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다수 지지 불구 ‘보수 정치권 반발’로 채택 불발  

10년 동안 교체된 전직 호주 총리들. 왼쪽부터 토니 애봇, 말콤 턴불, 줄리아 길러드, 케빈 러드 전 총리

지난 주 총리에서 물러난 말콤 턴불 전 총리는 결국 기후변화 정책인 NEG(Ntional Energy Guarantee, 전국에너지보장제도)가 빌미가 돼 31일 의원직마저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한다. 턴불이 조쉬 프라이든버그 전 에너지 장관과 함께 오랜 노력 끝에 에너지 공급 안정과 전기세 인하, 탄소배출 저감정책을 조합한 계획(NEG)을 내세웠지만 지지율 하락과 당내 강경 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발로 결국 포기했다. 

2007년 존 하워드 총리 퇴진부터 2018년 턴불 사퇴와 스콧 모리슨 총리 선출까지 12년 동안 무려 총리가 7번(케빈 러드 2회) 교체됐다. 이같은 호주 정치 지도자들의 잇따른 붕괴에는 탄소규제를 골자로 한 ‘기후변화정책’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돼 있다. 1997년 이래 현직 호주 총리가 내세운 기후변화 관련 에너지정책 입안은 무려 7차례나 실패했다. 

노동당의 케빈 러드와 줄리아 길러드 전 총리는 탄소배출 감축 정책 입안 실패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뒤 당권 교체 파동을 겪은 다음 총선에서 패배했다. 

이번에 턴불 전 총리도 당내 보수파의 강력 반발로 NEG 입안이 좌절됐고 그것이 빌미가 돼 총리직에서 밀려나야 했다. 토니 애봇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 의원들은 정책 폐기와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촉구하며 턴불 정부를 압박하면서 세를 결집했고 피터 더튼 내무장관이 앞장서 당권에 도전했다. NEG 정책 후퇴와 더튼을 지지하는 장관들의 줄사퇴를 이끌었는데 이런 분위기 조성에 보수 성향 언론인들이 한 몫 했다. 

턴불 전 총리는 퇴임 기자 회견에서 반대파를 ‘반정부 반란 세력(insurgents)'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턴불이 2차 당권 도전에 나서지 않고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정작 자유당 당권은 턴불의 측근인 스콧 모리슨 전 재무장관이 차지했다. 강경 보수파의 행동대장 더튼은 불과 5표 차이(40:45)로 분패했다.

보수파의 막강 도전과 반발이 현실화되면서 NEG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모리슨 신임 총리는 즉각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개각을 단행했다. 종전의 환경과 에너지의 단일 부서를 분리했고 내각에서 비중을 낮췄다. 

더튼을 지지했던 앵거스 테일러 의원을 에너지 장관으로 임명했다. 테일러 장관은 야당으로부터 ‘기후변화 거부자(climate-change denier)’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정책을 사실상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스콧 모리슨 신임 총리

모리슨 총리가 이런 보수 성향 의원을 에너지 장관에 임명한 것은 당내 보수파에게 ‘기후변화정책의 백지화’라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앞으로도 호주 정부는 탄소배출감축에 협조할 것”이라고 립서비스를 계속할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석탄산업 중심의 전력 생산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는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이다. 전세계 석탄 수출의 약 35%가 호주산이다. 2017년 1년간 406억 달러(미화)어치를 수출했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배출 규제 정책은 늘 호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다만 모리슨 총리는 총선을 앞두고 여론의 반대 정서를 의식하면서 전기세 인하와 안정적 공급에 주력할 의향을 분명히했다. 테일러 신임 에너지 장관도 이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로위연구소 설문조사에 따르면 호주 유권자의 60%가 지구온난화를 실질적 현상으로 믿고 있으며 대응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84%가 재생에너지 생산에 찬성했다. 14%만이 석탄과 가스에 계속 의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같은 여론결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탄소배출 감축정책은 여전히 ‘접근 금지 아젠다’로 남아있다. 특히 턴불의 실패 사례로 연립은 상당 기간 이 이슈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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