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리드 알리, 칼럼으로 ‘이중잣대’ 질타
난민에겐 ‘혹독한’ 법규 적용,
유럽 여성 방문자들은 ‘관대한 조치’
상원, 재량권 행사 ‘부당 개입 의혹’ 조사 착수

피터 더튼 내무장관(오른쪽)과 오페어 비자를 청탁한 질론 맥클라클란 전 AFL 최고경영자

이 칼럼은 호주의 유명한 정치논평가 겸 변호사, 방송인인 왈리드 알리(Waleed Aly)가 피터 더튼 내무장관의 이민장관 시절 오페어 비자 발급과 관련한 장관 재량권 행사에 대한 의혹이 커지면서 이 사태를 보고 시드니모닝헤럴드(SMH)지 오피니언에 기고한 글이다. 
‘더튼의 오페어 드라마는 이민정책의 위선)Dutton’s au pair drama shows hypocrisy of immigration policy)이란 제목으로 8월 30일자에 게재됐다. – 편집자 주(註)
칼럼 원문 바로가기 : https://www.smh.com.au/politics/federal/dutton-s-au-pa
ir-drama-shows-hypocrisy-of-immigration-policy-20180830-p500np.html

“도움이 절실한 개인에게 베푸는 인도주의적 재량으로 관대한 호주사회의 공익을 위해 이 자에게 관광비자를 발급한다”. 

피터 더튼 내무장관이 2015년 이민부 장관 시절, 호주 입국이 불허된 한 오페어(au pair) 방문객에게 입국을 허용하는 공식 문서의 한 구절이다.

얼마나 훌륭한 표현인가! 도움이 절실한 개인… 인도주의적 재량… 관대한 호주사회의 공익… 그리고 관광비자? 얼마나 심각한 인도주의적 상황이길래 이민부 장관이 직접 개입해 관광비자로 해결이 가능했던 걸까?

사정을 알고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자신의 권한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스캔들이라 하기엔 모호한 구석이 있다. 게다가 정치인이 누군가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일은 흔히 발생하는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 사례는 호주이민정책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지를 보여주는 일례라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더튼이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 작은 사건을 통해 더튼은 이민 장관으로서 그가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기꺼이 위배하겠다는 의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의 정치거래는 타협없는 엄격한 법률 적용을 기반으로 한다. 일종의 ‘법질서에 미친 수호자’(maniacal preserver of order)나 다름없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허리를 굽히거나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다. 아마 극한 상황이라 해도 변화는 없을 듯하다.

슬프게 흘린 눈물은 그와 접촉하는 즉시 얼음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나우루 난민수용소(Nauru Detention Centre)에 정신과 치료가 시급한 10살짜리 아이가 있다. 더튼은 이 아이가 호주로 건너와 치료받을 것을 완강하게 거절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면 수십만 달러의 혈세가 재판에 사용되더라도 그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판사의 진정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호주군의 통역을 도와주는 바람에 생명이 위험해진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어떡해서든 호주로 데려오려고 하는 호주 참전 용사들이 있다. 더튼은 이 참전용사들을 만나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타협을 모르는 원칙에 대한 집착이 그의 매력이라는 데는 정말 비정하기 짝이 없다. 그는 법을 믿는다. 그리고 법을 기반으로 엄격한 잣대를 든다. 그를 움직이는 건 인도주의적 명분이 아닌 법과 규율을 따르지 않는 ‘원칙’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페어를 둘러싼 대하소설의 핵심 요점이 독자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즉, 더튼은 법을 어기고 또 같은 법을 어길 가능성이 있는 그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이민부 관계자가 오페어 방문자의 재범(취업) 가능성을 우려하는 권고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했다. “이 방문자가 호주에서 일하려는 의도를 보여 관광비자 발급은 위험함.” 당시 이민부 의견의 일부이다. 여기서 일개 관광비자로 불법으로 일하려 한다는 ‘징후’는 무엇이었을까? 국경수비대(ABF) 전산에도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방문자는 이민법에 따른 근로조건 규정을 위반한 전력이 있다. 2015년 10월 31일 입국 당시 호주 체류 기간에 일을 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이 여성은 분명히 이민법 위반자로 규정됐다. 관광비자로는 보수를 받는 일을 할 수 없기에 첫 위반 시 3년간 호주 입국이 금지됐지만 몇 달 뒤 재입국을 시도하자 이민부가 억류했다. 이 여성은 단지 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집안일 등을 해 주기로 했다고 입국 사유를 설명했지만 이민심사관이 그의 유급 근로활동을 의심했다. 

한편 더튼은 이 사건이 ‘장관 개입이 불필요한 사항’이었음을 알고도 개입을 감행했다. 이민 장관 시절 수 백건의 사건에 개입했기 때문에 유독 이 사건이 주목받을 만한 이유가 없다는 그의 주장은 이 사건 뒤에 감춰진 무언가를 은폐하려는 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관급 고위공무원이 일개 관광비자 사건에 관여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주목받을 만한 사례다. 게다가 이렇게 흔치않은 장관 개입이 이미 이민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의심스럽다. 그리고 법을 다시 어길 것이 명백한 그 누군가를 위한 조치였다는 점도 의심투성이다. 한 내무부 관계자는 “범법자를 국내에 다시 받아들이는 상황은 내무부 입장에서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더튼과 같은 인물 밑에서 일하는 자라면 그 수치심은 배가 되어 생애 가장 큰 죄를 지은 것과 같으리라.

나는 이 여성의 사연을 모른다. 아마 마음을 녹일만한 슬픈 사연이 있는 여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반감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인도주의적’ 상황이라 할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는 이란인 난민신청자가 위급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보다 심각한 상황인가? 호주가 ‘관대한 사회’가 되기 위해 프랑스인 여성의 오페어가 허용돼야 하는 게 과연 올바른건가? 

이 두 가지 경우에 모두 적용 가능한 일관된 원칙은 무엇일까? 아니면 ‘법과 질서’ 그리고 ‘국가 통치 권력’, ‘불법 이민자를 추방해야 할 막중한 임무’ 이 모든 게 허튼소리라는 걸 과연 인정할 수 있을까?

이번 파문이 사상 최대 스캔들 중 하나라 단정 짓지는 않겠다. 아마 이 또한 큰 치명타 없이 지나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튼 뿐 아니라 이민에 대한 호주사회의 ‘위선’이라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고 지나가버린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 사회 속에서 ‘원칙’이라는 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폐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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