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리스크 발해성터 답사, 좌측 세번 째가 태초애 학생

발해성터
답사가 시작 된지 사흘 째 되던 날이다. 러시아의 기온은 36도 가까이 올라갔으며 나의 체력도 점점 한계를 느꼈다. 러시아 답사는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이 주된 목적이었으나 그 외에도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곳도 방문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발해성터이다. 발해는 고구려인 대조영이 세운 국가이다. 나는 대조영의 19대손으로 아버지께로부터 발해가 나의 조상님이 활동했던 지역임을 어릴 적부터 들어왔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대조영은 내게 있어 너무 오래 전 역사 속 인물이었고, 활동 지역도 러시아이여서인지 그의 존재가 내게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기념비에서 태초애 학생

극동 러시아 지역 우스리스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발해의 옛 토성은 풀섶으로 뒤덮힌 광활한 대지로 역사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의 조상의 활동지역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멀게만 느껴졌던 존재가 내 옆에 서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지금은 러시아에 위치해 있지만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이 그 곳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아직도 중국은 발해가 그들의 역사라고 우기는 사실과 발해성터를 찾는 수 많은 한국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발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역사지인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 발해를 건국한 나의 조상 대조영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덜컹 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나는 직접 체험하며 배우는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했다. 그저 앉아서 선생님을 통해 배우는 역사는 당연히 멀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민 3세들은 그마저도 배울 기회가 적으니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직접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보고 경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그랬듯 많은 학생들이 역사의 발자취를 밟으며 공감하면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이 더욱 커질 것이다. 나는 어떤 위치에 있던 간에 다음 세대들이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하며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김알렉산드라

김 알렉산드라와 아무르강
답사가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몸은 피곤했으나, 역사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갔다. 고등학교 때 광복회 호주지회에서 주최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시를 영역하는 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부터 우리에게 흔히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궁금함이 더 생겼다. 그래서였는지 답사에서 가장 기대하던 김 알렉산드라 관련 사적지를 방문했을 때는 더 집중해서 강의를 듣게 되었다. 김 알렉산드라는 제정 러시아 출신의 공산주의 혁명가이며 한국 독립운동가이다. 그녀는 한인 최초의 공산주의자이며 러시아 하바롭스크 볼세비키당 위원회 사무국원이었다. 그녀는 시베리아 내전 당시 소비에트 권력을 위해 싸웠던 사람이라 백위파에게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서 처형당했다. 그 곳에는 빨치산희생자 추모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이 기념탑은 매우 아름답고 깨끗이 정리된 곳에 세워져 있다. 그 아름다움이 잔인한 역사와 대비되어 아픔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아무르강은 세계에서 8번 째로 큰 강이다. 탁 트이는 기분과 해방감이 들었지만, 그 곳 또한 김알렉산드라를 포함한 수 많은 시체가 던져진 곳이다. 시체가 던져진 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이 자유로운 평화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덕분이라 생각하니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내가 호주에서 좋은 것들을 누리며 공부하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건 모두 나라를 지켜준 독립선열들의 노력과, 일제에 굴복하지 않은 굳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바롭스크에서 가진 답사단의 밤 및 해단식에서 이만열, 조재곤 교수, 이일선 임정 처장, 나병욱, 태초애 학생


이번 답사는 나에게 좋은 토지를 가꿀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나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이 답사를 통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만났고, 그들의 인생을 배우고 나라를 사랑하는 교훈을 터득했다. 앞으로 그들의 뜻을 기억하고 이어나갈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 씨앗이 탄탄한 토지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한번 뿌리를 내린 나무는 쉽게 뽑히지 않는다. 나는 이 나무를 잘 성장시켜 열매를 맺어서 나를 통해 수 많은 씨앗들이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더 이상 한국의 문화와 언어만 사랑하는 내가 아닌 한국의 역사를 알고 애국자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까지 독립정신과 애국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내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질문에 답을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신 황명하 회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재호광복장학회에 계신 모든 분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답사에서 강의를 해주신 교수님들, 제14기 독립정신 답사단원들 특히 1조 단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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