. 신발도 미끄럽지 않은 것으로 골라 신는다. 칼을 비롯해 생선 손질할 도구도 챙긴다. 멀미약을 먹기도 한다. 나도 혹시나 해서 한 알 먹었다.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장이 젊은 남자 직원을 데리고 나타난다. 선장은 배가 떠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바람이 심하다. 혹시 선장이 돈을 벌려고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여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배가 선착장을 서서히 벗어난다. 모두 구명조끼를 입는다. 방파제를 벗어날 때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방파제를 박자에 맞추어 덮치고 있다. 좁은 방파제 입구를 나가기 전에 배는 잠시 멈추며 숨을 고른다. 아마도 파도의 흐름을 보는 것 같다. 잠시 멈추었던 배가 전속력으로 파도와 싸우며 나아간다. 드디어 방파제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안심하며 구명 의를 벗는다.
          
끝없는 바다 위로 구름이 짙게 깔려있다. 바람도 심하다. 배는 파도와 싸우며 거침없이 달린다. 큰 파도와 끊임없이 부딪히는 배는 몹시 흔들린다. 뱃멀미를 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 준비해온 껌을 열심히 씹는다. 어디선가 들은 대로 발밑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에서 시선을 거두고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뱃멀미라는 단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한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육지가 아주 멀리 보인다. 달리는 배에서 가짜 미끼를 낀 낚싯대를 던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선이 잡혔다고 소리친다. 선장은 배를 멈추고 동료가 열심히 낚싯줄을 당긴다. 팔뚝만한 고등어가 끌려온다. 잡은 생선을 얼음 통에 넣고 배는 떠난다. 일행이 바꾸어 가며 또다시 고등어를 잡는다. 이러기를 반복하며 서너 마리의 고등어를 잡았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달리는 배 선미에서 어렵게 몸의 균형을 잡으며 낚싯대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낚싯대가 휘청하며 묵직한 느낌이 온다. 생선이 잡혔다고 소리치니 배가 멈춘다. 열심히 낚싯줄을 감는다. 쉽지 않다. 힘들여 계속 감다 보니 큼지막한 생선이 끌려온다. 처음 보는 생선이다. 돌핀 생선(Dolphinfish) 혹은 마히마히(Mahi-mahi)라는 이름을 가진 생선이다.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온 데니스(Denis)가 한마디 거둔다. 이 생선을 중국 식당에서 먹은 적이 있는데 비싸고 맛있는 생선이라고 한다. 난생처음 보는 생선이다. 이렇게 큰 생선을 잡은 적도 없다. 흥분을 감출 수 없다.           

고등어 서너 마리 그리고 돌핀 생선 두 마리를 잡은 후 낚싯대를 접는다. 배는 다시 전속력으로 대양으로 달린다. 선착장을 떠난 지 두어 시간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육지도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다. 파도는 여전히 배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달리던 배가 멈추었다. 낚시할 장소에 온 것이다. 

직원이 조금 전에 잡은 고등어를 잘라 미끼로 준비한다. 미리 준비한 오징어와 작은 꽁치도 토막 낸다. 낚시하는 방법에 관해 설명한다. 큼직한 추가 80m 정도 되는 바닥에 닿을 때까지 낚싯줄을 내리라고 한다. 깊은 바다다.  

심하게 흔들리는 배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낚싯줄을 내린다. 추가 한참 내려가자 낚싯대에 감이 온다. 오랜 시간 힘들여 끌어 올린다. 끌어올리기 힘들 정도의 큼지막한 도미(Snapper)가 올라온다. 모든 사람이 잡아 올린다. 두 마리씩 달려 나오기도 한다. 한 번 낚시가 끝나면 낚싯대를 접고 배는 또다시 움직인다. 파도에 배가 밀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기를 반복하며 한 시간 정도 낚시했을 것이다. 많이 잡았다. 생선 종류도 다양하다.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어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돌아갈 시간이다. 아직도 파도는 높다. 멀리 보이는 검은 구름에서 쏟아지는 빗줄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반대편에는 가벼운 구름 주위로 무지개가 떠있다. 멋진 풍경이다. 멀미약을 먹어서일까, 아니면 낚시하는데 정신이 없어서일까, 다행히 멀미하지 않았다. 일행 중 한 명은 뱃멀미 때문에 낚시를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파도가 심했다.

무사히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선착장에서 50여 마리의 생선을 손질한다.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빼낸다. 주위는 이미 낌새를 알아챈 수많은 펠리컨과 갈매기로 북적인다. 버리는 생선 내장을 먼저 먹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지금 잡힌 생선들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먼저 먹으려다 낚싯바늘에 걸렸을 것이다. 

문득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세상살이에는 경쟁과 폭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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