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호 광복장학회(이사장 황명하)는 2016년 3•1절에 ‘21세기 청소년 독립운동가 육성’을 목적으로 광복회 호주지회의 산하재단으로 설립됐다. 올해는 3기 장학생으로 호주 거주 한인 대학생 나병욱(시드니대 고등교육학과 4학년)과 태초애(시드니대 정치외교학교 1학년) 2명을 선발했다. 두 학생들은 7월 19~24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우스리스크, 하바롭스크 등 6개 도시의 독립운동사적지 현장답사 교육에 참가했다. 
두 학생의 답사기행문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註)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부모님을 따라서 고국을 떠나 호주로 이민을 온 이민 1.5세대 대학생입니다. 10년 넘게 호주에서 살며 호주 문화와 사회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고생과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시민권과 호주여권을 받고 국적이 호주로 표기되었을 때, 기나긴 기다림 끝에 받았다는 기쁨과 안도감 보다는 저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비록 법적으로 국적이 바뀌었지만 한국말을 쓰고, 한국 문화와 가치관에 익숙한 내 자신을 과연 한국인이라고 불러야 되는지 아니면 국적에 따라 호주인이라고 불러야 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저를 비롯해 해외에 거주하는 수많은 한인동포들은 매일 한글을 쓰고, 한국 문화와 가치관에 익숙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역사관과 민족의식에 대해 무지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대학생이 되면서 교육학을 선택한 이유도 다른 동양국가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및 배경을 널리 올바르게 알리고자 한국어 선생님이 되기 위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른 언어들에 비해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떠나온 지 오래된 저 또한 한국에 대해 얼마 알고 있지 않았기에 항상 올바른 한국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마치 보답이라도 하듯, 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님을 통해서 재호광복장학회와 연락이 되었고 기적적으로 뽑혀서 광복장학생이 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 독립운동사적지 답사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라즈돌노예역 앞에서 단체사진

5박 6일 블라디보스토크 → 크라스키노 → 우수리스크 → 하바롭스크 방문

지난 7월 19일 아주 무더운 여름날, 이번 제14기 러시아 답사에 참가하는 다른 대학생 답사단원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의 깊은 역사와 배경에 대해서 무지했던 저는 긴장감 반, 부담감 반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약속 장소였던 인천 공항으로 갔습니다. 호주에서 대표로 뽑혀 왔기에 사전에 꼼꼼히 읽어본 자료집을 되새기며 긴장감을 놓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답사는 한국독립운동가들이 극동러시아에서 활동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일정이 짜였습니다. 수 많은 항일단체들이 연해주지역을 시작으로 조직되어 한인사회의 단결과 민족의식화를 위해 활동했습니다. 이후 한인들이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까지 연해주지역은 유력한 해외 항일독립운동 근거지였습니다. 5박 6일 동안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크라스키노, 우수리스크와 하바롭스크를 방문하여 각 지역에 있는 러시아 혁명역사를 비롯한 독립운동사적지 그리고 러시아지역에서의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살펴보았습니다. 

크라스키노 안중근 의사의 단지 손도장을 새긴 기념비에서 이만열, 조재곤 교수와 나병욱, 태초애 학생

그라스노키에서 이범윤 안중근 등 의병단체 ‘동의회’ 조직
2001년 ‘단지동맹 기념비’ 건립

먼저 도착한 곳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연추라고도 불려지는 크라스키노였습니다. 크라스키노는 1936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한 크라스킨 중위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명칭으로, 러시아 최초의 한인마을인 지신허(地新墟)와 함께 남부 연해주지역의 대표적인 한인 마을이었습니다. 크라스키노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이 한인사회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는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한인사회의 행정과 문화적 중심지였으며, 최재형과 이범윤, 안중근 등을 중심으로 의병단체인 동의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가이드와 조재곤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가며 도착한 곳은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3월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비밀리에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다지며 단지회를 조직하여 왼손 무명지를 잘랐습니다. 연해주 의병장 안중근 의사와 그의 동지 11명이 조국 독립을 기원하며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것을 기념하여 2001년 10월 19일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기원하며 결성한 단지회, 그 단지회를 기리는 기념비가 관리 미숙과 러시아의 불찰로 인해 세번이나 위치가 옮겨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독립정신답사단 발대식을 거행했습니다. 출정선언문을 낭독하고, 애국가와 독립군가를 열창하며, 조국을 위해 피 흘렸던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배우고, 선열들의 행적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묵념을 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다잡고 찾아간 곳은 소련과 일본의 전투에서 소련이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크라스키노 전망대로 널리 알려진 핫산전투기념비였습니다. 기념비 주변으로 보이는 크라스키노 발해성터의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으며 다음 독립운동사적지를 향해 우수리스크로 떠났습니다. 

우스리스크 최재형 선생 최종 거주지에서 태초애, 나병욱 학생

이상설, 최재형 활동한 우수리스크 
대초원 한복판의 ‘발해성터’

크라스키노에서 대략 3시간 정도 걸리는 우수리스크는 연해주에서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유난히 대한민국과 관련이 깊은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에 나라 밖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곳입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이끈 이상설과 연해주 항일투쟁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최재형이 활동하고 숨을 거둔 역사적인 지역입니다. 

우수리스크에 도착한 우리는 제일 먼저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하여 설립된 고려인 문화센터에서 발해시대와 연해주 이주 역사 및 고려인들이 겪었던 고난과 항일운동의 역사를 조명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역사관은 옛 고려인들 및 한인들의 이주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지도에 화살표로 표시하였으며, 그 당시 사용되었던 농기구를 비롯한 생활용품, 또한 홍범도 등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 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연해주지역에는 현재 발해 이후 동화국(1217~1234)시기에 이르는 중세시대 성곽 40여 곳 중 10여 곳이 발해의 성곽입니다. 고려인들이 2만명 가까이 거주한 우수리스크에는 ‘크라스노야르성’이라는 발해의 성터가 남아있습니다. 사방으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대초원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발해성터는 내성, 외성, 동암성 등 세 구역으로 구성됐으며 외성의 전체 길이가 8km가 넘고 성벽은 3~5m에 이르며 산의 절벽은 방어시설로 이용되었던 거대한 성터입니다. 주변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거대한 외성에 올라가서 바라본 넓은 초원과 수이푼강의 모습, 얼핏 보이는 우수리스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크라스키노에서 보았던 발해성터와 더불어 우수리스크의 옛 발해성터를 보면서 저는 이 넓고 넓은 땅인 연해주의 일대가 한반도의 일부였다는 사실과 러시아에 많은 고려인, 한인들이 정착하였고, 그 분들의 문화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괴리감이 들 정도로 놀랐습니다.

최재형

끝없는 자연이 펼쳐진 발해성터를 떠나 도착한 곳은 최재형 선생의 거주지와 전로한족중앙총회결성장소입니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도 출신의 자수성가한 재력가로, 재산 대부분을 항일투쟁을 위해 값지게 사용한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운동계의 대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항일의병 단체인 동의회를 결성하여 총재직을 맡았고 1909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후원과 전로한족중앙총회의 명예회장 그리고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에 선임된 연해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부와 권력을 내려놓고 오로지 조국을 위해서 희생한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들으며 우리들은 고개를 떨군 채 묵념으로 그 분의 헌신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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