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저 섬을 소개하는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난파선. 한 때는 호화 유람선으로 세계를 누비던 배였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프레이저 섬(Fraser Island)을 가는 날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부두까지 타고 갈 버스가 오기로 한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예정 시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부두로 향한다. 부두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가 섬을 찾는 자동차와 사람을 태우고 있다. 

배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 잡고 있다. 육중한 사륜 구동차도 서너 대 보인다. 단체로 온 학생들도 있다. 중학생 아니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중국 학생들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으로 보아 홍콩에서 온 학생들로 보인다. 군것질을 하며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꾸밈없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섬에 도착해 안내를 받으며 관광버스에 오른다. 흔히 보기 어려운 사륜 구동 버스다. 기사의 안전띠 착용 안내 방송과 함께 버스는 험한 길을 달린다. 웬만한 지프차로는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파인 모랫길이다. 버스가 흔들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재미난 것은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가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까르르 웃어 재낀다. 이 웃음소리가 모든 사람의 웃음을 자아낸다. 

버스가 정차했다. 주차장에는 세계유산지역(World Heritage Area)이라는 큼지막한 글과 함께 섬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쓰여 있다. 안내원을 따라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거목의 소나무(Kauri Pine)로 둘러싸인 산책길이다.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맑다. 아니 맑다기보다는 투명하다. 물속에 널려진 낙엽과 모래가 선명하게 보인다. 가슴을 활짝 펴고 산림욕을 즐긴다. 

점심시간이다. 섬에는 예상 외로 큰 호텔이 있다. 식당 규모도 크다. 주차장에는 개인이 타고 온 사륜 구동차가 즐비하게 주차해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앞에 놓고 주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캐나다에서 온 두 청년, 뉴질랜드에서 일주일 휴가 내고 온 중년 부부 그리고 뜻밖에도 우리와 가까운 동네에 사는 은퇴한 노부부 등과 함께 담소를 나눈다. 평소의 삶에 변화를 주려고 나선 사람들이다.        

속도 제한 표지판이 있는 백사장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해안을 달린다. 백사장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변에 40km라는 속도제한 경고판이 있다. 시속 80km 구간도 있다고 한다. 해변에 있는 속도 제한 사인은 처음 본다. 섬에는 과속을 단속하는 경찰이 상시 근무한다고 한다. 기사는 안내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름이 되면 시드니 피트거리(Pitt St)이상으로 붐비는 곳이라며 익살을 떤다. 

버스가 잠시 속도를 늦춘다. 딩고(Dingo) 한 마리가 백사장을 거닐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개처럼 짓지 못한다는 딩고다. 원주민들이 애완용으로 기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개와 다르지 않지만 딩고라는 이름으로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딩고 서너 마리를 더 구경하고 백사장을 달리는데 경비행기가 보인다. 버스가 경비행기 앞에 도착하니 파일럿이 올라와 경비행기를 소개한다. 비행기로 15분 정도 관광할 사람을 모은다. 근처에는 경비행기 서너 대가 백사장을 활주로 삼아 뜨고 내린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섬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프레이저 섬을 소개하는 사진에 자주 보이는 난파선이 있는 곳에 버스가 주차한다. 스코트랜드에서 건조한 호화스러운 여객선이었다고 한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병원선으로도 활약한 배다. 그러나 1935년 태풍으로 이 곳에 난파했다. 버스와 지프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난파선 주위를 맴돌며 사진을 찍고 있다. 

엘리(Eli Creek)계곡; 프레이저 섬에서 흐르는 물은 투명할 정도로 맑다.

엘리(Eli Creek)라는 이름을 가진 계곡도 가본다. 많은 양의 맑은 물이 바다로 흘러간다. 숲속에 잘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계곡을 한 바퀴 돌아본다. 계곡에 몸을 적시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하루정도 지내면서 깊은 계곡까지 가보고 싶은 곳이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마지막 관광지 맥켄지 호수(Lake McKenzie)에 사람을 내려놓는다. 프레이저 섬에는 크고 작은 100여 개의 호수가 있는데 세계적으로 깨끗한 물을 자랑한다고 한다. 맥케지 호수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함을 자랑하고 있다. 숲에 둘러싸인 거대한 호수가 관광객을 유혹한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젊은이 둘은 대수롭지 않게 물로 뛰어든다. 나는 두터운 점퍼로 몸을 감싸고 있는데...

섬을 떠나는 배에 오른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녀가는 느낌이다. 며칠 더 머물고 싶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이룰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원하는 것을 모두 충족할 수 없기에 사는 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